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 박지용 기자
  • 승인 2009.09.02 0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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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속에는 삼각형이 있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으나 무언가 나쁜 일을 하면 빙글빙글 돌면서 뾰족한 모서리로 내 마음을 찌르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심한 고통을 느낀다. 나쁜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그 삼각형은 닳아서 없어지게 되어 나의 마음은 조금도 아프지 않게 된다.”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소개된 미국의 원주민들의 믿음에 관한 글이다. 일명 ‘양심의 삼각형’이다.

당신 마음속의 삼각형은 어떠한가? 혹시 닳아있지는 않은가? 다음은 어느 한 포스테키안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이 장면들은 내용을 부각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든 것으로, 사실과는 무관하다). 만약 아무렇지도 않다면 당신의 양심의 삼각형은 이미 닳아져버린 것이다.


S#1 침대

띠리리링~ 자명종과 함께 눈을 비비며 일어난 철수. 방학 때 매일 늦잠 자는 버릇 때문에 개강하고 아침 수업에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다. 시간을 보자 잠이 확 달아난다. ‘아, 맞다! 숙제!’ 첫 시간에 제출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데 아직 다 끝내지 못하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허겁지겁 컴퓨터를 켜고 솔루션을 열어 베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솔루션 보는 것도 나름 시간이 걸린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들어 영희에게 전화한다. “야, 나 숙제 다 못했어. RC 1층으로 지금 숙제가지고 나와!” 제대로 씻지도 않고 숙제를 위해 뛰어나간다.

S#2 청암학술정보관

GSR에 허겁지겁 들어와서 영희의 숙제를 베낀다. 숙제 제출 ‘듀’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평소에는 그나마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베끼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글씨를 그림 보듯 그대로 따라 쓴다. 일명 ‘블라인드 카피’다. 숙제를 다 하고 정신없이 뛰어나간다.

S#3 공학3동 강의실

9시 29분 SAVE! 휴~ 오늘 하루의 시작도 일진이 사납다. 그래도 중요한 고비 하나는 겨우 넘긴듯하다. 숙제를 제출하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밀려오는 피로감. 스르르 감기는 눈….

S#4 방

오늘 하루 연이은 힘든 강의도 모두 끝났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오늘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실험보고서에 끝도 없는 과제까지 나를 괴롭힌다. 그럼 마음을 다잡고 보고서부터 써볼까. 물리실험보고서, 지난 학기에 나를 괴롭혀왔던 1학점짜리 과목. 하지만 이제는 참 쉽다. 물리실험보고서를 쓰는데 어려워하는 분들은 딱 2가지만 기억하세요. ‘컨씨’ & ‘컨브이’. 구글에서 검색하고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적당히 정의를 긁어오고 선배들의 자료, 일명 ‘소스’를 보며 2~3명 것을 적당히 섞으면 절대 걸릴 일도 없다. 후다닥 보고서 작성 끝! 보고서를 다 쓰고 나니 슬슬 배고파지는데 야식이나 먹을까?

S#5 휴게실

야식은 역시 치킨! 학교에서 친구들과 먹는 치킨은 그 어느 맛과도 비교할 수 없다. 야식을 먹으며, ‘패밀리가 떴다’를 보며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이야말로 기숙사 생활의 묘미다. 야식을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배가 부르니 잠이 온다. 잠이 오니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에잇 모르겠다, 누군가가 치우겠지.’ 철수가 떠난 자리에는 치킨 양념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S#6 방

드디어 고된 하루도 끝이 났다. 나 스스로도 대견스러운 순간이다. 오늘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담배 한 대만 피고 와야지.

S#7 베란다

나가기도 귀찮은데 기숙사 베란다에서 핀다. 기숙사에서 담배가 금지되어 있지만, 뭐 베란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담배꽁초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피고 있다는 걸 말해주지 않는가. ‘뭐 나하나 쯤이야.’

S#8 방

방에 돌아오니 쌓여있는 빨래가 눈에 들어온다.

S#9 세탁실

오 마이 갓. 이미 세탁기가 모두 꽉 찼다. 아 어쩌지! 걱정하던 찰나에 철수의 눈에 띈 한 세탁기. 탈수 중인 세탁기의 시간은 4분이 남았다. 4분을 기다릴까? 귀찮고 너무 졸린다. 뭐 탈수 4분 안한다고 어떻게 되려나. 자기도 모르게 손이 정지 버튼으로 간다. 빨래가 조금 축축하긴 하지만 뭐 별 상관없을 것 같다.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빨래를 넣고 돌리고 나온다. 나오는 김에 공용 바구니 하나 방에 갖다놓으면 빨래를 가져올 때 편하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하나 가져가야지.’

S#10 방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났구나.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수많은 과제가 나를 괴롭힐 테지만, 이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여서 두렵지 않다. 그럼 내일을 위해 파이팅하며 굿 나잇!

물론 극단적인 예들이다. 하지만 이 장면들을 보며 당신은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혹시 뜨끔한가? 저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드는가?

이러한 모습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09학번 신입생 한 분반의 20명을 조사한 결과 보고서 작성 시 복사와 붙여넣기, 일명 ‘컨씨’와 ‘컨브이’를 해본 적이 있다는 학생이 15명, 과제할 때 솔루션(정답지)을 자주 본다는 학생이 19명에 이르렀다. 이 중 ‘블라인드 카피’를 해본 적이 있는 학생이 13명, 시험이나 퀴즈에서 치팅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학생이 10명이나 되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또 기숙사 내 흡연 문제는 교내 사설 보드인 PosB의 ‘포스테키안 보드’와 ‘스크래치 보드’에 시기불문하고 항상 제기되고, 흡연자 전용 기숙사를 만들자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다. 그 외에도 아주 사소한 일들, 예를 들면 기숙사에서 밥 먹고 제대로 안 치우기, 세탁기 먼저 끄기, 공용 바구니 가져가기 등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쯤은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제도적으로 규제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총학생회에서 ‘정직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함께 하는 포스테키안의 미래는 명예롭다’라는 아너코드와 함께 캠페인을 벌이며 노력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바로 개인의 마음, 바로 양심이다.

양심은 부끄러움과 일맥상통한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는 것이 양심이다. 대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윤동주는 양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어느 한 평론가의 말처럼 ‘강한 신념으로 양심을 지켜 살려는 의욕을 시로 실천하려고 노력한 시인’인 그는 양심을 지키려 끊임없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했다. 윤동주의 시를 ‘부끄러움의 미학’이라 할 만큼 그의 시 곳곳에서 그의 마음이 묻어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쓰여진 시>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길>

반면 우리들은 어떠한가. 부끄러운 모습을 합리화하거나 자신의 나약함과 불완전성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저 묻어두기 급급하진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되물어보자.

박지용 기자 kataruis@


나부터 시작하는 ‘명예문화’

총학생회는 올해부터 기존의 ‘명예제도’를 ‘명예문화’로 새롭게 만들어 학우들에게 홍보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명예’를 한정시키기보다는 ‘문화’라는 표현으로 보다 친근하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명예문화’는 학업활동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스스로 도덕적이고 자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자율규범’입니다.

해외 명문대의 사례를 조사해보면 명예관련 핸드북 제공 등 우리보다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도 당연하게 지켜야 할 의식으로 자리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대학에도 ‘명예문화’ 제도의 정비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가 우리대학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포스테키안 스스로의 의식 변화와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로 ‘배려’하는 마음과, 개인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귀차니즘 등 많은 방해물이 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배려’와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 포스테키안으로서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이 시켜서 하기보다는, 지금 나 스스로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총학생회장 임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