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기획] 구도의 춤꾼 홍신자의 삶과 예술
[거장기획] 구도의 춤꾼 홍신자의 삶과 예술
  • 이민영 / 홍신자 매니저, 화학 학사 11회
  • 승인 2003.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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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자는 누구인가

홍신자는 중국의 저명한 무용평론가 우장핑의 저서 <세계 무용사를 만든 18인>에 아시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되어 이사도라 던컨, 니진스키, 마샤 그레험, 머스 커닝함 등의 위대한 인물과 그 반열을 나란히 하여 ‘동양 전통미학에 뿌리를 둔 서양전위무용의 꽃’으로 소개된 한국인 무용가이며, 최근 9명의 무용평론가에 의해서 20세기 한국의 대표 춤꾼 6인에 한성준, 최승희 등과 함께 선정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춤꾼이다.

1966년 도미한 홍신자는 20여년간의 무용활동으로 뉴욕에서는 세계적인 무용가, 안무가로 인정받았다. 1973년, 홍신자는 한국최초로 전위무용 <제례>를 국내에 소개하였으며, 1993년 돌연 한국으로 귀국하여 경기도 안성 죽산에서 ‘웃는돌 명상센터’를 설립하였다.

홍신자는 무용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국에 라즈니쉬를 소개한 그의 첫 한국인 제자로 인도에서 3년간 수행한 명상가이면서 2권의 번역서, 4권의 저서를 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공연과 리뷰』 편집인이자 동아대 교수인 평론가 김태원씨가 쓴 ‘우주와 삶에 대한 깨어있는 번민, 홍신자’라는 글에서 예술가 홍신자의 인간적인 냄새를 느낄 수 있다.

‘홍신자의 근 30년간의 예술과 삶의 궤적을 보았을 때, 평소 초연해 보이는 그녀의 행동처럼 그녀가 결코 물과 같이 자유스럽게 흐르면서 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적절히 도발적이고, 인내하면서 시험하고, 또 거의 10년을 주기로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내던지면서 적응시켜가는 ‘생의 시험’이 매 시기마다 있었다 하겠다. 이것은 삶에 있어서 주어진 자유를 쉽게 그냥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행동 때로는 영적 노력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자유에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적 욕구를 꾸준히 분출해간 과정이라 하겠다. 홍신자는 한국무용사에서 춤이란 그저 얼굴이나 몸매 이쁜 이들이나 하는 것이란 대중의 선입관을 정면으로 깨뜨린 이일 뿐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빌려 심각한 인간의 내면적정신적 모습을 얘기할 수 있음을 현대적 시각에서 보여준 흔치않은 예에 속한다 할 수 있다. ‘

홍신자의 인생과 춤

홍신자는 자유를 위해 살고 싶은 대로 살아온 사람이다. 일생을 바치고 혼신을 쏟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 뉴욕에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러 떠났다가 운명적으로 춤을 만난 때가 27세, 주위 사람들은 무용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만류하였지만 그녀는 ‘이미 내 가슴엔 춤의 혼의 화살이 깊이 박혀 사랑도 명예도 부도, 그 무엇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내 몸을 찢기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그녀는 뒤늦게 성공했으나, 인생과 자신에 대한 의문에 빠지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인도로 구도의 길을 떠나버리기도 했고, 돌아와서 마흔살에 열두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기도 했다.

홍신자의 인생은 춤에 곧 스며들어, 자신의 전존재를 내던진 명상이자 구도의 표현으로 춤을 춘다. 홍신자는 조선일보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2003년 1월 9일자)

‘올해는 나의 춤 데뷔 30주년이다. 나의 춤은 더욱 깊어지고 있고 때로는 춤을 통한 열반의 세계를 체험하기도 한다. 이제 춤이 없는 나의 인생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춤을 통하여 나는 내 안의 신을 만나 그와 대화하고 춤추고 놀 수 있다. 내가 무대에 설 때 모든 관객은 또 하나의 다른 신이다. 나의 신이 그 신과 만나 하나가 되었을 때 그 순간은 나에게 열반이며 나에게 엑스타시의 순간이기도 하다. 춤은 나의 영혼의 양식이요, 등불이 되어 죽는 순간까지 나를 밝혀줄 것이다. ’

홍신자의 대표작과 그에 관한 평가

1. 제례
홍신자를 뉴욕과 한국에서 일약 스타로 만든, 그녀의 데뷔작이다. 평론가 박용구씨는 ‘한국 최초의 전위무용 상륙, 해방 이후 처음 보는 훌륭한 춤‘이라 평했다.

