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엿보기-패러디 & 안티 문화] 거침없는 풍자와 독설, 매체의 '탈권력'가능할까
[문화 엿보기-패러디 & 안티 문화] 거침없는 풍자와 독설, 매체의 '탈권력'가능할까
  • 곽근재 기자
  • 승인 2000.1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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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불어닥친 패러디의 인기는 아직까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매체 비평에서부터 문화작품에 대한 비판까지 이러한 딴지걸기식의 패러디문화는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삶의 일부분인지도 모른다.

모방과 창조라는 선상에서 벗어나 자체에 대한 비판과 재해석을 서슴지 않는 패러디 문화는 안티문화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안티문화의 구조는 모체에 대한 완전한 상반된 위치에 서 있는 것만이 아닌 패러디라는 겉모습을 꾸미고 풍자식의 맞받아치는 비꼬는 행위또한 포함되어 있다.

인터넷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재창조적인 측면이 가미되어 있는 패러디문화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안티적 입장으로서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무언가 자기를 억압하는 거대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욕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인터넷 매체는 이런 추세에 결정적인 촉매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인 생산자와 수요자의 쌍방적인 관계, 즉 동등한 위치가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안티적인 입장은 시대적 측면에서도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봉산탈춤에서 나오는 말뚝이의 입장은 현재 유행하는 안티, 패러디 사이트의 문체의 느낌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 반대로 보면 안티, 패러디 사이트는 옛 전통 민중문화의 계보에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이트 중에 딴지일보라는 것이 있다. 권력의 위치에 있는 조선일보를 풍자하면서 희화화하는 초창기 패러디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장본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이런 매체적 비판이 계속되면서 패러디를 추구하는 문화매체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 요즘엔 패러디에 패러디를 거듭한 패러디가 나오는 것도 경험할 수 있다. 초창기 패러디가 원래 있던 그 권력과 위치를 바꾸면서 비판 자체가 또다른 비판을 낳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바람직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을 통해 문화와 매체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인터넷문화의 폐해인 거침없는 비판이나 무절제한 언어폭력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나 차츰 자리를 잡아갈수록 그에 대한 폐해도 자정작용을 거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안티, 패러디의 난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현재 인기를 끄는 패러디 사이트들만 해도 100개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양상은 무조건 대립적인 입장만 난무하는 이전투구적 성격이 짙다. 현실에 대해 무조건적인 '똥꼬 깊숙히 쑤시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지속되면 언론매체의 방향은 대체로 폭로적인 성격에 치우치게 될 것이란 점이다. 무조건적으로 열광하는 대중적 심리를 이용하여 폭로에만 집착하게 된다면 처음 그들이 가지고 시작되었던 민중 문화적 신념이 아닌 개인이나 단체의 이기주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형식적 측면을 위주로 계속적인 양적 팽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방향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벗기면 진실에 접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벗고 벗겨지는 문제를 떠나서 냉소적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그리고 벗겨지는 것에만 집착하는 다수들이 대중이 될수록 안티, 패러디는 방향을 잃고 구심점 없는 외침으로 전락한다.

누군가가 ‘패러디는 빨래다’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패러디라는 것은 시원하게 비틀고 주무르듯이 냉정하게 비판을 하고 제자리로 가져다 주는 것, 본모습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방향장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임을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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