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는 MPI-Korea에서, 학위는 포스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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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5.0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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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플랑크 연구소(MPI-Korea)의 포스텍 유치를 기원하며

 

독일의 대학들이 세계 대학 랭킹에서 많이 뒤떨어지게 된 주된 이유로 아이러니컬하게도 MPI를 꼽는다. MPI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에 우수한 연구진과 박사과정생들이 대학보다 MPI로 몰려, 상대적으로 독일 대학의 연구경쟁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사진은 MPI-Tubingen

독일전역과 그 외 지역에서 80여 개 연구소 운영
연구기관으로서는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 배출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던 포스텍을 떠나 막스플랑크 연구소(MPI ; Max Planck Institute)에 온 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모교의 후배를 통해 MPI-Korea가 포스텍에 유치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바라는 포스테키안의 한 명으로서 MPI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짧은 기간이지만 MPI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서의 적응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막스플랑크 재단(MPG ; Max Planck Gesellschaft)은 1948년에 그 전신인 카이저빌헬름 재단(Kaiser Wilhelm Gesellschaft, 1911년 설립)에 이어 설립되었다. MPG의 지원 아래 MPI는 현재 독일 전역과 그 밖에 미국·이탈리아·네덜란드 등에 걸쳐 약 80여 개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MPI는 연구기관으로서는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여 노벨상 사관학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연구 분야는 크게 ①생물학 및 의학(Biology and Medicine) ②화학·물리·공학(Chemistry, Physics and Technology) ③인문학(Humanities)으로 나뉜다. 2009년 예산이 약 13억 유로(약 2조 3,000억원)나 된다고 하니 연구소의 규모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속한 연구소는 인구 7만의 작은 도시인 튀빙엔(Tuebingen)에 위치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해 중세 유럽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튀빙엔은 원래 인문학으로 유명하여 헤르만 헤세·헤겔·괴테·횔더린·셀링 등 유명한 문호·철학자·신학자들이 공부한 대학 도시이기도 하다.
MPI-Tuebingen에는 두 개의 연구소(Institute)가 있다. 하나는 발달생물학 연구소(MPI for Developmental Biology)이고, 다른 하나는 바이오 인공두뇌학 연구소(MPI for Biological Cybernetics)이다. 바이오 인공두뇌학 연구소에는 3개의 연구 그룹(Department)과 3개의 주니어 연구 그룹(Junior Research Group)이 있다. 주니어 연구 그룹은 4~5년의 한시적인 프로젝트성 연구팀으로 신진 박사급 인력이 그룹 리더가 되어, 교수들이 이끄는 기존 연구 그룹과는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는 바이오 인공두뇌학 연구소의 Bernhard Schoelkopf 교수의 연구 그룹에 연구원(Research Scientist)으로 있다. 우리 연구실은 독일·프랑스·영국·미국·터키·스페인·이탈리아·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60여 명 가량의 연구원 및 박사과정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MPI는 1999년부터 지역 대학과 연계해 젊은 과학자를 교육하고 육성하기 위해 ‘International Max Planck Research Schools(IMPRS)’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IMPRS는 MPI에서 박사과정생을 뽑아 3년간 장학금을 지원해주면서 박사학위 과정을 지역 대학과 연계하여 MPI 연구 그룹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연구 기관인 MPI에 박사과정이 있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엄밀히 말해 MPI는 대학이 아닌 연구 기관이기 때문에 MPI에서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할 수 없다. 따라서 MPI 소속 박사과정생들은 소속 그룹의 지도교수와 연구원들의 지도 아래 연구를 하고, 학위는 지역의 대학으로부터 받게 된다.
