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골드베르크 변주곡 & 글렌 굴드]
[나도 평론-골드베르크 변주곡 & 글렌 굴드]
  • 전재형 / 물리 석사 1
  • 승인 2000.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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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진가를 더욱 빛나게 하는 글렌 굴드의 연주

바흐(J. S. Bach)는 운이 좋은 작곡가였을지도 모른다. 그와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했건만 100년이 지나서야 그의 음악들을 알아보는 인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초의 인물은 바로 천재 멘델스존! 아마 이 순간 그의 작품들은 이미 현재의 위치를 보장받았을지도 모른다. 천재가 초연한 작품은 ‘마태수난곡’으로서 지금은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창작작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에도 바흐의 두 작품들이 두 어린 천재에 의해 재조명되었는데 바로 카잘스(Casals)의 ‘무반주첼로조곡’ 발견과 굴드(Gould)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녹음이 그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각 작품의 진면목을 이미 ‘10대’의 나이에 진정으로 인식했다는 점과 이를 ‘처음’으로 완벽하게 연주했다는데 있다. 그럼으로써 동시대 대가들에게 곡의 진가를 이해시켰으며 이들로 하여금 그들을 따라 앞다투어 이 위대한 작품들을 녹음하게 만들었다. 반면 이들의 차이점이라면 무반주 첼로 조곡은 카잘스(EMI) 이후 그에 필적할만한 여러 명반들이 있는데 반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경우 아직 굴드의 위치에 도달한 음반이 없다는 점이다.

작품의 이름을 설명하는 기원은 이러하다. 작센 지방의 영주의 요청으로 바흐는 불면증에 시달려 잠 못 이루는 밤에 들을만한 길고 아름다운 변주곡을 작곡하게 된다. 이 곡을 그의 어린 문하생인 골드베르크(Goldberg)가 영주의 침실 옆방에서 밤마다 연주하게 되었고 그 연유로 그런 별칭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원제는 두 개의 건반을 가진 하프시코드를 위한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를 가진 연습곡). 그리고 글렌 굴드의 녹음 이후 사람들은 이 곡을 골드베르크가 아니라 ‘굴드베르크(Gould berg)’라 말하곤 한다. 그 만큼 굴드가 이 곡에 불어넣은 생명력은 대단하다.

굴드는 생전에 두 번 이 곡을 녹음했다. 자신의 데뷔 앨범[1955, CBS-SONY]으로 한번, 죽기 바로 전 한번[1981,SONY](애석하게도 굴드는 자신의 두 번째 음반을 들어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굴드를 포함해서 한 연주가가 같은 곡을 20년이 넘는 긴 시간차를 두고 두 번 녹음하는 일은 이례적인 일인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두 녹음이 서로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 작품의 기념비적인 명반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과 관련해서 더욱 굴드를 기억하는 이유는 갖자기 기행으로 떠들썩했던 그의 인생 자체가 마치 이 작품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곡은 32마디의 아름답고 애절한 선율의 아리아(Aria)로 시작한다. 감상자는 너무나 매력적인 이 아리아로부터 혼을 뺏기고 만다. 그리고 이 아리아를 주제로 해서 30가지의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지는데 독특한 점은 마지막 변주를 마치고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오면서 끝을 맺는데 있다. 마치 뫼비우스 띠와 같은 이 구조 때문에 곡은 ‘무한히’ 반복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처음과 끝을 하나로 맺어주는 이 신비한 아리아와 관련해서 연주가들마다 자신만의 견해를 갖고 있는 듯 한데 따라서 연주가들마다 이 아리아 연주에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30개의 변주곡 안에서도 대단히 의도적인 바흐의 규칙성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이 변주곡을 하나로 잇는 공통점이 ‘선율(melody)의 유사성’이 아니라 ‘32마디’ 아리아를 구성하는 ‘저음부(코드)의 공유’라는 데서 시작한다. 마치 곡의 모태가 되는 아리아의 DNA sequence를 그 변형체인 변주들도 똑같이 물려받은 꼴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변주곡 자체가 ‘32곡’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곡 전체는 32개 코드로 이루어진 시퀀스가 32번 반복되는 구조이다(이 곡의 매니아를 위해 마지막 변주는 예외로 친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런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변주 세 번마다 나타나는 캐논(canon). 하나의 선율이 다른 높이의 음정에서 시간차를 두고 동시에 진행하는 형식(돌림노래)인데 첫 캐논에서는 그 선율들이 1도 음정의 차이를 두고 두 번째는 2도 음정, 세 번째는 3도 음정을 두면서 그 차를 벌인다. 그러나 마지막 아홉 번째에서 그 사이가 9도 음정을 이루면서 원래 선율의 높이와 같아지게 된다. 이는 마치 아리아의 반복에서 곡 자체가 무한반복구조를 갖는 것처럼 캐논들도 그 안에서도 처음과 끝이 하나로 묶여지게 된다.

아마 여러 독자들은 이런 복잡한 구조 때문에 따분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렇다. 중요한 건 이 곡의 이런 복잡한 규칙성에 앞서 단지 듣기에 너무나도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굴드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나 저절로 탭을 치며 그와 함께 흥얼거리게 된다. 유독 여기에 굴드의 연주라 지칭한 이유는 그의 연주야말로 가장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지식한 평론가들이 굴드의 연주에 비난한들 그의 연주가 가장 감동적이며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굴드 연주의 독특한 개성은 아마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 하는 노력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모두들 레가토에 페달 연주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음의 명료성을 위해 모든 음을 논 레가토(Non legato)로 연주하려는 생각과 그럴 수 있는 능력, 구애받지 않는 템포 설정이 독창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독창적인 연주로 세계를 경악케하며(찬사와 경멸 둘 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데뷔했던 그의 인생은 다시 더욱 정교해진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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