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문학과 지성사, 1999.]
[나도 평론-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문학과 지성사, 1999.]
  • 조은영 / 화공 2
  • 승인 200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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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이 그리운 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

5. To treno fevige stis okto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11월은 당신 기억 속에 영원히 남으리.
이제 밤이 되어도 당신은 비밀을 품고 오지 못하네.
기차는 8시에 떠나고 당신은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아픔을 새긴 채 안개 속에 5시에서
8시까지 앉아만 있네

누군가가 나에게 주고 간 이 책은 내가 갓 대학에 들어와 적응을 해 나갈 무렵, 아직은 생소한 기숙사 방에서 꽤나 진지하게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그리고 그 내용을 그렇게 떠올릴 때면 그때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이 나의 이 책에 대한 ‘기억’이다.
주인공 하진은 성우다. 그 스스로는 ‘이름도 없고 애칭도 없고 의미있는 행동을 찾아내지도 못하는 익명의 내 목소리’라고 말한다. 그녀는 잃어버린 기억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과거를 덮고는 살 수 없다’ 라 하면서 자신은 그 과거를 억지로 잃어버리고는 그 잃어버린 ‘과거’로 인해서 현재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하진. 그녀의 주위에는 아픔을 겪은 조카, 혼자 살면서 언제나 그녀가 찾아가서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은 윤, 남편을 잃은 슬픔을 가지고 힘들어하며 그녀와 대화를 하고싶어서 전화를 걸어오는 낯선 여자, 사향노루를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처럼 생각하며 묵묵히 남은 생을 살아가시는 아버지, 그리고 그녀를 원하고 사랑하는 그가 있다.

그녀의 주위에 있는 상처받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그 상처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채로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상처의 기억들을 아직은 인정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술로 세월을 보내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낯선 여인을 주인공은 그냥 들어주고 밀어내려 하지 않고, 자신의 손목을 스스로 그은 조카를 언니 대신 돌보아준다. 그 시간들 중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지금의 자신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고, 잃어버린 그 기억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시간 속의 단서를 찾아서 제주도에 다녀온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잃어버리려 노력하여 잃어버린 ‘오선주’의 시간들을 그녀는 되찾고, 다시 그녀의 자리로 돌아와 결혼을 수락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낯선 여인에게 위로와 충고를 해준다.

지금 현재의 시간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그것보다 부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나는 현재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예전을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현재를 살아간다. 이 작품 속의 하진은 현재를 무언가 결핍된 상태, 절뚝이는 모습으로 살다가 그녀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음으로써 제대로 나아갈 기반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이 작품 속에서 여러 사람, 그들 삶, 사랑을 보고 ‘나’를 생각한다. 나의 사람, 삶, 사랑. 그럴 수 있는 것이 소설의 묘미가 아닌가 한다. 작가의 표현을 느끼고, 작가가 만들어내고 전달하기를 원하는 인물을 느끼고, 그 속에서 나를 느끼고….

학교를 갓 들어왔을 때 생소한 책들, 수업들, 사람들 사이에서 허우적 거릴 무렵, 누군가의 배려로 읽게 된 이 책은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꽤나 나를 웃음짓게 했었다. 2년이나 지나버린 지금, 다시금 기숙사 방에서 음악과 차를 곁들여서 읽어봐야겠다. 인생이 다 그렇듯 그때와 지금은 또 다르겠지. 그런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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