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광주를 되새기는 정치참여의식, 지곡골에도 울리다
오월 광주를 되새기는 정치참여의식, 지곡골에도 울리다
  • 류정은 기자
  • 승인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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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민족의 해방을 위해 나가 나~가 도청을 향해 출정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광주 시가지 전역에 시민, 학생들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금남로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1980년 5월,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대학과 관공서에 계엄군 진주, 민주 인사·대학생들의 무차별 연행, 뒤이은 대학 휴교령 선언. 이에 참다못해 반기를 든 대학생들의 시위로 5·18의 처참한 역사는 시작되었다. 학생들의 데모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계엄군 사이의 마찰이 불거지며 폭력적인 억압에 시민들도 가세하여 민주 항쟁의 횃불이 치솟았다.

한국 현대사의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민주화운동의 총화인 광주민주항쟁은 인간의 권력욕에 근거하여 자행된 폭력과 억압에 인간다운 대우까지 포기당해야 했던 때에 맨몸으로 신화하며 대항한, 아직도 계속되는 역사이다.

그 후로 23년이 지난 지금, 학교에서는 5·18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그 정신을 되새겨보고자 기념 공연이 열렸다.

5월 19일 저녁, 대강당에서는 게르브와, 다솜, 브레멘, 삶터, P-funk, 한아패. 이렇게 학교의 6개 동아리가 5·18 합동공연을 했다. 불의에 목숨으로 저항한 5·18.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사회의 주체로 사회에 맞서 목소리를 낸 그 사건을 기억하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자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학생들 스스로가 기획한 공연이었다.

이 날의 공연은 브레멘의 보컬이 작사한 5·18 진혼곡. P-funk의 자작랩, ‘이 산하에’, 한아패 구성원들이 부른 ‘광주 출정가’, ‘5월의 노래’. 풍물 동아리 삶터의 북, 쇠 소리와 드럼이 어우러진 ‘일어나라 열사여’, 다솜의 수화와 함께한 ‘기억’. 그리고 5·18 다큐멘터리, 게르브와의 그림 전시로 이루어졌다. 공연 중 한아패의 김솔 학우는 5·18을 기억하고 이 공연을 통해 각자의 마음속에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을 지니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번 공연은 여러 동아리 학우들이 함께 시간을 할애하며 단지 실력을 뽐내기 위한 공연이 아닌,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아 의미를 부여한 공연인 점에서 기존의 공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역사적인 사건을 중심에 두고 그것의 의미를 조명해 본 것은 사회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공연을 하는, 그 동안의 한아패의 공연과도 차별되는 점이었다. 또한 6개의 동아리의 합동 공연으로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서 의미 찾기에 동참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

한편, 이번 공연은 잊혀져가는 5·18과 당시 군사정권 책임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을 둘러싼 의혹이 벌어지는 시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보여준 사회 참여의 한 모습이다. 공연이라는 형식은 역사를 회고하고 우리의 생각과 목소리를 내는데 간접적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었나 평가해본다. 아직까지 학칙 21조에는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이런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예전보다는 학내의 분위기가 사회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가고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제는 구성원들이 조금씩 사회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역사는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살아있는 역사가 된다. 5·18에 관해서도 관성에 의한 의미 인식이 아닌, 보다 적극적인 새로운 의미 부여를 하는 토론의 시간을 가지는 등의 다양한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학생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진지 한 동참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