최근 2년 동안 필자가 속한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원들이 지멘스·야후·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다국적 회사로 취직하는 것을 볼 때, IMPRS가 우수한 신진 과학자들을 잘 육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독일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는데, 독일의 대학들이 세계 대학 랭킹에서 많이 뒤떨어지게 된 주된 이유로 아이러니컬하게도 MPI를 꼽았다. 요는 MPI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에 우수한 연구진과 박사과정생들이 대학보다는 MPI로 몰려, 상대적으로 독일 대학의 연구 경쟁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MPI에서 필자가 하고 있는 연구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술을 의료영상 분석에 응용하는 것이다.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박사학위 과정 동안에는 기계학습 기술을 마케팅 데이터, 제조 데이터, 금융 데이터 등 주로 비즈니스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이용했으나, MPI에서는 의료 영상 분석 쪽으로 전혀 다른 응용 연구를 하게 된 셈이다. MPI에서의 연구는 우리 그룹의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튀빙엔 의대팀, 옥스포드대 의료영상 연구팀, 독일 지멘스 연구팀 등과 공동연구로 진행하고 있다.
서로 다른 배경의 연구팀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초기에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다. 먼저 의료 영상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외부 공동 연구원들과 미팅을 위해 기초 의학용어, 의료 영상 장비 특성, 의료 영상 SW 활용 등 분야의 배경지식을 단기간에 익혀야만 했다. 또한 세부 연구 책임자로서 서로 다른 배경의 연구팀들의 요구사항을 중간에서 잘 조율하고, 각 연구팀의 노하우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초기에는 미팅을 할 때마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제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지멘스 연구소로부터 의료 영상 데이터를 제공받고, 옥스포드대로부터 의료 영상 분석에 관한 기존 SW 개발 노하우를 전수받은 후 우리 그룹의 기존 연구 결과에 최신 기계학습 방법론을 접목함으로써 보다 향상된 의료영상 분석 SW를 작년 겨울에 최종 개발, 이를 학술대회에서 논문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부족한 언어와 배경지식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러 공동 연구원들의 협력으로 1년여 만에 MPI에서의 첫 연구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 연구를 하면서 몇 가지를 느낀 점이 있다. 먼저 모든 것이 한국에 비해 느리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어 보일 정도로 연구가 기초부터 단계별로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진행된다. 연구실 동료들을 보면 한 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늘 같은 부분을 연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주관적인 견해일지 모르지만, 한국의 연구가 쌩쌩 달리는 스포츠카라면 독일 연구는 천천히 움직이는 불도저에 비유할 수 있다. 즉, 한국은 최신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여 즉시 현장에 적용하는 뛰어난 응용 기술이 있지만, 이해 비해 원천기술에 대한 힘이 부족해 파급효과를 최대화하고 이를 지속할 힘이 부족해 보인다. 반면 독일은 하나의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응용하는 데 많은 시간 걸리기 때문에, 변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에는 약점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불도저처럼 비록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엄청난 힘으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가 현장에서 결실을 맺게 된다면 그 파급효과 또한 크고 길게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MPI-Korea의 포스텍 유치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기대를 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MPI는 매 3년마다 동일 분야의 외부석학들의 평가만으로 연구 예산이 편성된다. 즉, 해당 분야의 기초연구 또는 선도연구를 장기간에 걸쳐 수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연구환경이 제공되는 것이다. 따라서 MPI의 연구지원 환경과 포스텍의 뛰어난 응용기술을 가진 연구 인력이 합쳐진다면 성공적인 협력 모델이 될 것이라 기대된다. 예를 들면, 포스텍의 신진 연구 인력이 주도하여 ‘MPI-Korea 주니어 연구 그룹’을 유치하여, High-risk, High-return의 미래 유망 기술을 독립적으로 연구한다거나, IMPRS를 포스텍과 연계하여 연구는 MPI-Korea에서 하고 학위는 포스텍에서 받는 연계과정 등을 예상해볼 수 있다.
유난히 길었던 독일의 겨울이 4월이 되어서야 그 기세가 누그러지고, 이 곳 튀빙엔에도 지난주부터 봄이 성큼 다가왔다. 연구소로 가는 숲길에서 아름답게 핀 꽃들을 볼 때마다 벚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포스텍 캠퍼스도 함께 생각난다. 포스텍 구성원들의 염원대로 MPI-Korea가 성공적으로 포스텍에 유치되기를 포스텍 동문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대원 / 동문(산경 학98), MPI-Tuebingen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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