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새 학기 내 삶의 무게 중심, 어디에 맞춰야할까?
노벨동산-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새 학기 내 삶의 무게 중심, 어디에 맞춰야할까?
  • 윤혜신 / 인문 대우전강
  • 승인 2009.09.0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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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되니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뭘 해볼까.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것보다 나은 것을 시도하는 것이리라. 오래 전부터 정리하고 싶었지만 따로 틈을 내지 못했던 옷장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지난 에피소드를 들추어 본다.

밤 11시. 하루의 피곤을 달콤히 달래보려 음악의 볼륨을 살짝 높이고, 연구실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귀가할 준비를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귀가는 아니고 귀숙소? 하루 종일 입술과 두뇌를 축여주던 커피를 담은 머그엔 커피 특유의 얼룩이 무늬져 있다. 허리를 펴고 두 손을 위로 쭈욱 올리고 기지개를 켠다. 하루가 끝나가고 있다.

가방을 챙겨들고 하품을 연신 하면서 무은재관을 나온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어떤 분이 한 손도 아닌 두 손에 가방과 노트북을 들고 공학관 건물로 들어간다. 11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피곤한 표정이 아니다. 오후 4~5시의 표정이랄까.

잠시의 스침은 복합적인 생각을 연달아 이끌어왔다.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을 하게 된 현대인의 생활. 십여 년 전만 해도 야간 근무는 늘상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특별한 일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간다. 문득, 연구에 몰입하다가 시계를 삶았다는 어느 과학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뉴턴이던가. 이 에피소드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 에피소드는 몰입지경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이야기가 되었고 더구나 그는 천재적인 과학자였기에 ‘끓인 시계’인지 ‘시계국’인지는 미담의 소재가 되었다.

숙소에 돌아와 방문을 여니 하지 못한 빨래가 퀘퀘한 냄새를 피우고, 바닥은 푸석한 먼지가 머리카락과 함께 뒹굴고 있다. 아~ 현대인의 삶이여! 정녕 열심히 살다 돌아왔건만.

현대 생활을 살펴보면 기능 중심의 삶이 고도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시대인들 사람이 기능 중심으로 살지 않았겠냐마는 현대에서는 그 정도가, 다른 시대와 질적으로 달라 개인과 집단의 관계가 더욱 조직화되고, 집단의 구조가 분업화되다 보니 개인이 할 일과 책임이 명백해진다. 우리는 집단 안에서 무슨 기능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우리의 전공 탐색과 연구 수행, 업무는 분명 귀하고 가슴 벅찬 소임이지만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집단에 속하여 개인이 맡은 일을 한다. 이러한 기능 위주의 삶이 조직적이고 생산적이지만, ‘지나치면’ 참으로 나조차 나를 기계적으로 취급하게 되는 난처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기능 중심의 삶을 살면 안 될 게 뭐가 있냐고? 삶은 종합적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삶의 주체인 나도 한 영역에만 걸쳐 있지 않다. 일도 해야 하지만 밥도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며 때때로 사람들과 소통과 교류도 필수적이다. 따라서 일하는 나 외에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 나의 생활 공간을 위해 정리하고 청소하는 나, 나의 건강을 위해 요리하는 나, 마음의 안정을 위한 여가활동이 필요한 나, 타인과 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트렌드를 탐색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하는 나 등등. 나는 여러 모습으로 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나친 기능 중심의 삶은, 기능 이외 다른 영역의 삶을 포기하게 만든다. 우리 인간은 시간을 많이 들인 일을 잘하게 되어 있으므로 한 영역에 절대적으로 몰입하면 그 영역에서 우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다른 영역을 점검할 시간과 심적 여유가 없어 정작 자신에게 중요한 일과 가치를 놓칠 수도 있는 맹점이 있다.

이 정도의 생각에 이르렀으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드러난다. 2학기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생활을 점검하고 어느 영역이 미진한지 살펴보자. 그리고 어디에 삶의 무게중심을 두어야 할지 생각해보자. 참으로 섬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필요한 부분은 보수해서 개선해야겠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면 자, 신나게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