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등대지기의 남포동 24시
영화제 등대지기의 남포동 24시
  • 유진경 / 신소재 97
  • 승인 200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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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부산에서는 겨울의 길목에서 ‘영화의 바다’가 펼쳐진다. 올해로 7회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지금 남포동과 해운대 일대에서 한창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아시아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역동적인 영화제로 손꼽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변화무쌍한 영화의 바다에서 헤엄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또 몰려들고 있다. 이런 축제의 장의 한가운데에 등대지기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다. 등대지기를 자처하듯이 남포동 부산데파트 영화제 조직위원회 사무국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새벽녘인데도 많은 직원들이 남아서 다음날의 업무를 준비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프로그래밍팀 GV(Guest Visit)파트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GV 자원봉사자의 업무는 영화제 전 기간에 걸쳐 총 110여개에 달하는 ‘게스트와의 대화(GV)’의 원활한 진행을 돕고 영화제 각 부문마다 최소 한 개 이상의 작품을 대상으로 ‘게스트와의 대화’를 녹취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영화제 막바지 사흘을 제외하고는 매일 15개에서 19개의 GV가 있으며 이 중 6개에서 8개의 대화를 녹취하여 정리한다. 업무 특성상 부산 데파트 사무국과 상영관 모두를 돌아다니는 몇 안되는 팀 중의 하나에 속해있어서 몸은 다소 고되지만 영화제의 진행과 영화제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들과 마주치는 각종 인간군상들을 어느정도 꿰뚫어볼 수 있다는 색다른 경험도 가질 수 있다. 덤으로 이른바 유명한 영화인들을 상영관 지원 자원봉사만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행운도 따른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상당부분 350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의 손에 의해 꾸려진다. 직원수가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자원봉사자 나름의 일에 대한 ‘열정’(7회 자원봉사단의 구호이기도 하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제의 많은 부분을 맡아서 운영해 나가고 있다. 위원장 이하 모든 직원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화제를 실제로 꾸려나가는 이들은 자원봉사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는 대부분 오전 11시 정도에 상영이 시작되나 업무는 빠른 곳은 8시 30분부터 시작이 된다. 자원봉사자의 입장에서 하루 일과를 기술하면 자원봉사팀, 사무팀, 행사장 설치팀, 기술팀, 티켓팀이 그 날의 상영과 활동, 매표를 지원하기 위해 업무를 시작한다. 9시를 넘어서면 프로그래밍팀, 홍보팀, 초청팀, PPP팀 등이 각자의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모여든다. 늦어도 9시 30분이 되면 남포동, 해운대, 부산 시민회관, 사무국 곳곳은 자원봉사자들로 메워진다. 첫 상영을 위한 입장이 시작되면 막바로 갖가지 인간군상의 모자이크가 펼쳐진다. 지각도착으로 입장이 거부되어 목소리 높여 싸우는 사람, 길 모르고 헤매는 외국인, 업무 때문에 그 혼잡한 인파를 뚫고 달리는 여러 자원봉사자들로 이 모든걸 바라보는 이에게는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할 만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자원봉사에 대한 달콤한 상상은 깨어지기도 일쑤이지만 하루를 돌이킬 때는 오늘은 이런 일들도 있었다면서 모두의 경험을-그것이 아무리 고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다 해도-즐겁게 공유한다.

모두들 최선을 다해 부끄럽지 않은 자원봉사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던 자원봉사자 발대식이 지난 13일이었으니 어느덧 여러 날이 되어가고 있다. 상당한 수를 차지하는 대학 1, 2학년생들도 피로에 그 풋풋함을 잃어가고 있지만 아침마다 그리고 밤마다 길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정겨움은 더해져만 간다.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23일까지 계속된다. 대부분의 표가 매진되어 관람은 쉽지 않겠지만 부산국제영화제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느끼는 것은 나름대로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아직 늦지 않았으니 바닷내음 실려오는 남포동 Piff 광장을 거닐어 보길 바란다. 부딪혀보면 실망스러운 점들도 있지만 2년째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우리팀의 자원봉사자 말대로 가끔씩 정말 지겹고 힘들지만 좋아서 한다는 ‘징그러운’ 공통점 때문에 서로가 기억나고 또 하고 싶어진다. 관심있는 분들은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모집때 영화제의 문을 두드려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