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과 미화로 시청률 제일‘時代’를 열다
왜곡과 미화로 시청률 제일‘時代’를 열다
  • 류정은 기자
  • 승인 200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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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야인시대’.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 미디어 리서치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0월 중순, 53%까지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치솟았다. 남성 드라마의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성인 여성층에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청소년층과 어린이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폭넓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 드라마의 인기몰이는 시청률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두사모(김두한을 사랑하는 모임)’가 발족되어 깨끗한 정치나 선거를 위한 운동을 벌이려 하고 있으며 최근 김두한 묘소의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선 대학가에서는 김두한의 이미지를 내세워 선거유세를 벌이는가 하면 이번 달 21일에는 ‘오야붕’ 김두한의 야인정신과 그의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 ‘김좌진-김두한 영산제’가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김두한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드롬은 대단히 위험하다.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제작 방향과 실제 이 드라마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를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항일투사 김좌진의 아들로, 일제시대 좌ㆍ우익 대립의 정점에 존재했던 김두한의 인간적인 면과 정의를 위한 그의 투쟁을, 그 시대의 시대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보려는 의도라고 내세우고 있다. 폭력성을 경계하고 당당한 주먹 세계를 그리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범인들의 민족의식을 드러내는 방향성을 가진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과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민족의식을 드러내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까?

김두한이 이 극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이 극이 지니는 위험성을 느낄 수 있다. 나름대로 방송 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환경 작가는 ‘야인 시대’ 전작인 ‘태조왕건’에서 왕건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그려내 호평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야인시대’에서 우리의 기대는 무너진다. 시대극이라면 그 시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마땅한데 이 드라마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김두한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김두한 이외의 인물은 엑스트라와 같이 그들 자신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김두한의 영웅성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 왜곡되어 있다. 이것은 기존의 제작방향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시대의 재조명이 아닌 끊임없는 권력의 확장과 의리,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빛을 발한 김두한의 의협심. 비틀어진 영웅주의와 김두한이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왜곡을 ‘재창조’해 내었을 뿐이다.

어린 시절, 김두한은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가네야마(이환지)의 집에 불을 질러 자신의 회중시계와 빚장부를 가지고 도망치는 일화를 통해 그의 항일의식을 이야기 하려 하나 이는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또한 김두한이 자전거 영업소의 관리권을 하야시로부터 넘겨받는 조건으로 하야시 패에 통합되었다는 증언으로 비추어볼 때, 그 둘의 관계는 이 극에서 그려지는 것과 같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를 당대 정의와 소신의 항일투사로 그리는 것은 시대극답지 않은 왜곡의 소산이다.

시청자의 흥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왜곡과 과장을 감행하고 영웅을 창조해내는 것. 어떤 측면에서 보면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도 주고 즐거움도 준다는 이유로 합리화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시청자들을 위하는 것이라는 논리로 시대를 왜곡하는 것은 시대 자체를 바꾸는 것이기에 크나큰 잘못이다. 시청률에 의존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구조 자체도 문제일뿐더러 시청률에 눈이 멀어 시청률 경쟁의 손아귀 안에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것까지 무너뜨리고 무시하는 제작자의 태도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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