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이중섭의 닭과 가족] 고달픈 삶만큼이나 깊었던 가족과 민족에 대한 사랑
[나도 평론-이중섭의 닭과 가족] 고달픈 삶만큼이나 깊었던 가족과 민족에 대한 사랑
  • 이혁순 / 산업 2
  • 승인 200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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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아늑한 느낌과
속도있는 굵은 선에서 나오는 강렬함은
보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이중섭. 중학교 미술책에 나왔던 흰 소라는 작품때문인지 그의 이름 석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이름만큼이나 그의 그림들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오며,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는다 하여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순박하다. 그다지 화려한 색채를 쓰지 않는데다가 선들도 날카롭지 않고 대개 둥그스레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데다 속도있는 굵은 선에서 나오는 강렬한 느낌마저 주어 보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중섭은 평남 대지주의 아버지와 민족자본가 집안의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여의면서 그의 고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많은 그림을 그렸음에도 변변한 종이를 살 수 없었으며 일본인 아내와 아들들과 생이별을 한 채 병원에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기구한 생애를 산 이중섭의 그림들은 어떠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것일까.

소를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란 분명히 그에게 단순한 소 이상의 존재이며, 소는 일제시대에 억압 받았던 우리 민족과 조국의 표상이다. 그가 소를 그린 이유를 추측하면 민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소를 통해서 민족이 처한 비극과 소를 통하여 그가 떠나온 고향에 대하여 생각하기 위함일 것이다.

굳이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대라고 한다면 나는 닭과 가족(1954)을 꼽는다. 닭과 사람이 뒤엉켜 있는 이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그의 가족을 사랑하고, 헤어져 있는 가족들과 재회하고 싶어하는지 그 염원이 나타난다. 어디가 연결된 지는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가족들을 부분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모든 이들의 얼굴의 형상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가족에 한정되지 않고 전후에 민족의 대다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인간 군상들을 그린 모습의 특징은 어느 한 곳에 보는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도록 화면에 가득차며 사방에 주제들을 흩어놓았다는 점이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경쾌함과 어느 정도 분주함까지 느낄 수 있다.

그를 국민화가로 떠받들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고달픈 삶만큼이나 깊었던 가족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리라.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려고 노력한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잊혀지고 있었던 가치들인 가족들의 정, 조국에 대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모두가 그를 통해서, 닭과 가족을 통해서 위대한 예술가의 혼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