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의 술자리 풍경
포스테키안의 술자리 풍경
  • 박지용 기자
  • 승인 2009.11.18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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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Vino Veritas!

In Vino Veritas!

In Vino Veritas(인 비노 베리태스)! ‘술 속에 진리가 있다’는 라틴어 속담이다. ‘취중진담’이란 말도 있듯이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본성이 나타난다’ 혹은 ‘진실을 말한다’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우리는 술 앞에서 솔직해진다. 술에는 세상사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다. 옛사랑에 괴로웠던 추억, 싸웠던 친구와의 어색한 화해의 순간, 성적에 좌절한 순간, 모두와 함께 나누는 기쁨의 순간, 그 순간마다 술은 우리와 함께 해왔다. 술자리를 보면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다.
이번호 문화면에는 우리대학의 다양한 술자리 모습들을 담아보았다.
박지용 기자 kataruis@

아름다운 통집, 모험의 효자시장…2차, 3차 “참 신기해요”

모든 대학에는 그 대학만의 문화와 이야기가 있죠. 제가 보기에 포스텍 술자리 문화의 최고는 바로 통집이에요. 외국인 친구들에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친구들과 어디를 가냐고 하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해요. 통집! 통집은 정말 아름다워요. 주변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통나무 벽과 통집 안의 작은 뜰은 아늑한 느낌을 줘서, 누구라도 들러서 맥주 한잔 하고 싶은 기분이 들죠. 통집 분위기도 마음에 들어요. 많은 사람들과 음악, 시끄러운 목소리, 웃는 얼굴들과 웃음소리는 휴일 밤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하죠.
통집 외에도 매력적인 곳이 바로 효자시장이에요. 외국인들에게는 끝없는 모험으로 다가오는 이곳엔 다양한 음식과 술이 있어요. 통집이 밤 2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효자시장에서 2차, 3차, 가끔 4차까지 가기도 하죠.
대한민국 모든 대학생들이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포스텍 학생이 술 마시는 것을 보면 외국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일단 가장 다른 건 ‘소주’를 주로 먹는다는 거죠. 소주를 여기 와서 처음 마셔봤는데, 상당히 특별했어요. 맥주와 위스키와는 또 다른 맛이죠.
그리고 포스텍 학생들은 술을 정말 많이 마셔요. 횟수도 그렇지만 꼭 취할 때까지 마시죠. 외국에서는 그렇게 취할 때까지 마시는 자리는 드물어요. 대부분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먹지도 않고 권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여기는 술을 많이 권하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보통 자기 술은 자기가 알아서 먹거든요.
술자리에 2차, 3차가 있다는 것도 신기해요. 이런 모습들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보다 취하기 위해서 술을 먹는 것 같은 느낌도 가끔 받아요. 하지만 이런 술자리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걸 보면 저도 포스텍 학생이 다된 것 같아 좋아요.

- 어느 외국인과의 대화

“역시 우린 진정한 친구”…그리곤 기억이 없다

오랜만에 모인 분반 술자리, 모두에게 연락을 돌렸건만 자리에 나온 이는 남자 6명 뿐. 이런 자리가 그렇게 어색하지만은 않다. 분반에 4명뿐인 여자애들이 술자리에 나오지 않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라 기대도 않는다. 한 때 분반 분위기를 주도하던 여자애들이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로 통 나오질 않는다. 술 마실 때마다 온통 남자들에 항상 똑같은 사람뿐이다.
통집의 한 테이블을 잡은 우리는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우리 뭐 시킬까?”라는 말 뒤로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남자들끼리 오랜만에 모여 별로 할 얘기가 없다. 그러다 어느 한 녀석이 말을 꺼낸다. “야, 너희 그거 알아? 영희 CC(Campus Couple) 됐대.” “완전 의외다. 걔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역시 최고의 가십거리는 남녀 간의 ‘스캔들’이다. 친한 사람은 아니어도 우리대학 여자라면 누군지 정도는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화제가 되기 일쑤다. 얘깃거리가 다하자 또 다시 침묵을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그러다 다시 한 녀석이 말을 꺼낸다. “맞다, 그거 봤어? 어제 첼시 대 맨유 경기, 완전 짱이었는데.” “존 테리가 골 넣은 거 완전 오프사이드 같았는데.” “첼시가 이번 시즌은 우승이라고!” 역시 남자라면 축구! 축구를 싫어하는 우리나라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프리미어 리그라도 유명한 팀 간의 경기는 꼬박꼬박 챙겨본다. “어제 김택용 경기 쩔더라.” “그래도 역시 이제동이 짱이지.” 게임 역시 질리지 않는 떡밥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어온 남자들의 여자ㆍ축구게ㆍ게임ㆍ사랑이란…. 남고에서 얘기하려면 딱 세 가지, 여자ㆍ축구ㆍ게임만 알면 된다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휴, 웃고 떠들며 얘기하는 동안 어느새 술도 많이 먹었다. 다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고 결국엔 다시 진지해져간다. 숙제 핑계로 안 나오는 놈들은 다 배신자들이라는 둥 남자친구 생겼다고 배신했다는 둥 얘기를 하다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다. “역시 우리는 진정한 친구야.” 그리곤 기억이 없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항상 이런 식이었으니깐.

