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건축미학 - 개교~현재까지 우리대학 공간 이야기
캠퍼스 건축미학 - 개교~현재까지 우리대학 공간 이야기
  • 강탁호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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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기능성 강조…인간적인 면을 살리자

제3회 졸업앨범의 마지막장(1993.)
우리대학의 초창기 건물은 크게 78계단을 분기점으로 하여 계단 아래와 계단 위로 구분할 수 있다. 공학동·학생회관·무은재기념관 등이 위치한 78계단 위는 화강암 재질로 마감을 했고 직선과 직각의 미가 두드러진다. 바닥에 깔린 타일도 네모반듯하다. ‘미술의 이해’ 수업을 담당하는 인문사회학부의 정세향 교수는, 이는 정확성을 모토로 하는 과학과 공학의 냉철함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한다. 깔끔한 느낌의 회색과 연자주색의 화강암을 사용한 것도 주목해야 할 점.


반면에 78계단 아래의 기숙사와 지곡회관은 부드러운 곡선과 완만한 직선을 사용했다. 고동색의 벽돌과 주황색의 기숙사 지붕의 기와가 부드러운 감을 더해준다. 78계단 위가 ‘이성적’이라면 아래는 ‘감성적’인 곳이다. 건물 사이의 간격과 높이의 비율을 함께 고려해 안정감을 주기 위한 의도로 설계를 했다.
2000년대 들어서 새로이 건설된 청암학술정보관·생명공학센터·로봇연구동·철강공학동은 기존의 캠퍼스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이들 건물은 유리의 전면적 활용과 확연히 드러난 조형적 요소를 통해 첨단연구시설이라는 이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중앙통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대학에는 학생회관에서부터 대학본부로 이어지는 중앙보행통로가 있다. 기숙사 지역에서 학생회관으로 올라온 학생들이 강의실로 이동하는 주요통로이다. 이 통로를 중심으로 공학동들이 대칭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또한 대학본부와 학생회관이라는 시작점과 끝점이 명확한 것도 특징적이다. 중앙통로가 정문으로 직접 이어져 있지 않아 우리대학 정문의 상징성은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다. 이 중앙통로로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것은 보행자 동선과 자동차 동선의 완벽한 분리를 추구했던 초창기 건축 이념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청암학술정보관·생명공학연구센터·로봇연구센터·지곡연구동·철강공학동 등이 들어서면서 캠퍼스의 중심축은 동문에서 정문을 잇는 청암로로 이동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동선이 많고 학부생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은 학생회관~대학본부를 잇는 중앙보행통로이다.
캠퍼스 곳곳에 있는 명소들을 둘러보자.


◈ 78계단
기숙사와 강의실·학생회관을 연결하는 78계단. 아침마다 많은 학우들이 한숨을 쉬며 13m 높이의 계단을 오른다. 넓게 펼쳐진 평지를 떠올리는 대학캠퍼스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좀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우리대학은 원래 산을 깎아서 만든 학교이다 보니 고도차가 있는 것이 불가피했다.
78계단 아래 기숙사 지역은 학교가 들어서기 전 월성이씨 집성촌 자리였고, 78계단 윗부분은 산을 깎아서 만들었다. 이 표고차로 인해 계단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왜 계단수가 78개인지 ‘설’들이 분분하다. 칠전팔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78개라는 설, 78개의 계단을 오르는 것이 적절한 운동이 된다는 설까지.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다 낭설이고, 건축학적으로 고도가 있는 공간의 이동이라는 계단 본연의 목적에만 입각해 설계된 것이라 한다.


78계단에 얽힌 이야기 또한 많다. 78계단에서 구르면 4년 내에 졸업하지 못한다는 속설이 2000년대 초반까지 있었다. 과거 졸업앨범의 마지막장은 졸업생들이 78계단에서 졸업모를 날리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때로는 78공고를 통해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1989년 축제 때 학생회관 주점에서 술에 거나하게 취한 운전자가 차를 몰고 계단아래까지 내려왔다는 이야기.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 시계탑
굉장히 커서 가까이에서 보면 압도당할 것만 같은 시계탑. 크기만 해도 가로 2.8m, 세로 2.7m로, 개교 초기부터 야심차게 기획된 건축물이다. 초창기 문서를 살펴보면, ‘포항공대의 상징적 구조물로서 캠퍼스의 중심축에 위치시켜, 대학의 상징적 초점으로서 강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쓰여 있다. 학생회관 위의 시계탑과 대학본부 위의 시계탑은 캠퍼스 중앙보행통로의 시작점과 끝점을 의미하는 역할을 한다. 시계탑이라는 데에서 오는 태생적 중후함을 위해 화강암을, 첨단이라는 학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유리를 사용했다고 한다.


