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문학으로 본 감옥] 생명과 정화의 공간, 감옥
[서평-문학으로 본 감옥] 생명과 정화의 공간, 감옥
  • 김혜리 기자
  • 승인 200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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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있어 감옥, 양심수라는 단어는 우리 시대의 슬픈 단면을 말해준다. 남북이 갈리고 유신체제를 겪으면서 수천 명의 정치 사상범이 생겼고 감옥에 갇힌 많은 지식인들은 독서와 글쓰기로 마음을 달랬다.

축축하고 좁은 감옥, 그 안은 신영복 선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원시적인 공간이다. 특히나 장기수들의 생활은 시인 고은 선생이 ‘기약할 수 없는 세월 저쪽에서 이쪽까지의 잔인한 시간을 거의 초인간적으로 살아낸 그이들은 생명이기보다 암석쪽‘이라고 할 만큼 처절하다.

그러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불리는 까닭은 엽서와 휴지조각에 빼꼼히 적혀 있던 이 글들이 가슴을 울릴 만큼 따뜻하고 나아가 자신과 시대를 성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속에서 나오는 평화의 목소리는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조용하고도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다.
70년대를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인물, 김지하씨의 감옥을 말해보자. 억압적이고 부정적인 세력에 대한 직접적 저항이 김지하 시의 전반기를 이루었다면, 그 죽음의 세계조차 순치시키고 포용시킴으로써 생명의 문화를 재건시킨 세계가 후반기를 이룬다. 이 전향점의 위치가 바로 감옥이다. 차가운 감옥 안에 떨어진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을 보고 끝없이 통곡했다는 김지하씨는 요즈음 율려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생명사상의 연장선을 잇는 이 운동은 생명이 죽은 감옥 바닥에서 싹을 틔웠다는 것은 감옥이라는 단어의 느낌에 새로움을 더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그가 야당시절 2년 9개월 동안 투옥되어 있을 당시 감옥에서 보냈던 편지 29통과, 가족들에게 차입을 부탁했던 책의 목록편지를 묶은 책이다. 김대통령은 신학.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과 경제분야에 치밀한 독서가이며 책벌레로 유명하다. 이 책은 문명비판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고, 야스퍼스 ‘철학적 신앙’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등의 독서목록은 지금도 낡지않은 권장도서 목록이다. 아웅선 수지 여사는 <옥중서신>의 스웨덴판 서문에서 “인류애에 뿌리를 둔 종교적, 정치적 원칙들에 대한 헌신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한다. 투옥 생활은 그에게 독서와 역사의 본질을 성찰할 시간을 제공했다고 대통령 스스로 말한다. 캐나다의 한 칼럼니스트는 ‘한국대통령 감옥에서 성숙했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오늘은 새롭게>는 박노해 시인이 8년여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처음으로 쓴 시명상집이다. 그동안 일부 진보세력에서는 박시인의 행보를 두고 변절을 했다든지 언론의 상품이 됐다면서 부정적으로 평한 경우가 많았다. 박시인은 이 책을 통해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어낸 뒤 감옥 안에서의 사색을 통해 새롭게 도달한 진보와 운동에 대한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감옥을 이렇게 이육사의 시처럼 치열한 자기내면 탐구와 정화의 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산고 끝에 태어난 이 작품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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