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축사] 꾸준한 노력으로 순수한 학문 추구
[졸업식 축사] 꾸준한 노력으로 순수한 학문 추구
  • 최형섭 전 과기부 장관
  • 승인 200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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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각고의 노력 끝에 박사, 석사 및 학사의 학위를 받게 되는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애써준 정성기 총장을 비롯한 교수, 직원 여러분과 학부형들에게도 치하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86년 포항공대가 처음 개교할 때, 많은 국민들은 포항공대가 우리 나라 과학기술계와 교육계에 큰 발전을 가져올 견인차가 되기를 기대했으며, 개교이래 13년이란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목적을 훌륭히 이루어 왔다고 봅니다. 이러한 결과는, 국가의 장래를 결정짓는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은 양보다는 질에 역점을 두어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자는 건학이념에 따라 안정된 재정적 지수를 바탕으로 연구와 교육이 병행된 알찬 노력의 결실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

19세기 유명한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하더라도 과학자는 자기의 조국에 영예가 되는 모든 일에 전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과 기술에는 국경이 없다 하더라도 과학기술인에게는 국적이 있음을 여러분은 명심하여야 합니다. 과거 40년 동안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우리 나라이지만, 최근의 현실은 경제적겭英맛岵막?우리를 시련과 도전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국가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나는 금속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금속공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학자들은 많이 있습니다마는, 그 중에서도 내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 두 분 있습니다. 그 한 분은 독일의 궤팅겐대학의 탐만(Gustav Tammann) 교수고, 다른 한 분은 일본 도호쿠대학의 혼다 코타로(本多光太郞) 박사입니다.
탐만 교수는 “‘탐만’ 이전에 ‘탐만’ 없고, ‘탐만’ 이후에 ‘탐만’ 없다”는 말로 대변되는 위대한 금속학자입니다. 금속공학의 이론체계를 확립한 사람이 바로 이 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아마 수백 년만에 한 사람 날까말까하는 천재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혼다 박사는 평생을 곰같이 일하면서 일본의 금속연구를 세계정상급으로 이끌어 올린 분입니다. 혼다 코타로 박사는 도쿄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물리학계의 거목인 나가오카 한타로(長剛半太郞) 박사 밑에서 연구생활을 시작했는데 밤낮 가리지 않고 황소같이 일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혼다 박사는 매일 대학의 지하연구실에서 자정이 넘을 때까지 일을 했고, 일년 열두 달 빠짐없이 이를 지속했다고 합니다.

혼다 박사는 후에 독일로 유학을 가서 탐만 교수 밑에서 금속 및 합금의 물성연구에 종사했습니다. 여기에서도 그는 만사 제쳐놓고 연구에 몰두하여 43개의 원소의 자기계수를 측정해내는 초인적 끈기를 발휘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동안 외부와 일절 소식을 끊어 버려 일본에서는 그가 죽은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는 도호쿠대학으로 돌아와 이 대학에 부설된 금속재료연구소의 설립과 운영을 주도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끝내 재료연구부문에서 세계적 중추기관으로 발전했는데, 이렇게 되는 데에는 창립자인 혼다 코타로 박사의 공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스승인 나가오카 박사가 혼다 박사 재임 25주년을 기념하는 축하회에서 한 말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혼다 군이 그렇게 머리가 뛰어난 학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특징은 부단히 노력하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혼다 박사를 보면, 세상에서 훌륭한 일을 하는 데에는 그 사람이 수재냐 아니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노력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 분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학문하는 데에는 반짝이는 재주보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는, 지금 우리 회사는 밤낮 가리지 않고 곰같이 일하는 혼다 박사와 같은 인재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과학기술의 개발이 필수적이고 과학기술이 제대로 개발되려면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의 발전은 결국 이를 담당해야 할 과학기술자들의 품위와 자세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선배들이 보여준 학문하는 자세에 대하여 몇 가지만 더 언급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과학자 윌리엄 쿨리지(William D. Coolidge)는 최초로 X선의 실용화 장치를 만들어낸 사람인데, 이 발명으로 전기기기 제조업체로 유명한 GE사가 오늘의 번창을 가져온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GE사에서는 쿨리지 박사의 공을 생각하여 박사에게 그 회사의 당좌수표를 백지로 위임하여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청산을 해보니 당시의 일반 대학 교수들이 받는 최저 봉급만큼도 쓰지 않아 GE사로서는 낮은 사원의 봉급정도밖에 지출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학자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연구하는 사람은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구하고 학문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부장이니 소장이니 하는 행정적인 지위가 아니라 그의 전문분야에서 그가 이룩해낸 업적 내지 작품의 양과 질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위하여 전념하는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반도체의 이론확립과 응용으로 노벨상을 받는 미국 벨전화연구소의 윌리엄 브래드포드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박사나 존 바딘(John Bardeen) 박사 같은 학자들은 연구소의 임원이 되어 달라는 여러 차례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원하는 연구에만 전념했었습니다. 벨전화연구소에서는 이러한 기풍을 진작시키고자 이 사람들에 대하여 여러 모로 특별대우를 했는데, 그 일례로 연구소에서는 아무도 깔 수가 없었던 ‘카펫’을 이 분들 방에만은 깔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하는 사람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달라야 합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은 연구하다가 책을 베고 자는 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시계를 쳐다보고 일하지 말라”고 역설한 바도 있습니다.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이 어느 여가에 시계를 쳐다볼 수 있겠습니까? 토요일은 반나절, 일요일은 온종일 놀아야 된다는 관념은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없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아예 연구 자체가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학문에는 종점이 없습니다. 1867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함으로써 엄청난 부자가 된 알프레드 버나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은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계속하여 18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355가지의 특허를 더 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공부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가 얼마나 알고 있느냐’를 자랑하기 전에 ‘자기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으냐’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은 고전물리학의 골격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캄캄한 넓은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줍고 있는 셈이다”라고 술회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연구하는 사람은 무엇을 탓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연구실 환경이니 연구기재니 하는 것 때문에 연구를 못하겠다는 것은 학문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연구와 관련하여 나는 자주 영국의 캐번디시연구소를 예로 듭니다. 그것은 이 연구소가 훌륭한 연구업적을 많이 냈기 때문이 아니라 연구소에 감돌고 있는 참다운 연구분위기 때문입니다.

캐번디시 연구소를 찾아가 보니 캠브리지대학의 물리학과가 그대로 이 연구소가 되어 있었고, 조그마한 방들 안에 거의 손수 만든 장치와 구식 기기들이 비좁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놀랄 만큼 적은 연구비로 세계정상급 업적들을 수없이 내고 있었습니다. 원래 새로운 독창적인 일을 하는데 기성품 기기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하겠으나,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는 데는 진실로 학문하고자 하는 의욕과 성의가 전통으로 굳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의와 의욕이 없는 사람들이 ‘탓’을 잘합니다. 농사를 잘 짓지 못하는 농민들이 농기구 탓을 하는 법이고, 대단찮은 연구원들이 연구기기 탓을 잘합니다.

끝으로 학문하는 데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허위와 과장이 진리를 요구하는 학문하는 사람에게 무한한 해를 끼친다는 사실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식에 앞서 인간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자세를 지닌 과학기술자들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전력투구할 때 비로소 그 나라 과학기술이 제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이 대열의 선두에 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졸업생 여러분!

이제 시작입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더 험난한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품고 있는 순수한 열정들을 부디 가슴에 간직하고, 작게는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크게는 나라와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인류에의 공헌을 위해 큰 꿈을 펼쳐나가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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