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See-Through (꿰뚫어 보는) 능력’을 기르자
특별기고- ‘See-Through (꿰뚫어 보는) 능력’을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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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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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1월로 기억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에서 수학할 때이다. 카터 대통령이 당선되던 시점이다. 패컬티 홀에서 교수들과 함께 맥주파티를 하면서 서로 누가 당선될 것인가 내기를 하며 갑론을박을 하고 있었다. 교수들 간에 서로 주장이 다르고 판단이 달라 과연 누가 당선될 지 예측할 수 없었다. 마침내 출구조사를 토대로 당선 예정자로 카터가 확정되자 그때 평소 깊은 관계를 갖고 있었던 Mr. 로쉬(당시 패컬티 체어맨을 역임)와 Mr. 맥파른(경영학에 컴퓨터를 도입한 세계적 권위자) 두 분이 내게로 와서 위로 겸 격려를 던졌다. “여러 가지로 안됐다. 이제부터 미국역사의 정체가 시작되고 한국역사의 비극이 시작된다. 꾸준히 인내를 가지고 극복해나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위로했다. 한국의 비극이 시작된다니? 의문을 제시하자 Mr. 로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번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대는 대통령직의 직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질문의 초점이 이해가 안가 헌법상에 열거되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하자, 그런 설명도 일리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대통령의 직분이 무엇이냐고 재차 질문을 했다. 이에 개념정리가 어렵고 대답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그는 그럴 거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대통령의 직분은 그 사람의 학문이 깊이가 있든 없든, 지식이 다소 부족하든 본질적으로 놓쳐서는 안 될 1차 직능이 ‘See-Through’ 즉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설사 참모가 탁월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뱃속을 꿰뚫어 보아야 하고 또 이해관계자의 주장도 어깨너머 실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복잡하고 화려한 자료가 제시되면 그 이면을 순간적으로 꿰뚫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키신저갈브레이드맥밀런사무엘슨 등 세계적인 일급의 참모가 조언을 하게 되면 그 주장에 끌려 한때는 이리 갔다 다음번에 저리 갔다 갈팡질팡하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역대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대통령의 경우 이와 같은 See-Through의 능력이 탁월했던 것은 비단 미국의 경우만이 아니다. 역사상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관된 현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Mr.카터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그는 침례교인이며 땅콩 농장주였으며 조지아주의 지사를 역임한 비교적 시골사람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침례교도로서 도덕적으로는 완벽한 목사 이상의 성직자 같은 사람이다. 속된 표현으로 ‘바’나 술집에서 여자들의 손목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을 사람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꿰뚫어 보는 이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다. 따라서 미국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한국에 그 여파가 미칠 것이다. 당장 부딪치게 될 문제가 공산 세력화에 대한 이해도가 약하고, 대전략(Grand Strategy)에 대한 전략적 개념이 부족하다. 본인의 공약사항을 실천하기 위해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고자 하는 모험을 강행하게 된다. 그러면 그 공백을 따라 공산세력의 남침은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국민에 대한 깊은 동정을 느낀다. 이런 요지였다. 과연 그럴까? 마침내 철군이 발표됐다. 주한 야전군 싱그러브 소장으로부터 그 부당성을 항의 받는 전대미문의 항명사건이 발생했다. 군 체계상 일개 야전군의 참모장이 대통령에게 항명을 하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이후에 전개된 사태는 우여곡절 끝에 카터의 철군 철회로 일단락되었으나, 그 여파는 한국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이때부터 내게 대통령의 1차적 직능은 필히 See-Through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 그렇다면 See-Through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떻게 형상화될 것인가? 지난날 월남통일의 지도력의 원천을 살피기 위해 오랫동안 호지명을 연구하고 또 여러 차례 현지답사를 하여 얻은 결론이 있다. 그것은 ‘물욕으로부터의 초월’이었다. 지금 호지명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물품이 호지명의 삶 자체였다. 정글복, 헬멧, 만년필, 정글에서 신고 다녔던 샌들, 그리고 귀 떨어진 안경, 책 몇 권이 이 사람이 남긴 유물의 전부였다. 늘 까맣게 물든 작업복과 샌들, 이것이 70평생의 위대한 지도자 호지명의 재산이었다. 그래서 호지명의 말 한마디는 국민에게 믿음, 신앙, 신뢰를 주었다. 그의 지도력의 원천은 물욕으로부터의 초월이었던 것이다. 한편 공자의 정치관(政治觀)을 보자. 그는 ‘政’은 正也라 했다. ‘정치’란 글자를 풀이하면 ‘政’은 바르고(正) 문(文)채가 나도록 해야 하고, ‘治’는 ‘삼수변(?)’에 ‘물 태(台)’를 쓴 것으로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이치다. 이와 같이 정치는 사심 없이 바르고, 문채 나게 하늘의 뜻을 헤아려가며,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바와 마찬가지로 순리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까운 사례를 살펴보자. 나는 지난 40년 간 포항제철의 창업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의 제철산업과 함께 살아왔다. 작년 4월 1일로 포스코가 창업 40주년을 맞았다. 창업의 대열에 참여하여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살아온 창업동지들은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34명으로 시작된 창업의 역사가 이제 19명의 생존자만 남게 되었다. 삼가 타계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 1968년 4월 1일 출범한 포스코는 그동안 매년 10% 이상 성장해왔다. 창업당시 16억원에 불과했던 자산 규모는 지난해 30조 4,928억원으로 1만 9,000배 이상 늘었고, 포항제철소 1기가 가동된 1973년 416억원이었던 매출액도 올해 24조원(포스코 단일 기업 기준), 자회사와 해외투자사를 포함한 연결재무구조는 33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0년간 포스코가 생산한 철강재는 5억 5,085만톤으로 중형승용차 5억 8,0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분량이다. 포스코에서 생산된 철강제품은 자동차가전조선기계 등 국내 각 분야의 주력 기업에 공급되어 이 기업들이 급성장하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포스코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2018년 그룹 매출 100조원, 생산규모 5,000만톤이라는 10년 후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원료 철광석과 유연탄 가격의 급등, ‘미탈 아셀로’ 철강회사로 대표되는 무분별한 국제적인 인수합병(M&A)의 도전을 극복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다. 이날 기념식장에서 발표된 박태준 명예회장의 경고는 깊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포스코가 지금의 위상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정체나 퇴보를 할 것인가 엄중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 세월을 반추할 때에 포철의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학자들이 여러 형태로 분석하고 있으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온 나의 판단으로는 창업자 청암(靑巖) 박태준 회장의 탁월한 See-Through 능력과 “이(利)를 보면 그것이 옳은가를 먼저 살펴보고, 위험에 당면하면 먼저 네 생명을 던져라(見利思義 見危授命)” 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훈을 구현한 ‘솔선수범’이 오늘의 세계적 기업인 포항제철, 포스코의 밑바탕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각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후배들에게 어떻게 See-Through 능력을 배양해 줄 것인가, 또 See-Through와 신앙과의 상관관계는 어떠한가 하는 것이 요즈음 내가 골몰하고 있는 일 중의 하나이다. 이에 관련해 많은 분들의 지도조언을 바란다.

여 상 환 - 법인 감사 - 자유지성 300인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