◈ 수로
수로는 우리대학의 대표적 자랑거리다. 이번 학기에는 물이 흐르지 않았지만 해마다 하절기에는 시원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와 물에 비치는 푸른 하늘이 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준다. 이런 기능과 함께 직각과 직선으로 구성되어 다소 긴장되어 보이는 공학동의 모서리에서 오는 시각적 긴장감을 완화시켜주는 기능도 있다.


◈ 폭풍의 언덕
우리대학의 중심에 위치한 푸르른 잔디밭. 우리대학 주위로 연구소가 많이 들어서 있고 향후에도 그럴 예정이지만, 조경을 위해 이 잔디밭은 최후의 부지로서 남겨두기로 했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일 년 내내 썰렁하다. 딱히 동선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이루어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이고, 공원 잔디밭처럼 ‘출입금지’ 푯말은 없지만 당당하게 다니기엔 어려운 느낌이다.
2000년 4월 12일 신문의 꼭지기사를 보면 잔디밭은 예전에도 썰렁했나보다. “따뜻한 햇살 아래 누워서 낮잠이라도 잘라치면 곧장 웃음거리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럴 시간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공부라도 한 자 더하겠다는 기특한 생각인지, 잔디밭은 들어가면 안 된다는 철칙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지….”

◈ 유리건물
청암학술정보관을 보면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유리의 벽면이다. 유리라는 소재는 건축학에서 ‘미래, 첨단’의 이미지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미래형 첨단도서관을 표방한 청암학술정보관이 이런 유리를 사용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최근 완공된 국제관과 철강공학동 등에서 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첨단과학 및 공학 대학에 걸맞은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의도와 철학으로 이해될 수 있다.

◈ 지하공동구
지금은 닫혀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대학본부-공학동-학생회관의 건물 아래로는 거대한 지하통로가 있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씨에 지상이 아닌 지하로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기숙사와 가속기 지역에도 제2, 제3의 독립된 지하통로가 있다. 학교설립 시 중요하게 설계되었던 지하공동구는 총 길이가 약 3.2km나 된다. 지금은 보안상의 이유로 출입이 금지되고 있지만 실험실 장비나 자판기 등을 옮기는 화물운송 통로로서, 그리고 각 건물에 필요한 전기·통신·냉온수 이동 파이프가 들어있는 수송 공간으로서 쓰인다. 영화촬영 배경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 구름다리

개교 시 건물사이의 동선을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로 공학동 사이에는 구름다리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이후 붕괴 위험성으로 인해 중간기둥이 없었던 4~5동, 2~3동 사이의 구름다리는 철거되고야 말았다. 과거 졸업앨범을 보면 축제 불꽃놀이를 할 때 선배들이 구름다리 사이에 올라가 불꽃을 감상하는 사진도 볼 수 있다. 지금은 완전히 철거되지 않은 건물 벽면의 비가리개만이 그 흔적을 알려주고 있다.

건축유감-에둘러감의 미학은 어디에?

언뜻 멋있어 보이는 우리대학 캠퍼스이지만 그 속에 에둘러감의 미학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동선의 효율성과 빠른 이동, 기능성은 강조되었으나 자연스러움은 부족해 보인다.
우리대학의 공간배치를 보면 누가 보아도 동선을 낭비하지 않게끔 기능적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숙사-학생식당-강의실의 선형적 동선에서 학생들이 자유로이 배회할 동선과 공간은 없어 보인다. 이런 배치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이런 동선으로 인해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주어져있는 하나의 패턴만을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규모가 작다보니 여러 개의 동선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다른 대학에 가면 벤치 클러스터를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등나무 아래 벤치처럼. 거기서 학생들 여럿이 담소를 나누고 쉬기도 한다. 또 그러면서 모르는 사람과도 알음알음 알게 된다. 잡담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학창시절의 일상적 소통과 대화가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것인데….
우리대학에도 벤치가 있긴 있지만 모두 주요 동선에선 벗어나 있고, 그것도 띄엄띄엄 있다. 학생회관 옆 아우터나 연인들을 위한 청암도서관 뒤편의 벤치처럼 주요동선에서 벗어나 공학동의 사이사이에 여러 명이 앉아서 자연스레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많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는 학생들이 많이 다녀서 오솔길이 생긴 곳을 아예 벽돌로 포장을 해서 길을 만들었다. 무엇이든지 간에 완벽해야 한다는 공학적 사고방식 아닌가. 이런 인간적인 면들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