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과 원더풀 데이즈
한국 애니메이션과 원더풀 데이즈
  • 최민규 / 대구미래대학 애니메이션게임과 겸임교수
  • 승인 2003.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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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의 푸르른 날, 그 날을 기다리며

2003년 들어 한국 애니메이션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기획과 제작중이라는 소문만이 무성했던 작품들이 이제 관객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4월 개봉이 확정된 <오세암>을 비롯해 여름 개봉예정인 <해머보이 망치>, <오디션>, <엘리시움 (Elysium)>, <아크(Ark)>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애니메이션 대열 중에는 가장 관심과 기대를 많이 받고 있는 <원더풀 데이즈>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국내 애니메이션이 한해에 개봉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애니메이션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지만 내심 걱정이 앞선다. 70년대 이후 국내 애니메이션이 제대로 흥행한 적이 없었고,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국내시장을 잠식한 현실에서 이 걱정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국내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를 구조적인 문제부터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면 여러 가지 이유들이 논리적으로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영상보다도 보고 즐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지닌 영상문화인 애니메이션을 굳이 그런 논리적인 문제에 결부시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간단히 답한다면 국내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없으니까.’라는 한마디로 그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이 간단명료한 한마디의 결과로 알 수 있는 우리 애니메이션의 날씨는 7~8편의 개봉 예정 작품을 두고도 어둡고 흐리기만 하다. 여기서 언급하려 하는 <원더풀 데이즈>라는 작품이 과연 그 제목처럼 한국 애니메이션의 날씨를 다시금 푸르고 맑게 만들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흐린 날씨는 언제쯤 개일까

<원더풀 데이즈>는 CF감독 출신의 김문생 감독이 연출을 맡아 제작하고 있는 틴 하우스의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은 1999년 데모가 나온 이후 줄곧 국내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혁신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왔는데 이유는 <원더풀 데이즈>만의 독특한 제작기법과 화려한 영상 때문이었다. 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대변되는 대부분의 상업애니메이션은 한가지 기법을 토대로 모든 제작이 이루어진다. 3D 애니메이션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면서 셀과 3D를 혼합한 애니메이션들이 최근 등장하기는 했지만 제작 초기인 90년대 말에 셀, 3D, 미니어처의 세 가지 특성을 혼합한 기법의 데모영상은 새로운 시도였고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셀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의 과장된 몸짓이나 감정표현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평면적인 촬영방식으로 인해 배경의 공간감을 표현하기가 어렵고 다양한 시점의 변화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 3D 애니메이션은 셀에 비해 공간의 표현과 사실적인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셀 애니메이션에 비해 인물의 감정표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원더풀 데이즈>는 이러한 기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2D와 3D를 혼합하고 여기에 사실적이고 폭넓은 질감의 배경을 보여주기 위해 미니어처로 만든 배경을 합성했다. 셀이나 3D 기법을 선택해 데모를 발표한 대부분의 스튜디오와 달리 한 가지 기법도 아닌 세 가지를 혼용해 만드는 방식을 선택한 <원더풀 데이즈>의 제작 기획은 당시부터 다소 모험에 가까웠다. 셀 애니메이션으로만 제작해도 10~20억 이상이 소요되는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3D와 실사 미니어처까지 제작한다는 것은 이미 제작비용 면에서 엄청난 부담이 따를 것을 예고하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 가지의 기법을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로 2D 셀과 3D, 실사 미니어처의 활용은 아직까지 세계적으로도 시도가 없는 이례적인 방식이라는 것과 두 번째로는 첫 번째 이유의 연계적인 부분이지만 각 기법의 장점만을 보여주어 완성도 높은 영상을 만들려 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김문생 감독의 새로운 시도와 완벽한 영상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는 자연스러운 합성을 위해 국내 CF의 특수효과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아온 인디펜던스 스튜디오가 SFX부분에 참여한 것이나 최고의 합성소프트인 인페르노(Inferno)를 이용해 작업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분명 <원더풀 데이즈>는 애니메이션의 블록버스터로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을만한 영상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제작 발표 전부터 웹 사이트를 통해 홈페이지와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 네티즌을 공략한 홍보효과는 지금까지의 다른 국내 애니메이션에 비해 분명 차별화 된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과 함께 <원더풀 데이즈>는 5년여의 제작기간동안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독특한 제작기법, 블록버스터 가능성 커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애니메이션의 핵심인 기획과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은 보여지는 영상이 전부는 아니다. 체계적인 기획과 분석, 우수한 시나리오, 연출 등이 정확한 일정에 의한 작업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졌을 때 우수한 애니메이션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디지털 기술, 자연스러운 동작과 화려한 영상을 무기로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정확한 기획과 자신만의 독특한 연출력의 작품들로 일본 내에서 무릎꿇게 만들었다. 영상의 화려함이나 기술력으로 본다면 이 둘은 비교할 바가 못되지만 이렇듯 미야자키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에 있어 보여지는 영상보다 기획과 프리 프로덕션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기획에서는 작품을 보게될 관객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이루어진다. 관객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스토리, 캐릭터, 연출기법과 영상 등 모든 것이 컨텍스트(Context)로 분석되어야 한다. 제작기간을 3년으로 잡을 경우 기획은 3년 후의 컨텍스트를 예상하고 그에 맞춘 구성이 되어야 한다. 쉴새없이 발전하는 오늘날, 미디어시대에서는 영상은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하루가 다르게 컨텍스트도 계속적으로 변화한다. 제작 일정이 계속 늦춰진다는 것은 기획에서 설정한 컨텍스트를 계속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건물을 짓는 도중 건물구조를 바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원더풀 데이즈> 역시 여러 번 제작기간이 연장되었다. 이것은 기획의 내부에서 다시금 시나리오를 비롯한 여러 기획들이 계속 수정된 것을 의미한다. 이미 시나리오 수정, 셀 작업 전면 재수정 등의 진통을 겪었다. 이런 상처투성이의 기획이 과연 개봉에서 관객이 요구하는 컨텍스트와 부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계속적인 제작일정의 변경과 지연은 이미 4월로 개봉을 발표하고도 새롭게 7월로 개봉이 변경된 지금도 ‘왜?’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120억이 넘는 엄청난 제작비도 성공에 대한 부담을 가지게 한다. 곧 개봉하는 <오세암>의 제작비가 10억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원더풀 데이즈>의 제작비는 실로 엄청나다.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관객이 170만 이상 들어야 수지가 맞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단지 영화 관객만이 아닌 캐릭터 상품, 게임이나 수출 등 다양한 측면까지 연결되어지지만 지금까지 국내 애니메이션의 흥행성적을 감안하면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애니메이션 강국으로의 기폭제 기대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도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다. 분명 문제제기의 요소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더풀 데이즈>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처음 시도될 때 여러 위험요소가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다. <원더풀 데이즈>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영화 흥행의 신호탄이 되었던 <쉬리>가 그러했듯이 <원더풀 데이즈> 역시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블록버스터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기획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제작과정을 토대로 한 문제점일 뿐, 작품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작품을 판단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또한 <원더풀 데이즈>를 한국애니메이션의 맑고 푸른 날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여러분이다. 우리는 단순히 재미만을 쫓아 일본애니메이션만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그 전에 내부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그렇게 성장하는데 일본 관객들의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국의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한 일본 국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신조어는 생겨날 수 없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역시 <원더풀 데이즈>를 비롯한 국내 애니메이션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Wonderful day’가 열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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