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불러라. 오묘한 매력이 당신을 휘감을 것이니…
들어라, 불러라. 오묘한 매력이 당신을 휘감을 것이니…
  • 류정은 기자
  • 승인 200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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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정년퇴임하신 화학공학과 김영걸 명예교수에 의해 그 기금이 마련되어 운영되고 있는 항오강좌가 올해로 2회째를 맞았다. 이공계로 특성화 되어 있는 우리대학의 학생들에게 우리 고유의 음악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특별히 황병기 교수를 초청, <한국음악의 미>라는 주제로 강연을 마련하였다.

‘안 먹어보던 것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가 한국음악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대부분의 신세대. 한국 음악은 우리의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아주 유리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신식 교육이 도입되면서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는 논리 아래 음악 교육 전반이 서양음악의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황병기 교수는 프랑스에 여행을 가셨을 때 프랑스 치즈의 특이한 냄새 때문에 첨에 엄청 곤혹스러웠지만 이제는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우리 음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음악을 자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음악 안의 독특한 맛과 멋’

한국음악에는 우리만의 맛과 멋이 있다고들 하는데 모두 말뿐이지,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면서 직접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의 처음 소절을 들려주셨다. 또한 보통 한국음악은 너무 느리게 질질 끈다면서 지루해서 들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음악은 느릴수록 스릴과 서스펜스가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이면서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시조 몇 소절을 같이 불러 보는 시간을 가졌다. 따라 부르기 쑥스러워 하던 사람들도 모두 함께 하면서 강연장의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또 한국음악은 느림 속에서도 변칙적인 장단과 리듬을 사용하면서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이를 통하여 한국 음악에는 음양의 묘가 녹아들게 된다며 우리 음악의 매력을 강조했다. 우주의 질서가 녹아있는 것이 바로 한국음악이라는 말씀이다. 이런 기법들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우리 음악은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표출되는 기쁨, 한(恨)을 표현해내려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 음악의 특성을 자주 들으면서 느끼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디지털 시대의 한국음악은?’

강연이 끝난 후, 디지털 매체로 우리 음악이 주류로 뛰어들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전통적인 기법을 배제하고 초현대적인 방식으로 전자음악과 사람 목소리를 혼용하여 대표적인 전위적, 실험적 음악이라 불리는 ‘미궁’이라는 작품을 소개하시면서 최근 게임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다고 답하셨다. 작품 ‘미궁’의 쇼킹함에 창작 초기에는 3년간 연주 금지를 당하였고 인터넷상에서 ‘3번 들으면 죽는다.’는 소문까지 돌았었다는 말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충분히 국악도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한 예가 될 것이다.

‘즐거워서, 불가능하다고 했기에’

어떻게 국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황 교수는 어렸을 적, 피난 시절에 들었던 가야금 소리에 매혹되어 국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평범한 삶을 꿈꾸어 왔기 때문에 위대한 음악가가 되겠다는 야망같은 것은 없었다며 특별한 이유나 목적없이 그저 즐거웠기 때문에 매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음악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과 중 하나였다고 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그것에 푹 빠져 미친 듯이 하는 일에는 무서운 힘이 발현된다는 메세지를 덧붙였다. 1962년엔 작곡을 시작했는데 국악에는 없는 것이고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매력을 느꼈다고. 국악이 비대중적인 것이기에 대중적인 것이 되도록 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순간 그것에 대한 욕구가 시작되었다며 매력있는 작업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그의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도전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정신. 비단 공학도들과는 어쩌면 동떨어진 한국음악이라는 분야에서의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그 분의 창조정신을 배울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잘 알지 못하고 멀게만 느끼던 한국음악의 매력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류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