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상담실-경제적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심리적 독립’
미니상담실-경제적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심리적 독립’
  • 학생상담센터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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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신문사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활기찬 대학생활을 돕기 위해 학생상담센터와 함께 ‘미니상담실’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여러분의 고민을 reporter@postech.ac.kr로 보내주세요.  그 고민을 학생상담센터에 의뢰하여 속 시원하게 해결해드립니다. 실명을 밝히기 어려운 경우에는 익명으로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늘 최고만을 원하는 부모님
안녕하세요? ○○과의 이하얀(가명)이라고 합니다. 기말고사가 다가오면서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네요. 성적 때문이냐고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저는 늘 중간 이상에 드는 성실한 학생이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이 성적으로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최상위의 학생이 모인 이곳이기에 저는 제 성적에 매우 만족한답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는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늘 제게 최고만을 원하세요. 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의 존재가 저를 통해서 나타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를 독립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시고 당신들의 자랑할 만한 소유물로 생각하세요. 이런 부모님의 태도 때문에 가끔씩 집에 가는 것도 기쁘지만은 않네요. 해결할 방법 없을까요?


안녕하세요 하얀님, 학생상담센터입니다. 하얀님의 글을 읽어보니,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하얀님은 부모님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심한 압박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군요. 선생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얀님이 지금까지 성실하게 공부해오고, 그 결과에 만족해하며 칭찬해주려고 노력한 모습이 참 대견했어요. 자세히 적혀있지는 않지만 하얀님이 분명 최선을 다해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려고 노력하고 애썼을 것 같아요. 그걸 몰라주는 부모님에게 하얀님이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네요.


그런데 하얀님, 선생님은 하얀님의 이런 마음을 부모님께 표현해 보았는지 궁금했어요. 하얀님 말처럼 포스텍에서는 최고의 의미가 다를 수 있지요. 여기선 1등과 2등, 심지어는 평균 정도의 등수까지도 실력 차이가 얼마 없다는 것을 부모님께 알려드리세요. 그래서 하얀님은 자신이 이룬 성과를 만족해하고 있고, 평가 기준이나 삶에 대한 태도 역시 부모님과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표현해보세요. 그런데 하얀님, 혹시 하얀님이 부모님에게 그렇게 말할 만한 자신만의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하얀님이 부모님에게서 분리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부모님의 기준에 따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집을 나와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것과 같은 물리적·공간적인 독립이나 스스로 생활비를 버는 것과 같은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되면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경제적인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심리적인 독립’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전능하고 실수를 하지 않는 존재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은 다 옳다고 생각하고, 부모의 요구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의 가치나 기준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려고 하지요.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내사(introjection)라고 합니다. 타인의 신념과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흔히 아이가 부모에게서 전통적 가치나 이상, 사회적 원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지요.


하지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전지전능할 것 같은 부모도 나와 같은 인간이고, 때론 나처럼 실수도 하고 완벽하지 않은, 어떤 부분에서는 나보다 더 못한 점이 있는, 그래서 부모의 생각이나 행동이 틀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성인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대학생 시기는 부모를 자신과 분리해서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부모와 자신의 경계를 찾아가면서 성장해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진정으로 부모와 독립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또한 심리적인 독립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통찰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하얀님의 부모님처럼 어떤 부모님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이나 성공을 자식이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라고, 그것이 자식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 나름의 방식이라는 것을 하얀님이 이해해주세요. 단지 부모님에게 부모님의 기준·태도·행동방식·가치관 등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고, 하얀님의 방식으로 거르고 소화시키겠다는 것은 분명히 해아겠지요. 처음엔 의견차이로 인해 부모님과 갈등이 생기고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부모님도 하얀님의 독립을 인정해주실 것이에요.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해가는 과정은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자율성을 지닌 성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필수조건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