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오름돌]군중 속의 이성
[78오름돌]군중 속의 이성
  • 최유림 기자
  • 승인 2009.11.04 2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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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에 스무 명의 사람이 모여 있다. 이들에게 “1 더하기 4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19명에게 “7”이라고 대답하라고 했다. 이때 나머지 한 명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다른 사람들이 바보라고 생각하며 “5”라고 답했을까? 놀랍게도 피실험자의 70%가 “7”이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군중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영향으로 자기이상 행동을 하는 심리상태를 ‘군중심리’라 한다.


군중심리는 가끔 엄청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의 수백만 국민은 붉은 옷을 입고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역사에 남을만한 응원을 보여줬다. IMF 때는 너도나도 장롱 속의 금붙이들을 내놓으며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쳐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사회의 부조리한 일이 있을 때는 군중이 집단 이성이 되어 부조리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모두 군중심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군중심리는 자칫 잘못하면 ‘집단 광기’로 이어질 수 있다. 독일 월드컵 때 몇몇 독일인들은 너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며 걱정했다고 한다. 바로 아리아인 제일주의에 열광하며 이성을 잃고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던 나치시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월드컵 때 함께 모여 응원하는 사람들이나 나치즘ㆍ파시즘의 동조자들이나 그 심리는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에서는 지적 훈련을 받은 지식인이라도 집단정신에 사로잡히게 되면 지적 재능은 약해지고, 무의식적 성질들이 우위를 차지하면서 개인은 군중이 되고 점차 감정적으로 변하며 상상할 수 없는 광기나 패닉에 휩싸이게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군중 속에서 개인은 ‘멍청이’가 되기 쉬워서 군중심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군중심리로 인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지난해 광우병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한 라디오 진행자가 촛불집회를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많은 누리꾼들이 분노하고 방송 하차 청원까지 이뤄졌던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는 ‘경솔했다’라는 약한 비난성의 댓글들이 점차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서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게 되었다. 이때 사람들은 온전히 자신의 이성적 판단만으로 이 진행자를 비난했을까? 군중심리 때문에 이 진행자에게 너무 큰 죗값을 치르게 한 것은 아닐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군중심리를 경계해야 한다. ‘군중 속의 고독’을 많이 느끼는 현대인들은 어느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데, 인터넷은 이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좋은 장소가 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익명성 때문에 자신의 이성을 잃어버리기 쉽고, 개개인이 이성을 잃어버린 집단의 움직임은 ‘광기’로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미래의 과학도로서 군중 속에서 이성을 지켜야 한다. 과학 지식은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서 과학자의 이성은 큰 힘을 갖는 올바른 집단 이성을 형성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대세를 따라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는 숫자놀이 댓글은 이제 그만. 군중심리에 쉽게 동요하는 집단 속에서 나를 지키며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하는 지식인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