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평론] 박경리의 토지-또 하나의 ‘우리’를 찾아서
[나도평론] 박경리의 토지-또 하나의 ‘우리’를 찾아서
  • 강향주/ 생명 2
  • 승인 200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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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는 소설에서 사람들이 꺼리게 되는 종류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흔히 장편소설을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한 권조차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다섯 권, 열 권씩 늘어지는 책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고, 읽을 시도조차 선뜻 하지 않는 것을 나는 많이 봐 왔다. 그래서 지금 소개하려는 이 책, 토지에 대해서 짧게 소개한다는 것조차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무려 16권이나 되는 이 책-권당 페이지수도 만만치 않음을 쉬이 알 수 있다-을 그 길이에 압도당하지 않고 선뜻 읽을 수 있게 소개한다는 것 또한 어이없는 짓이라 겁이 난다.

하지만 첫째로 재미있었고, 둘째로 감동적이었고, 그 외 에도 복잡한 여러 가지 느낌을 가지게 해준 이 책을 나는 용감히 소개하겠다.

그 전에 먼저 덧붙여둘 것이 있다. 나는 토지가 우리 문학사적으로 어떤 업적을 남겼고 가치가 있고 하는 것들은 잘 모른다. 다만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데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가, 나는 단순히 그것만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그럴 수밖에 없음)임을 당부해 두고 싶다.

토지는 평사리를 중심으로 마지막 후손이 된 서희와 그 일가, 그 마을사람들의 삶을 일제시대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의 시점까지를 배경으로 그린 대하소설이다. 서희의 할머니인 윤씨부인부터 최치수, 서희의 삼대, 주위의 마을사람들이 울고 웃고 살고, 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그 방대한 줄거리를 이렇게 단 몇 줄로 설명하자면 부족함이 없을 리 만무하지만 이 이상으로 설명할 능력이 없다.) 자기네 땅에서 쫓기어서 살다가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설움, 가족간에, 친구간에 그리고 마음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그런 남녀간의 이야기는 우리의 할머니나 그 할머니가 살아봄직한 아니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갈 뻔 했을지도 모르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읽는 동안은 억척스럽고 신명났지만 늘 한이 서린 듯 했던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고 한치 앞도 볼 수 없이 어두컴컴하고 아무소리 없이 적막하기만 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쓰라린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신나게 목청을 뽑아도 늘 눈물이 흐르는 듯 보이고 구수하게 사투리를 뱉어도 울부짖음으로 들리고 어깨춤을 들썩여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듯 보이기만 했다. 시대가 그랬고 세상이 그랬다.

그래도 이 책이 재미있고 신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대가 다르고 지역이 달라도 어쨌든 우리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시 말해서는 이렇게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그 이유인 것이다. 아마도 피가 들끓기 때문이리라.(너무 격한 표현이다) 일상이 무미건조하고 의미가 없어도 이 책을 읽었던 때를 생각하면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우리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독후감을 쓸 때는 언제나 인상깊었던 책을 쓰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감명이 깊었다 해도 두세 번 이상은 읽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분량도 많고 여러 단어의 어려움이 많은 책을 딱 한번 읽어보고서 선뜻 나의 느낌을 글로 정리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이 정말 재미있는 책이라고. 흔히 있어 보이려고 그냥 하는 말로 꼽는 외국의 어떤 책들보다 확실히 낫고, 사람들이 꼽는 어떤 책들만큼 감동적인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읽어보면 또 하나의 나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