2. 나선형의 대각선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베스트셀러 <자유를 위한 변명>의 그 유명한 겉표지 사진, 해골을 안고 춤을 추는 모습이 나온 춤이다. ‘죽음의 메신저’, ‘팔동작 하나로 모든 걸 표현한다’, ‘동작 하나로 청중을 사로잡는 ‘춤’이라는 다양한 평을 받았으며 키셀고프는 그의 춤을 ‘몇 가지 작은 동작만으로 죽음의 사자로 변신할 수 있을 만큼 참으로 거대한 카리스마의 모습’이라 묘사했다.

3. 세라핌

1988년 뉴욕의 JOYCE 극장에서 초연한 뒤 미국과 독일 투어를 다녔던 작품으로, JOYCE DANCE FESTIVAL에서 최고의 문제작이자 우수작이었으며, 일상적인 아름다움도 상식적인 무용도 아닌 신선한 동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가 인간을 로봇화하여 로봇과 같은 동작으로 일관성을 가진 화합, 분열, 사랑, 증오를 표현한다.

4. 섬

빌리지 보이스에서 ‘오늘에 사는 현대인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의 안무가’라는 극찬을 받고 뉴욕타임즈에서 ‘동양춤과 미국실험무용의 미학을 조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라고 평가받았던 작품이다.

무용평론가 김태원씨는 다음과 같이 이 작품을 평했다.

<섬>은 일종의 집단적 제의에 의해 인간의 내부에 깊숙이 감춰져 있는 이상한 욕망이나 혹은 본능을 떨어버리는 작업이다. 홍신자의 춤상상력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여성중심주의적’ 측면이 강하며, 또 그녀의 춤은 관습화된 예술춤의 동작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곧 일종의 즉흥을 이용한 집단제의적 치유법-이것은 인도를 다녀온 그녀의 구도적 경험에 의해-에 가깝다는 것이다.
<섬>은 고도의 울창한 삼림 속에서 별을 보며 어떤 탈출구를 찾아가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신비하고 캄캄해보이는 ‘섬’이란, 인간의 조탁되지 못한 수성과 인간만이 갖고 괴로워하게 되는 심리적 깊이, 그리고 씻겨지지 않는 카르마가 함께 뒤범벅되어 만들어진 울타리와 다름없다. 이 세계는 융적인, 즉 인간의 뿌리와 원형에 대한 신비한 탐구욕과 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런 에너지의 넘침과 가라앉음이 있는 그런 세계에 더 가깝다 할 것이다.’라고 무용평론가 김태원씨는 작품평을 남겼다. 홍신자의 ‘내면지향적’, ‘자연적’ 그리고 ‘우주적 느낌’을 갖춘 춤세계는 그 깊이와 반향에 있어 세계 현대춤의 지형도 속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며 그녀의 춤을 ‘인간적인 행위’ 자체로 규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덧붙였다.

5. 네 개의 벽

유명한 전위작곡가 존 케이지의 <네 개의 벽>이라는 피아노곡에 맞춰 안무한 작품으로, 네 개의 벽에 갇힌 인간의 고뇌를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 대해서 빌리지 보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객을 염두에 두지 말고 일종의 영구 설치물처럼 무한 시간대 속에서 펼쳐지는 것이 이상적일 듯싶다.’

6. 명왕성

한국 웃는돌무용단의 창단작품으로, 한정된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잠재된 의식에서 흐르고 있는 아름답고 다양한 이미지, 아이디어로 가득찬 신선하고 감동적인 춤을 보여주게 되어 우리의 의식의 영역을 한층 높여준다.

7. 순례

50센티미터 높이의 목발을 신고, 대나무 장대를 어깨에 걸친 채 길게 느리어진 망토를 걸치고 나오는 무용수들의 아슬아슬한 동작을 통해 순례의 길을 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베를리니 모르겐포스트지는 ‘샤머니즘’에서 아방가르드까지’라는 행사의 주제에 걸맞게 웃는돌무용단의 ‘순례’와 홍신자의 독무인 ‘새’는 한국 전위예술의 존재를 독일관객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철학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인상적으로 시각화하는데 성공했으며 인생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게하는 역작이다. 표현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된 미래지향적인 작품으로 한국 전위무용의 수준이 놀랍다.’는 글을 게재했다.

8. 웃는여자

홍신자가 만 60세가 되던 해, 스스로를 축하하기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모두 담아내는 공연을 구상하면서 탄생된 작품으로, 이제까지의 전위적이고 파격적이었던 공연 대신 쉽고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여인의 일생을 솔직하게 다룬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