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키워드 ‘그리움’-0과 1로는 채울 수 없는 그리움
문화키워드 ‘그리움’-0과 1로는 채울 수 없는 그리움
  • 안상헌/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 승인 2001.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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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 머스마가 니 마음에 안등다 그 카드나? 계속 꼬시보지?
B: 만다꼬... (한숨을 쉬며)
-<친구>가 만든 국어사전중에서

“만다 그라노? 만다꼬?”
= “What’s up? What’s going on?”
‘왜 그래?’ , ‘그럴 필요가 있을까?’, ‘쓸데없는 짓 한다’ 정도로 해석가능하다. 화들짝 놀란 척, 걱정하는척하며 안면부를 약간 찡그리거나 목소리를 귀엽게 질질 끌면 걱정의 강도가 더욱 깊어진다. ‘만다꼬’ 뒤에(!) 표가 붙으면 ‘다 부질없다’ 라는 극단적 해석도 가능, 실제로 사랑의 아픔을 이 한마디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 땐 그랬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친구>, 엄청난 흥행과 함께 부산사투리를 정겹게 만들었다. 의리, 우정만 있으면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었던 그 때 그 시절의 향수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것이다. <박하사탕>에 뒤를 이은 향수시네마, 그렇다면 “내가 니 시다바리가?” 라는 명대사를 넘어 <친구>가 던져주는 화두는 무엇일까? <친구>를 만든 곽경택 감독은 최근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남겨줄 건 하나의 단어다. 바로 ‘그리움’ 이다.”

그리움의 마케팅 /
혜은이, 패티김, 조용필.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이름이지만 요즈음 같은 빠른 세상에선 먼 옛날의 전설같은 멜로디로 남았을 뿐이다. 가요계에선 리메이크 열풍이 한창이다. 김현식, 김광석, 들국화등의 헌정음반과 <연가>와 같은 편집음반의 인기를 잇는 ‘새로운’ 그리움이다. 신세대가수들이 선배들의 노래를 다시 녹음한 <리메이크 op.01>은 물론 인기그룹 <핑클>이 선배 여가수들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메모리스&멜로디스>등이 대표적인 앨범. 물론 가요의 내일을 위해서라면 그다지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그리움의 마케팅이 가요계에 전면적으로 등장했다는 데 대해선 토를 달긴 쉽지 않다.

리메이크 열풍의 목적은 신세대인 10대들에게는 신곡처럼 느껴지게, 20대 중반이상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 인정받은 노래이기 때문에 그만큼 안정적인 히트도 기대할 수 있으니 끌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리움으로만 승부한다고 장미빛 미래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단순히 그 시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요즈음 감각에 맞게 곡을 새롭게 해석, 녹음해야 ‘old is new’ 가 된다. 그래서 그리움은 리메이크를 통해 버전업된다.

느림에 대한 그리움 /
요즈음 광고계에서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CF가 있다. 배경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 장군의 집주변을 가득 메웠던 여유로운 밀밭, 그 사이를 걷고 있는 여자. 이 때 “느리게 살자!” 라는 카피가 흐른다. 첨단 주거문화를 설명하기에 바쁘기 마련인 아파트 광고치곤 다소 엉뚱한 화두,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보면 기존의 단순한 복고풍 바람을 타고 온 CF들과 달리 독특한 그 느림의 미학을 읽을 수 있다.

얼마나 빠른가가 생존 방식인 듯한 스피드사회,그 속에서 우리는 늘 그 첨단으로 가장한 속도에 쫓겨 다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린 입버릇처럼 ‘느림’에 대한 그리움을 달고 산다. 그러나 여기서 뒤돌아 보자. ‘누가 내 편안함을 멀리 옮겨 놓았을까?’ 그건 속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도를 핑계로 삼는 우리의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빠른 비트보다 한 박자 느린 CF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올해는 모든 분들께 행복한 통화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재촉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편안해진다. 첨단 컴퓨터 그래픽이 없어도 마음을 느긋하게 하는 크리에이티브가 디지털 열풍에서 돋보이는 이유다.

그리움은 아날로그 /
흔히 촌티라는 그림과 복고풍이라는 트랜드로 소개되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는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친구>에서 본 것은 단순히 롤러 스케이트장이나 원색의 츄리닝이 아니라 우정과 세상에 대한 젊은 날의 추억이다.

디지털 문화시대를 살고있는 요즈음,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우리의 마음은 아날로그이다. 그래서 ‘그리움’의 대상을 찾아 뒤를 돌아보기 마련이다. 그건 0과 1만으로도 사랑이 가능해진 디지털 시대, 그래도 우리에겐 0과 1로는 채울 수 없는 그리움이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