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엿보기 - 중국의 ‘한류’ 열풍] 상업성 집착보다 문화 선진국 디딤돌 삼자
[문화 엿보기 - 중국의 ‘한류’ 열풍] 상업성 집착보다 문화 선진국 디딤돌 삼자
  • 손성욱 기자
  • 승인 2001.0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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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매우 낯설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그들에게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은 88년 서울 올림픽과 한-중 축구전에서 ‘공한증’을 불러일으키는 공포의 대상 정도였다. 90년대 말, 이러한 인상에 문화적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하면서 ‘한류(韓流)’라고 불리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한류란 ‘한국의 음악, 드라마, 패션 등의 대중유행문화가 중국에 매섭게 파고들고 있다’는 뜻으로, ‘한류(寒流)’와 동음이의어이다. 이 신조어는 클론 H.O.T 등의 북경 콘서트 대성공으로 중국 언론에서 ‘한국음악’과 ‘한국 문화’를 대신하는 말로 통용되었으며, NRG와 안재욱 등의 공연을 계기로 중국의 매스컴을 온통 새까맣게 뒤덮기도 했다.

물론 안재욱 같은 케이스는 운이 좋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는 중국의 한류 열기는 시기적으로 모든 것이 딱 들어맞은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아시아의 유명매체들이 시청률과 신선함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한국 오락’은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한국 예술문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에 이어 발빠르게 등장한 것이 바로 중국어권 가수들의 한국어 번안곡이었다. 80년대 담영린(알란 탐)이 조용필의 히트곡을 번안해서 불렀던 것과는 달리 90년대 말의 한국어 번안곡은 그 수용의 폭이나 전개 속도가 급속도로 팽창되었다. 특히 댄스음악이라고는 조금 빠른 박자와 단조로운 멜로디로 진부하기만 했던 중국 음악계에서는 멜로디와 랩 등 여러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는 한국음악의 힘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중국에서 한류의 기운이 높아지자, 한국과의 문화 교류에 일등공신이라며 한국 댄스음악을 장려하던 기존의 중국 정부의 입장도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다. 그들은 새삼스럽게 중국음악의 정체성과 불안을 거론하게 되었고, 언론과 손을 잡고 한류를 막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10월 열리기로 했다가 사기 사건으로 인해 공연 자체가 무산된 NRG, 안재욱, 이정현, 클론, 베이비복스 등의 합동공연의 경우, 공연 불발이 고의적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이를 빌미삼아 한국가수들의 중국 공연을 가차없이 금지시킨 것도 모자라 한국 정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정부가 이렇게 한국 음악에 대한 경계를 엿보이자, 가뜩이나 한국 음악의 폭발적인 기세에 못마땅했던 중국 언론의 한국음악 깎아내리기도 한 단계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한국 깎아내리기’의 밑에는 중국인들의 사상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중화사상에서 연유된 한국에 대한 비하 감정이 숨어 있다. 약소국이라 여기던 한국의 음악이 자국 내에서 주목을 받게 되고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받으며 영향을 미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 정부와 언론의 반감에 눌려 한류는 이대로 한 때 지나가는 유행처럼 사라져버리고 말 것인가? 아무리 중국에서 인기있는 한국 가수라고 할지라도 문화 수출을 통한 실질적인 이익을 창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수의 국내 기획사들은 중국 진출에 대한 회의론을 갖고 일찌감치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중국 시장 진출의 뜻을 접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발전방향과 계획의 틀을 세워 한류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한류를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와 수출, 관광 등 여러 면에서의 대중국 산업의 실질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문화의 세기’라 일컬어질 만큼 문화 수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21세기에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세계적인 문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도 모두 한류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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