칠전팔기, 78계단의 추억
칠전팔기, 78계단의 추억
  • 박지용 기자
  • 승인 2010.02.1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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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공학동 공간이동의 단순한 의미 넘어 포스테키안들의 삶의 애환과 추억이 깃든 곳

모두의 축복 속에서 학사모를 쓴 모습. 학교 곳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아련한 추억과 함께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는 포스테키안들의 모습. 졸업식에서의 훈훈한 풍경들이다. 정든 학교를 졸업하며 기숙사겷뻬?통집 등 그간의 추억이 깃든 다양한 장소가 기억에 남을 테지만, 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를 물으면 졸업생들 중 열에 일곱은 ‘78계단’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에 포항공대신문사에서는 포스테키안들의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 ‘78계단’의 이야기를 되새겨보았다. <편집자 주>

78계단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흔여덟 개의 오름돌로 이루어졌다. 왜 하필 일흔여덟 개로 지었는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의미로 78을 따왔다고도 하고 78개의 계단을 지나는 운동량이 하루에 적절한 운동량이라는 등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진 해석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건축적으로 기숙사와 공학동의 공간이동이라는 의미만 있을 뿐 그 외에는 어떠한 의미도 두지 않고 설계되었다고 한다. 어느 누가 78계단이 대학의 명물이 되리라 생각했으리.

78계단에는 포스테키안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포스테키안의 하루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78계단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이 다가온다. 기숙사와 공학동으로 구분되어 있는 캠퍼스의 특성상 그 두 공간을 연결하는 78계단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길이다.

흔히 포스테키안들은 공포의 78계단이라 부른다. 수업에 늦어 헐레벌떡 뛰어가다가도 78계단 앞에만 서면 온 몸에 힘이 쫙 빠지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78계단의 위용에 압도당하는 신입생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78계단을 오르고 나면 다시 배고파진다고 할 정도로 78계단을 오르는 것은 가히 공포로 다가온다.

단순히 이런 위치적 특성만 있었다면 78계단은 단지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성가신 존재로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포스테키안들이 이야기를 더해가고 의미를 부여하기에 하나의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청암학술정보관에서 생명공학센터로 내려오는 계단은 ‘108계단’이라 불리는, 78계단보다 더 웅장한 계단이지만 78계단의 명성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곳에는 이야기가 없다. 어느 졸업생이 108계단에서 기념사진을 찍겠는가.

78계단에는 졸업에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 아닌 전설이 있다. 바로 78계단에서 구른 자는 4년 만에 졸업을 못한다는 것이다. 다들 단순한 전설일 뿐이라고 믿지만 올해 2월에 학사모를 쓴 01학번의 한 학우는 “신입생 입학 당시 분반 MT를 가기 전날 들뜬 마음에 덜렁대다 78계단 바로 앞에서 넘어져 손목이 부러졌고 깁스를 했다”라며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계단을 구른 것은 아니니 그 전설은 나를 피해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며칠 후 깁스로 한 채로 졸면서 걷다가 결국 78계단을 굴러 내려왔다. 믿거나 말거나 이 전설 때문에 분반에서 가장 늦게 올해 졸업하게 되었다”라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78계단의 전설이 유효하다고 웃음 지었다.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바로 ‘78공고’이다. 78공고는 계단의 사이사이에 종이를 붙여 전체적인 하나의 공고를 완성시키는 것으로, 단순한 계단을 화려하게 수놓아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78계단에 공고를 한다는 것은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78공고는 포스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축제나 포카전 등 학교의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붙는 78공고는 그 면모가 날로 화려해져 포스텍 하면 떠오르는 것은 78계단, 그 중에서도 78공고를 떠올릴 정도로 학교의 명물이 되었다.

포스테키안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계단에 쪼그려 앉아 몇 시간 동안 78공고를 붙이며 고생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억은 다른 대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포스텍에서만의 소중한 추억거리이다. 78공고는 단순한 공고를 넘어 그 안에서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더 특별하다. 78공고로 프러포즈하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78공고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백을 해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남자들의 옆구리를 시리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처음 지을 때는 별다른 의미 없이 지어진 단순한 계단에 불과했지만 개교 때부터 지금까지 포스테키안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씩 더해지며 이제는 하나의 건축물을 넘어 포스텍만의 문화가 되었다. 졸업 후에 다시 한 번 78계단을 올라보자. 바쁜 아침 힘겹게 오르던 78계단이 이제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졸업한 후에도, 78계단을 오르며 공부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칠전팔기하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