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단상] 이라크 전쟁과 지곡골
[문화단상] 이라크 전쟁과 지곡골
  • 문재석 기자
  • 승인 2003.03.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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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 않은 전쟁 앞에 선 젊은 우리들

지금 지구의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아무런 합당한 이유없이 죽이는 학살이 이루어 지고 있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 시켜주는 그 어떠한 이유도 있을 수 없지만 그 최소한의 명분조차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들의 반대의 소리와 스스로의 명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사람을 손 쉽게 죽이는 것은 과학이라는 양날의 검을 미친 듯이 휘두름으로 가능해졌다.

현대에 들어서 과학 기술은 전쟁과 불편한 동거 관계에 있다고들 한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군수자본은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그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가공할 무기들은 다시 군수자본들에게 생명을 대가로 치룬 돈을 벌어다 준다. GPS(지구위치시스템)를 이용한 JDAM(Joint Direct-Attact Mnition, 공동집적공격탄) 미사일, 반경 300미터 안의 전자제품을 파괴하는 HPMs(High Powered Microwave beams, 고전력 극초단파 빔), 무인항공기(UVA), 레이저 유도폭탄 GBU-28 벙커버스터, 개량형 M-1A2 에이브럼스 탱크,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이들은 모두 현대과학의 이름을 빌어 이번 전쟁에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무기들이다. 하지만 과학은 결코 사람을 죽이기 위한 학문이 아니다. 자연의 큰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인류를 위해,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을 위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한 학문이다. 과학의 이름을 빌려 사람을 해하는 일은 그렇기에 유사이래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이 발견, 발명한 사실들이 오용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무기 개발에 반대하지 않았던가. 많은 사람의 고민과 희생이 있었기에 더더욱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과학은 그 순수한 목적에 반하는 살상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에 전쟁을 우려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에 애도를 표하였다. 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사이버 세상의 글을 너무나도 가볍기만 하다. 전쟁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한 지난 20일 한반도의 아픔을 함께 하는 어느 한 동아리는 한반도의 아픔은 함께하지만 같은 인류의 아픔은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즐겁게 공연을 하였고, 사람들이 수 많은 환영회와 대면식들 사이에서 술로 서로를 죽고 죽이는 모습에서는 지구 한 곳의 참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몇몇이 붙여 놓은 반전 공고들은 신입생 모집 공고들에 묻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나마 많은 신입생 모집 공고들 사이에 파 묻혀 그도 그런 양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은 지나다닌다. 지금 누군가가 과학의 힘을 빌어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데에도 아무것도 없는 사이버스페이스에 글을 올린 것으로 자위하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에는 우리가 짊어진 ‘Science and Technology’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지 않은가.

모두가 들고 일어나 반전 시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중심대학에서 그것도 학사 커리큘럼이 빡빡한 우리학교에서 며칠씩 수업을 하지 않으면서 시위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그렇게 갈고 닦은 과학기술이 오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몇몇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공고를 붙여 이런 전쟁의 무의미함을 알리고, 많은 손실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통텍을 뒤로 미루고 하는 것처럼 남의 고통을, 우리가 추구해 왔던 이상이 흔들리고 있음에 나름대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크고 거창한 일을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작게 시작할 수 있는 일로 시작하자. 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는지, 우리가 이공계인으로 추구한 이상이 무엇인지 서로의 생각을 알리고 또 발전시키며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으로도 지금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고를 붙인다고, 과학과 기술에 책임을 느끼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전쟁이 끝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을 하고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