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창조의 선율 - 국악계에 울린 가야금 명인
새로운 창조의 선율 - 국악계에 울린 가야금 명인
  • 유은선 / 작곡가
  • 승인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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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란 말은 단순하게는 ‘다 자란 성인’을 뜻하지만, 국악계에서의 ‘어른’은 실력과 명망을 함께 지닌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 주는 분에게 진정한 공경의 의미에서 대접하는 최상의 존칭으로 사용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들이 하는 일에 있어서 누군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준 인물이 있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른’이 계시다면, 분명 그 분야의 모든 일들은 순조롭고 발전적일 것이다.

국악계의 ‘큰 어른’ 황병기. 국악인들에게 있어서 ‘황병기’라는 이름은, 단순히 가야금과 작곡에서만 머물지 않는, 국악계 전반에 있어서 중요한 간판임과 동시에 중추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가 나오는 것이 이미 1994년 ‘국악의 해 조직위원장’으로서 ‘국악’을 세상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조우(遭遇)’하게한 그였고, 1990년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서울 전통음악연주단 단장으로 참가하고, 서울 90 송년 통일음악회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남북음악인들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이끈 ‘큰 일꾼’으로서의 역할을 해 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국악의 종가집으로 불리는 ‘국립국악원’의 운영에서부터 국내의 국악 관련 주요 현안에 대해 일을 도맡아서 척척 해결해내는 명석한 일처리 능력, 그와 더불어 모나지 않은 유쾌한 유머감각을 수반한 음악인들과의 진심어린 대화를 더 크게 손꼽아야 할 것이다.

그가 서울대 법대를 간 이유

단순히 머리가 좋아서 서울법대를 간 것이 아닌,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가야금’을 계속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한 또 하나의 ‘선택’이 ‘서울법대 진학’이었고, 그와 더불어 그는 마음놓고 ‘가야금’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얼마만큼 진정으로 가야금을 사랑하고 ‘한국음악’에 대한 애정이 많은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정면돌파’보다는 한 발 후퇴해서 ‘돌아가려는’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침향무’를 비롯한 가야금곡을 주로 창작해 온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 ‘국화옆에서’라는 노래는, 철저히 한국 전통 가곡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문고 독주곡인 ‘소엽산방’이나 거문고겢諭?이중주곡인 ‘산운’에서는 정악적인 선율진행과 장단을 활용한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곡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창작의 대명사로 알려진 황병기 명인은 전통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귀하게 여기는 음악인이다. 창작의 소산이 바로 전통에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며, 철저하게 전통을 익힌 음악인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작업이었으리라.

최근 황병기 명인의 최대 관심은 자신의 이름으로 완성될 ‘산조음악’이다. 그 산조음악의 완성과 완벽한 연주를 위해 일단 ‘장단’을 맡는 ‘고수’의 역할로 산조를 서서히 돌파해 가고 있는 황병기 명인의 모습에서 음악을 존중하는 진정한 정신을 만나게 된다.

황병기 명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니면 그만’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무책임해서가 아닌, 순리대로 행하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항상 ‘이면’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철저함’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황병기의 곡 대부분은 완벽한 구성미와 맺고 푸는 한국 전통음악의 비법이 그대로 녹아 있다.

가야금 창작곡의 효시로 알려진 숲이란 곡을 듣고 있으면, 이런 ‘맺고 푸는’ 자연의 순리를 경험하게 된다. 1악장인 ‘녹음(綠陰)’에서는 산책을 위해 찾은 숲의 모습을, 2악장 ‘뻐꾸기’에서는 숲속에서 듣게 되는 자연의 소리를, 3악장 ‘비’에서는 숲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비내리는 자연적인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준다. 4악장 ‘달빛’에서는 역시 숲 속의 고요한 정취를 잔잔한 선율로 그려내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무척이나 소박하게 얘기해 준다.

음악에 대한 열린 세계 지향

황병기 작곡의 가야금 창작곡은 대부분 장단이 뒤따른다. 그런 이유에서 가야금과 장구는 무대에서 ‘한 몸’인 셈이다. 서로 수 없이 연주해 온 곡이지만, 몇 번이고 확인하고 연습하는 철저한 리허설을 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음악을 기대하는 청중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거장다운 면모를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된다.

