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영화]
[나도 평론-영화]
  • 김병훈 / 재료 4
  • 승인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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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천국이란?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또는 사고라도 나서 병원에서 한달쯤 입원해서 푹 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도 힘든 생활 그 무한의 톱니바퀴 아래 피곤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산다는 것은 고달프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단어는 삶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삶이 가장 절실하게 다가올때는 누군가로부터 죽음을 강요 받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이 타인이 아니라 신이라면…?

“천국에서는 화제가 오직 하나야. 바다지. 노을이 질 때 불덩어리가 바다로 녹아드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불꽃은 촛불같은 마음속의 불꽃이야.”

‘천국에서는 바다 이야기만 해. 바다보러 가자’. 골수암에 걸린 루디와 뇌종양인 마틴은 죽음의 바로 앞에 서 있다. 십자가가 떨어진 그 자리에는 데킬라 한병만이 남아있고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축제를 벌인다. 천국에서는 바다 얘기만 하는데 루디와 마틴은 바다를 본 적이 없고 바다를 찾아 나서는 로드 무비는 이렇게 시작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에 그들은 일상으로부터 파격적인 탈출을 시도하고 좀 떨어지는 조직원들과 경찰, 그리고 100만 달러가 뒤섞이면서 사건은 점점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하지만 루디와 마틴은 그 모든 것과는 관계없는 듯 천국의 입구에 도착한다. 마틴은 바다의 입구에서 주저한다.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천국의 입구가 그들의 상상보다 아름답지 않으면 어떻하나 두려워한다. 그런 마틴을 보고 루디는 말한다. “두려울 것 하나도 없어”. 아름답던 아름답지 않던 결국은 그들이 가야만 하는 ‘heaven’이었기에....

만약 세상에 천국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데킬라 한병과 담배 한갑만이 놓여져 있는 텅빈 오후의 해변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장엄한 바다로 그들의 불타던 생명은 바다로 녹아들고 그들 마음속의 불꽃만이 남았다.

‘Knocking On Heaven’s Door’는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천국의 문 앞에 설 수밖에 없음을 알고 그 문 앞에서 솔직해지고 자연스럽게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결국에는 죽는다는 점만 빼면 특별히 다른 영화와 다를 것은 없다. (덕분에 우리는 속편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찌 되었던 우리의 영웅들은 병원에서 만난다. 그리고 데킬라 한병을 마시고 얼큰히 취한 상태로 이 세상에 남아있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진짜’ 삶을 살기를 결심하고 죽기전에 바다를 보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조직의 돈 100만 달러가 들어있는 차를 훔친다. 그리고 그들은 독일에서 네델란드로의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부터 로드 무비와 ‘덤 앤 더머’류의 코미디 영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이 덤 앤 더머에 출현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돈다발이 든 슈트케이스를 발견하는 부분이나, 호텔 투숙씬 같은 부분은 거의 베낀 것 같이 유사하다.)

이 영화의 위대한 부분은 플롯의 짜임새가 아니라 짧은 순간 순간의 번뜩이는 유머와 한적한 풍경속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따스한 마음일 것이다.

루디와 마틴이 좌충우돌 하면서 만나게 되는 상황들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나름대로 코믹하게 풍자해 놓았다. 왜 하필 데킬라 인가? 데킬라를 먹는데는 소금과 레몬이 필요하다. 세상의 짠맛과 신맛. 그러나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차를 훔치는 부분에서도 마틴이 차문을 어렵게 부시려고 하지만 루디는 쉽게 연다. 주유소에서도 어설픈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자 경관은 웃고 가버린다. 차 트렁크에는 100만 달러가 들어 있고 그들은 하는 일마다 쉽게 풀린다. 단지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들은 너무도 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돌아가고 힘들게 낑낑거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쉽게 풀리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루디와 마틴은 100만 달라를 앞에 놓고 소원을 적기 시작한다. 아주 여러 가지 소원들. 그러나 그들은 한정된 시간 앞에서 단 하나의 소원만을 이룰 수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여러 가지 일 중에서 단 한가지만…

차를 받은 어머니는 말한다. “난 운전 면허가 없어.. 하지만 너도 엘비스는 아니잖니?”

이 영화는 완벽한 웃음을 주는 코미디도 액션도 아니고 그저 그런 B급 로드무비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이 영화가 필자에게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진학, 취직, 그도 아니면 백수. 앞은 불투명 하고 어찌보면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었던 캠퍼스 생활이 어느덧 그 막바지에 이른 초조함 등이 이 영화를 뭔가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것 같다. 특히 마지막 그 천국에서 마틴이 쓰러지고 루디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그 실루엣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슬픔과 허무, 그리고 안도가 가슴 절절하게 느껴진다.

삶, 죽음, 할 수 있는 것과 가야만 하는 길, 그 많은 방황을 안고 있는 사람들 (졸업반이나 결혼을 앞두신 분들 기타 등등)은 한번쯤 마음이 맞는 친구끼리 모여 앉아 데킬라 한병을 놓고 영화를 느끼면서 시원하게 웃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그 안에서 해답이야 찾을 수 없겠지만, 초조함을 공포를 받아들이는 여유정도는 얻을 수 있을 듯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