- 어느 학부생의 고백

A군부터 Z군까지…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술자리 실수담

새천년을 맞이하며 포스텍에 입학한 A군은 3박4일로 예정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일정을 소주와 함께 1박 4일로 수행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꽃동네 봉사활동에 짐짝처럼 후송되었다. B양은 하룻밤에 소주 7병을 비우며 술자리의 모든 남자들을 고이 재우고 홀로 1병을 더 비워 형산강부터 영일만까지 그 위엄을 떨쳤다.
학과 발대식에서 C군은 술에 취해 선배들에게 반말을 하며 ‘민증 깔 것’을 요구했고, D군은 옷장을 변기로 착각했다. E군은 동기 모임에서 맥주 9,000cc를 마시고 다음날 기숙사 5동과 8동 사이길에서 발견되었으며, F군은 소주 9병을 마시고 짖기 시작했다. G군은 4월 중순까지 40번의 술자리에 참여한 뒤 피를 토해 응급실에 실려 갔으나 안주로 먹은 짬뽕국물로 밝혀졌고, H군은 아름다운 4월의 폭풍의 언덕에서 돗자리를 깔고 밤하늘에 흩날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며 도서관 가는 친구들을 붙잡아 소주를 먹였다.
I군은 봄 축제에서 매일 밤새 술을 마시며 어째서 봄 축제의 이름이 해맞이한마당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J군은 따뜻한 온기를 찾아 모래로 덮어 끈 캠프파이어 위에서 잠을 자다 다음날 아침 축준위에 의해 철거되었다. K군은 동아리 모임에서 술을 마시다 아홉 번 토하고 되살아난다는 구토지설을 완성했고, L군은 맥주 분수 쇼를 선보여 이를 축하했다. M군은 기말 시험 전날 술을 마시고 시험장에 업혀 들어갔으며, 같이 마신 N군은 걸어서 들어갔으나 시험장에서 토했다.
위의 내용은 당시 함께 했던 선후배들의 이야기이고, 거의 사실에 근거한다. O군에서 Y군까지의 이야기는 문화면보다는 사회면에 어울리거나 너무 원초적인 이야기들이라 차마 밝히지 못하겠다. 이런 실수담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숙사 주변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중 일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한 에피소드일지라도 그때 그 사람들의 머리가 자라게 해준 경험들에 이런 술자리도 포함되었고, 돌+아이 같은 행동들도 일정선 안에서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술과 술자리와 좋은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포스텍 술문화를 특히 더 소중하게 즐겼으면 한다. 포스텍 술문화와 선진 배달문화는 전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 장담하기 때문이다. 다만 술자리에서의 광기가 후회로 남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 Z군의 선배가 술김에 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기분이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쁜 날에는 술을 마시지 마. 기분이 너무 나쁜 날 술을 마시면 꼭 실수를 하게 되고, 기분이 너무 좋은 날 술을 마시면 꼭 좋은 기분을 망칠 일을 하게 돼있거든.”

- 어느 00학번 선배의 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