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렌즈를 통해 본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세상
[문화비평] 렌즈를 통해 본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세상
  • 배남우 / 알럽디카 동호회
  • 승인 2002.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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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현대사진전 1970~2000’
서울 호암갤러리 (2002.10.25 ~ 2003.2.2)

현대사진(contemporary Photography)이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어떠한 배경사건들이 있었으며, 그 시작을 알린 작가는 누구였을까?

1940년대 중반,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20세기 ‘모더니즘’시대의 두 거장이었던 미국의 알프레드 스티글릿츠와 유럽의 모홀리 나기가 세상을 떠났고, 두 거장의 죽음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예고했다. 1950년대의 로버트 프랭크-[아메리카]와 윌리엄 클라인이 그들이었다.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은 이전의 모더니즘 세대가 추구했던 예술적 사진을 지향한 형식주의 사진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사진은 이제 더 이상 ‘카메라’라고 하는 기계적인 속성에 얽매이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전 뉴욕 MOMA(Museum of Modern Art)의 사진부 디렉터였던 존 자코우스키는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을 현대사진의 기수로 명명했고, 이들이 등장했던 1950년대를 현대사진의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현대 - 사진의 진정한 발견

하지만 이번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미국현대사진전 1970~2000”을 기획한 SF(샌프란시스코) MOMA의 사진부 디렉터인 더글라스 니켈은 이번 전시의 핵심적인 담론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고 있다.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기 위해서는 1950년이 아닌 1970년으로 시간을 옮길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더니즘 형식주의자였던 존 자코우스키의 구분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사진의 발명은 유럽에서 이루어졌지만 20세기 초 모더니즘 사진의 시대가 시작됨으로써 사진의 주도권이 미국이라는 신대륙으로 넘어왔고, 사진의 발명이 1839년에 이루어 졌지만, 사진의 진정한 발견은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1970년부터 2000년까지 3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담론을 쏟아내었고 격변했던 현대사진의 중심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미국현대사진전은 그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진화해가는 산업화 사회 속에서, 사진은 우리가 바라본 현상의 껍데기일 뿐이었으며, 무엇이 진짜 진실이고 사실인지 말해주지 못했다. 더 이상 사회에서 진실을 얻을 수 없었으며, 사진은 ‘사회적 진실’을 기록하기를 거부했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작가들은 이미지는 과거의 것들로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이미지의 창작을 거부했는데 이들은 기존의 이미지들 즉, 광고나 잡지속의 사진들을 차용함으로써 후기 구조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해체시키고자 했다. 앤디 워홀이 스스로 자신의 작업실을 ‘The Factory’라고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한히 반복해서 복사되어지는 이미지들은 ‘original’이 가지고 있었던 고고한 Aura를 해체시켰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주제를 이번 미국현대사진전에서는 현실(The Real), 정체성(Identity). 일상(The Domestic)의 3가지 주제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3가지 주제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주제는 아니며, 이들을 각각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이들 주제는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 연관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현대사진전 엿보기

현실(The Real)

프랑스의 다게르에 의해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진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보임으로써 사람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아무리 사실주의적인 회화라 할지라도 사진의 재현성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현실은 “도대체 무엇이 현실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는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는 복사된 이미지가 현실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뮬라크르의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실재가, 즉 현실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연출되어 표현되어지고, 이미지는 차용됨으로써 Aura를 해체시키고자 한다. 로리 시몬즈, 데이빗 레빈탈, 샌디 스코글런드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의 연출을 통해 현실 세계의 허구성과 불안, 공포를 말하고자 한다. 이미지 차용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진 리차드 프린스와 새리 래빈, 바바라 크루거는 광고 속 혹은 잡지 속의 이미지 차용을 통해 적극적이고 정치적인 모습을 보인다.

정체성(Identity)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가장 광범위한 사진 소재일 것이다. 특히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담론중의 하나였던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하위계층에 속하고 천하게 여겨졌던 동성애(homo sexuality)와 같은 하위 성문화가 주류문화로 대두하면서 기존의 구조와 팽팽한 대립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바바라 크루거, 새리 래빈과 함께 페미니즘 작가의 대표적인 존재였던 신디 셔먼의 경우 너무나도 유명한 그녀의 Self Portrait시리즈인 <무제-필름 스틸>을 통해서 영화나 사회 속에서 비추어지는 여성의 모습과 역할을 스스로 재현해 보임으로써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로버트 메이플토프, 낸 골딘은 자신들이 속한 하위문화를 주류문화에 편승시킨 포스트 모더니즘시대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일관되게 자신의 모습을 담아온 낸 골딘의 사진은 사적인 다큐멘터리의 속성을 보이는데,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내어 진솔한 작가의 얘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정체성에는 또한 아프리칸-아메리칸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흑인 작가들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노예의 신분으로 신대륙에 정착했던 흑인들이 세월이 흘러 현재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미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흑인 작가들은 스스로의 셀프 포트레이트나 사회적 역할들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일상(The Domestic)

사진은 예술이어야 한다며 예술사진을 추구했던 모더니즘 시대의 작가들에게 있어서 “일상”이라는 소재는 무척이나 하찮은 소재였다. 하지만 현대사진에 있어서 일상은 더없이 중요한 소재이며, 일상을 떠나서는 우리의 삶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일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일상과 정체성은 따로 구분해서 말하기보다는 같은 맥락에서 언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대에는 일상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셀리 만은 그녀의 가족과 가정의 일상을 기록했다. 에멧 고윈의 작업도 셀리 만의 작업과 비슷한 면이 있다. 에멧 고윈 역시 그의 가족들의 일상과 그가 살고 있는 고향의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국현대사진전에 나타난 일상의 모습은 지난 30년 동안에 미국의 가족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보여주며, 도시화와 더불어 도시의 외곽지역의 형성되는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불꽃

1990년대를 기점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주춤하는 기세를 보이고 있다. 마치 활활 타올랐던 불꽃이 정점에 이르렀다가 점점 수그러들듯이 21세기에 막 들어선 지금에는 이제 진부한 느낌마저 든다. 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은 완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이론이라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구조주의의 해체를 주장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은 오히려 60년가량 지속됐던 모더니즘보다 더 빨리 그 지속력을 잃었다. 가장 큰 이유는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지나친 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인 토대가 언어학, 철학, 포스트구조주의, 해체주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비판이론에서 끌어들여온 개념적인 이론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사용하는 이론이나 단어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더니즘은 사진이나 이론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해석의 다양함을 열어놓고, 사진을 되풀이해서 볼만한 가치를 느끼게 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진은 그렇지 못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작가들 중 많은 작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으로부터 물러나 오히려 회화나 조각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꾸준하게 자기 작업을 일관되게 해온 작가는 정체성 부분에서 소개한 신디 셔먼이 대표적일 것이다.

미국현대사진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번 전시에는 미국현대사진의 주요작가 40명의 작품 113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한 작가당 평균 3점의 작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치적으로 생각해본 것이고 실제로 전시장을 찾았을 경우, 어떤 작가의 작품은 달랑 한점이 전시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단지 전시회의 제목 그대로 미국의 현대사진을 접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갤러리를 찾는다면 전시회가 무엇을 말하는지, 왜 이러이러한 작가가 이러이러한 주제로 분류되었는지, 이러이러한 작가는 왜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는 머리만 복잡해서 돌아오는 경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현대사진전 1970 ~ 2000은 내년 2월까지 계속된다고 하니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이론적인 공부와 갤러리에서의 작품감상을 병행한다면 미국현대사진,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작가들에 대해서 확실하게 정리를 할 수 있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