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미선이 Drifting] 천국보다 낯선 세상에 울리는 아름다운 ‘표류’
[나도 평론-미선이 Drifting] 천국보다 낯선 세상에 울리는 아름다운 ‘표류’
  • 신용석/기계 4
  • 승인 200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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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이’는 ‘이방인’이다. 상호 보완적이라기 보다 이분적으로 존재하는 한국 메인스트림과 인디라는 기묘한 음악적 장안에서 그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기묘한 제 3의 공간에 위치하는 듯하다. 사실 메인스트림과 인디라는 흐름은 이상하게만 보인다. 그들이 펼치는 ‘가운데 손가락의 미학’이란! 메인스트림의 그들은 가운데 손가락이 단순히 손가락들 중 하나인 듯 생각하며 안무에 맞춰 앙증스럽게 손가락을 날리고, 인디의 그들은 자신들이 손가락을 날린 대상 자체 ‘세상’을 보기보다는 가운데 손가락 자체에 그 애증을 드리우는 듯 하다. 디디알과 펌프에 열광하는 십대들의 정형화된 스텝을 보는 듯 인디의 스타일 또한 그렇게 고정되어버렸다. 메인스트림의 정형화와 인디 스타일의 정형화 속에서 움츠린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유희와 광기가 맞물린 쾌락의 그것일 뿐.

그 속에서 ‘미선이’란 존재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노선도 없고, 하드코어 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사운드에서 여백과 고요를 즐긴다. 그래서 그들의 위치를 확정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디성향은 메인스트림에서 거부당하고 음악적 코드는 인디에서 소외되어 있지만, 반대로 그들은 음악적 감성에서 메인스트림의 팝멜로디시즘과 결부하고 있으며 태도면에서 인디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악적 스타일과 밴드 태도에 의해 그들은 첫앨범부터 음악계의 여러 경계를 표류(Drifting)하고 있다. 이런 외형적 스타일과 더불어 중요한건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감성과 사운드의 풍경이다. 그들이 ‘해적방송’에서 처음 선보였던 ‘송시’는 곡구조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Creep’을 떠올리게 하였고 가사에 깊게 베인 처절함은 ‘Radiohead’적 절망주의를 강렬히 이끌어냈다. 오히려 ‘Creep’이 가진 서사성도 없이 섬뜩한 비장미로 채워낸 ‘송시’의 독자적 세계는 ‘Radiohead’가 선 위치에서 더 극단으로 치달아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들은 첫앨범에서 ‘Radiohead’와는 다른 시선을 세상에 보내고 있다. ‘Radiohead’가 절망의 에테르속에서 세상을 굴절시켜 바라본다면 ‘미선이’는 세상속에서 절망과 희망, 냉소, 평화를 분절시켜 표현해내고 있다. 중심은 바로 ‘세상’, ‘현실’ 자체이다.

‘미선이’가 노래하는 공간으로써의 세상은 그들 기본 서정의 바탕으로써 짙게 깔려있다. 질문과 기원의 구조인 네번의 물음표와 한번의 마침표로 풋사랑같은 연정을 수줍게 이야기하는 공간은 성당이나 교회가 아닌 일상 공간로써의 화장실에서 벌어지며(‘Sam’), 휴지와 신문을 통해 언론에 대한 냉소를 보내는 장소 또한 일상의 가운데이다.(‘치질’) ‘진달래 타이머’와 ‘shalom’이 가진 기본적 사고의 틀자체도 세상에서 벗어나지 않은채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이야기함으로써 그들 생활바탕이 자아에 머무른 것이 아닌, 외부 세계에 맞닿아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공간임을 확실히 명시한다.

하지만 그들은 ‘공간’으로써의 ‘세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또 보아야 할 것은 그들의 세상을 채우고 있는 아우라이다. ‘치질’이나 ‘진달래 타이머’의 냉소는 그들이 가진 하나의 태도이지만 반면 노래라는 형식의 틀을 감싸고 있는 멜로디와 기타 사운드의 순수한 아름다움 또한 그들의 태도이다. 시답잖은 농담과 변태적인 욕망이 난무하는 세상의 배설구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화장실을 저린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그들 세계관의 한 일면이다. 바로 그들이 가진 방향성은 냉소와 아름다움의 조율로써 나타나는 오묘함에 그 바탕이 있다. 그들은 감성에 있어조차 표류(Drifting)하고 있는 것이다. 씨니컬함과 순진함의 선 위를 교묘하게 가로지르는 부유! 여기에 부가되는 사운드스케이프 또한 표류의 그것이다. 그들의 개성을 가장 뚜렷이 담은 ‘Sam’의 순수에서부터 ‘송시’와 ‘섬’의 절망적 코드, 뉴에이지 성향의 ‘drifting’과 깔끔하지만 고독한 포크송 ‘shalom’, ‘시간’의 아련함까지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이 표현되고 있기에. 하지만 이런 사운드적 표류가 우리에게 복잡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그들이 ‘아름다움’위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 위에서의 표류란 것은 모든 뮤지션들에게 있어 아주 위험한 방황일 수 있지만 ‘미선이’는 자신들이 가진 고유의 음색을 잊지 않고 여러곳을 부유하며 그 느낌을 새겨넣음으로써 통일성을 이루어낸 것이다.

영역, 감성, 사운드의 총체적 표류는 ‘미선이’가 가진 미덕이다. 하지만 표류속에서도 ‘미선이’가 손을 내밀어 감싸줄 영혼은 아무말없이 방에서 나직히 혼잣말을 읊조려야만 하는 여린 소년, 소녀, 철없는 어른들의 그것일지 모른다. 조용함으로 빗나간 아웃사이더에 더 가까운 ‘미선이’이기에. 그래도, 미안하지만 이들 모두에게 ‘미선이’는 ‘벨 & 세바스찬’의 가사처럼 ‘우린 칼보다도 강해서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라고 결국 말할 것이다. ‘미선이’는 ‘유리상자’가 아니지 않은가! 어제 순해빠진 드라마를 보며 울고도, 오늘 삭막한 세상속에서 싸워가는 당신 아니었던가! 그게 세상이란 걸 정말 몰랐단 말인가! 당신 역시(!) 표류하고 있다. 천국보다 낯선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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