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카우보이 비밥] 당신이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는?
[나도 평론-카우보이 비밥] 당신이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는?
  • 장문수 / 전자 4
  • 승인 200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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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단어를 듣고 어떤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수 있을까?
서기 2080년의 하늘을 나는 1935년산 비행기와 같은 이름의 Swordfish, 화성태생의 주인공, 수배범 사냥꾼, 위상차 게이트… 이런 단어들로 설명이 부족하다면 담배연기 자욱한 바에서 버번을 시키는 남자, 기억속의 여자, 권총, 차이나마피아… 이런 단어들이 적절히 어우러져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한 사람이 되어서 직접 대입이 되는 일인칭의 글은 개인을 계속해서 자기 내부로 잠기게 한다.외부 감각을 통해 얻는 모든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이 그것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그런 느낌을 전달해주고 그것은 우리에게 처음의 이질감보다는 마지막의 동질화를 통해 기억에 남는다. 비밥의 등장인물은 우리들이 그 중의 하나에 동질화 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에 더욱 남는 애니메이션이 될지 모른다.

한 편의 사실적인 소설과 같은, 그러면서도 너무나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 네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 그리고 그들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연주를 해낸다. 제목이 너무 잘 어울린다. 비밥. 재즈에서만의 비밥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인물에서, 설정에서도 너무나 개성있게 하나의 주제를 변주해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펼쳐지는 음악은 감정이 너무 많이 배어나와도 혹은 너무 적게 배어나와도 실패다. 손을 대면 끈적할 정도로 묻어나면서도 흘러내릴 수 있는 정도의 감정. 모든 것을 알고나면 오히려 시시해진다. 비밥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감춘다. 작품에서 말하는 것은 다 기억의 조각일 뿐, 실제로 주어지는 정보란 제한적인 것이며 주관적인 것이다. 우리는 분명 스파이크가 아닌 곁에서 지켜보는 시점에 서 있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과거는 스파이크의 주관적인 것이며 그중에서도 아주 일부일 뿐이다.

주인공 Spike Spiegel, spiegel은 거울이라는 뜻의 독일어. 남자는 항상 과거에 묻혀 살아간다는 말을 충실히 지킨다. 그는 과거를 현재에 비춰주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 전직 경찰 제트 블랙과 비밥호를 타고 현상범 사냥꾼이 된다. 스파이크는 귀찮은 짐승과 시끄러운 꼬마애와 경박한 여자를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비밥에는 평범하지 않은 개, 아인과 가족이 없는 꼬마해커 에드,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린 페이 발렌타인이 합류한다. 서로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 동료라는 것에 대한 미묘한 감정, 결코 서로간의 진한 동료애는 보이지 않는다. 스파이크의 과거속에 사는 여자, 줄리아와 그의 적 비셔스(Vicious), 이름만으로도 간단하고 명료하게 성격을 드러내주는 악한 역, 하지만 그도 스파이크에 의해 가슴에 상처를 받은 외로운 사람일 뿐이며 우리의 시야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을 지탱하는 다른 축은 음악이다. 칸노 요코의 음악은 사소하고 작은 부분에서도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하나로 만들어 준다. 크진 않지만 디즈니의 “판타지아” 시리즈에서 추구하던 그 어떤 것을 여기서 이미 볼 수 있게 해준다. 진득하게 배어있는 블루스에서 코믹한 분위기까지 음악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애니에게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또 돋보이는 TV판 애니메이션 최고의 퀄리티는 이 작품에 쓰인 모든 장면의 꼼꼼한 준비과정을 감추고 있다. 너무나도 자세하게 설정되어 있다. 이런 외적인 요소가 우리와 애니메이션과의 가운데에 자리한 공간적, 정서적 거리를 줄여준다. 하지만 절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각각이 개별적인 곡선을 그려가다 만나는 그 지점에서 우리의 마음으로 스며드는 장면이 탄생하는 것이다.

아직 카우보이 비밥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긴 말을 하면서 “이 애니메이션한 편 보면 어때?” 하고 권유하는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재미를 위해 내용을 미리 말하지도 않았다. 평가는 개인의 몫이다. 눈으로 보지 말고 가슴으로 보라는 말을 하면서 모든 것을 말해주는 스파이크의 대사 한 마디를 적는다.

“난 한쪽 눈으론 과거를, 또 한쪽 눈으론 현재를 바라보고 있지. 그것이 내가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