‘침향무’라는 곡은 세상에 발표된 이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주자들이 더 많은 횟수의 연주를 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황병기만의 곡’이 아닌, 가야금연주자 모두의 곡인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 황병기 명인이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스승과 함께 연주하기에 여러모로 어렵기만 한 제자들에게, 알아서 연주할 것을 권하는 명인.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연주하는 사람의 음악’이라는 열린 의식인 것이다.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창작곡이라 하더라도, 제 삼자에 의해 얼마든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음악에 대한 열린 세계’로 인해 더욱 더 다양한 그의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떠오르는 악상은 말 그대로 ‘바람 같은 것’. 황병기의 손에는 늘 메모장이 들려 있고, 어느 곳에서든 길을 멈추고 그때그때의 필요한 것을 적는 모습에서 또 한 번 ‘새로운 창조의 선율’이 시작된다. 몇 년 전, 잠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던 황병기 명인은, 병실에 누워서도 자신의 모든 생활을 음악과 연결짓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다. 아직 음반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역시 독특한 아름다움과 평범하면서도 무릎을 치게하는 절묘한 발상이 가득한 ‘시계탑’이라는 곡. 병실에 누워서도 메모지에 ‘시계탑’에 관한 악상을 메모했을 이 분의 음악과 삶을 ‘시계탑’이라는 곡을 통해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황병기와의 대화는 참으로 다양하다. 옛날 어린 시절 살던 가회동의 상궁이야기부터 과학이야기, 우미관시절의 영화이야기 등등 장르를 구분짓지 않는 다양한 문화수용과 더불어 철저한 평론,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적인 재해석과 도입에서 황병기만의 독특한 음악이 잉태되는 것으로 보인다.

황병기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가야금연주법’과 ‘장구연주법’은,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아마도 평소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음악적으로 새로운 창조물을 내 놓을 수 있는 씨앗이 되었을 것이다.

3집 수록곡 ‘미궁’에 대한 네티즌들의 논란

얼마 전 ‘미궁’이란 작품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고, 인터넷에는 하루 수 백 건의 ‘미궁’에 관한 글이 올랐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러면 어때?’, 이 한마디로 마무리 짓는다.

작품을 만들 때는 만든 사람 마음이지만, 소리가 되어 나가고 나면 듣는 사람 마음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인 것이다. 그와 더불어 ‘미궁’이란 곡에 나오는 대목 - 괴성을 연주하는 연주자가 어느 순간 신문을 읽으면서 웃기 시작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연주하던 황병기명인도 함께 따라 웃는-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일부러 웃으시는 것인가?’, ‘진짜 웃기잖아. 넋 빠진 사람처럼 웃는 모습이…’진정으로 자신의 음악과 행위에 몰입하는 예술인 황병기. 그의 천진함과 아이 같은 순진함을 함께 본다.

‘아이보개’는 ‘아이를 보는 또 다른 아이’를 칭하는 말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곡가를 만날 수 있다.

이미 자신의 자손들, 손주가 여럿 있지만, 단순히 할아버지로서의 시각만이 아닌, ‘아이 대 아이’로서 손주의 재롱을 평가하는 익살은 황병기 명인의 새로운 음악을 충분히 기대하게 한다.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밤 시간’은 거의 ‘창조의 시간’일 것이다. 대부분의 작곡하는 사람들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밤을 꼬박 새우면서 작업하는 것만 봐도 얼핏 통계가 나올만한데 여기에 있어서 황병기도 예외는 아니다. 밤 12시쯤에도 ‘초저녁’임을 강조하는 예순 중반의 청년 황병기. 그런 그에게 밤에 들려오는 소리는, 단순히 ‘소리’를 떠나 ‘새로운 창작의 원천’이 될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인지 ‘밤의 소리’라는 작품을 듣다 보면, 황병기 명인의 밤 시간, 밤 공간을 함께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가야금독주곡 ‘밤의 소리’에서 독특하면서도 편안한 밤 분위기가 열두줄 가야금선율을 통해 나직하게 흐른다. 이 곡에서 역시 황병기만의 두 손을 사용한 편안한 주법과 더불어서 화성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밤의 선율’을 만들어, 늘 평화롭게, 평온하게 살고자 하는 자신의 인생관을 사뿐히 얹어 놓고 있다.

더욱 활발해진 공연과 더불어 끊임없는 창작활동으로 늘 깨어있는 음악가 황병기. 그가 깨어 있는 한, 한국 음악의 미래는 더욱 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