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제언] 포항공대만의 ‘문화 만들기’ 시작할 때
[독자 제언] 포항공대만의 ‘문화 만들기’ 시작할 때
  • 박정준/화학 석사 1
  • 승인 200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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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대 비해 대학문화 정체성 잃고 있는 현실

포항에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문화 여건의 열악’이다. 서울 등의 대도시에서 학창생활을 보내는 친구들의 생활과 지방 중소도시에서 사는 우리의 생활을 비교하다보니 그 빈곤감은 더욱 커지고, 대학내의 캠퍼스 속에서의 생활에서도 문화란 것을 느껴보기 힘들다보니 더욱 그러하다고들 한다.

사람의 인성은 문화속에서 더욱 성숙해져 간다. 문화가 있어야 사람들은 지적, 예술적 자극을 끊임없이 접하게 되고, 그 자극들이 성숙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그 어느때보다 이런 자극에 민감히 반응하고 그 자극들로 정신을 풍요하게 살찌울 수 있는 우리 또래의 젊은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문화가 부족하다는 것은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인 포항공대가 가져야 할 문화, 즉 ‘포항공대의 대학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국에서의 대학문화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인 70년대 학번들은 군사독재의 그늘아래에서 ‘낭만’을 자족삼아 대학생활을 보냈고, 우리들의 형, 누나들인 80년대 학번들은 ‘참여’를 기치삼아 그들의 젊음을 불태웠다. 우리들 중 대다수가 속한 90년대 이후 학번들의 경우는 한 단어로 그들의 대학문화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80년대 학번의 뒤를 이어 ‘참여’를 부르짖던 움직임도 90년대 중반을 넘기며 크게 수그러들고, X세대나 N세대같은 신조어와 함께 극도의 소비문화와 개인주의속에 ‘대학인들이 서로 공유하는 문화’의 모습보다는 ‘나만의 문화, 즉 개인적인 문화’만 남아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80년대 후반에 설립된 우리 학교의 경우는 어떠할까? 연구중심대학이란 설립이념에 걸맞게, 교수님들과 선배들의 노력으로 개교 초기부터 학구적인 풍토를 심어온 것은 우리 대학이 가지는 자랑이다. 단지 단점이라면 이공학 관련 일색이다 보니 젊은 시기에 겪고 싶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주긴 힘들다는 점이다. 이공학 관련 문화에서는 한국 대학 사회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반면, 그 이외 분야에서는 낙후성을 면치 못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발달한 한국 사회의 현실상, 지방도시 포항의 문화 여건은 상대적으로 빈한하기 그지없었고, 학교에서 제공한 여러 가지 문화 프로그램도 대학 구성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떠먹여주는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찾아먹기 위한 밥상 위의 반찬이 작다는 것, 즉 학생들이 향유하고픈 문화 아이템의 가짓수가 작다는 것이 지방소재 포항공대에서 학생들이 문화를 향유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주어지는 문화 이외에 스스로 만들어간 문화(스스로 지은 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한국 대학 문화가 ‘참여’ 일변도로 흐르던 시절, 그것이 당위라는 생각 속에 그런 주류 문화에 동참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어느덧 세월은 90년대로 접어들고 극심한 소비문화와 개인주의 속에 대학문화란 단어 조차 무색한 시점에 다다르자 그런 시도도 반향을 잃고 사그라들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포항공대의 문화란 것은 이공학 관련 분야를 제외하고는 피어나지도 못한 채 져버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문화를 꾸려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여기에 대해서 한 가지 제언을 하려 한다.

우리 학교가 한국 이공학 분야에서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했듯이 우리도 아이템을 가지고 구성원들의 역량만 모으면 한국 대학 문화의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수도권 대학의 문화를 천편일률적으로 흉내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 그걸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대학문화를 만들고, 그것이 씨앗이 되어 이 포항땅에 고유의 지방문화가 형성이 될 때에 우리는 그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안타까운 것은 작년 총학에서 시도했다가 불발이 된 아이템이다. ‘환경’을 주제 삼아 각 대학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그 운동에서 우리 학교가 주도적인 위치에 서자는 제안이었다. 이공학적 연구성과의 바탕 위에 환경친화 기업의 성격이 강한 포철과 연계되어 있다는 장점에 힘입어, ‘환경’을 주제로 축제나 캠페인, 학술제, 영화제 등을 벌이며 우리 대학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독일 남동부의 자그마한 도시 바이로이트가 ‘바그너‘의 이름 하나만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포항공대가 한국 나아가서는 세계에서 환경운동의 한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계기도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문화여건이 열악하다고 불평만 해본들 소용이 없기 마련이다. 젊은이들을 위한 문화는 젊은이들 스스로가 씨앗이 되어서 그 지방 문화를 변화시켜야 비로소 태동된다. 자칫하면 흩어지고 마는 씨앗들을 모을 때에 대학문화가 형성이 될 것이고, 그 구심점의 예로서 불발되고만 시도인 환경을 주제로 한 대학문화 형성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