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주체성
생각의 주체성
  • 강탁호/박지용 기자
  • 승인 200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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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세상에 더이상 난 볼 수 없네, 진실을
누구나 목소리를 크게 높인다. 자신이 옳다고. 자극적인 주장과 필요하다면 엉뚱한 근거도 그럴듯하게 붙여놓는다. 다수는 옳은 거고, 소수는 공격 당한다. 이건 뭐 악플 때문에 겁나서 말도 못 하겠고. 진실은 오도되고, 소문과 낚시는 판을 친다. 한 마디로 ‘썰’은 널리고 널렸는데 그게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겠다. 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겠네. 허허허 그냥 ‘난 모르겠다’며 살아버릴까.

1) 인식의 오류들

데카르트 이래의 합리주의 전통에서는 인간의 사고가 본질적으로 논리적이며, 항상 주어진 정보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그 타당성을 확인한 후에 수용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인간의 이해와 논리적 사고는 분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은 주어진 내용 자체를 일단 수긍하고 수용하고, 이후에 특정한 여건이 발생한 경우에만 그 내용의 반증 가능성 여부를 되묻게 된다는 입장을 전개하였다. 현재는 이러한 스피노자의 입장이 더 지지를 받고 있다. 아래 예를 보자.

[A] 모든 사람은 도덕적이다.
공자는 사람이다.
고로 공자는 도덕적이다.
[B] 모든 사람은 사랑을 한다.
히틀러는 사람이다.
고로 히틀러는 사랑을 한다.

[A]와 [B]의 진술은 타당할까? 아마 대부분 [A]는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B]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믿음과 선입견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을 살펴보면 [B]의 가정은 모두 타당한 반면, [A]의 ‘모든 사람은 도덕적이다’라는 가정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A]의 가정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러한 경향을 심리학에서는 ‘신념편향’이라고 한다. 어떠한 명제에 대해 사람들은 믿을만하면 그대로 수용하고, 믿을만하지 않은 결론들의 내용만 선택적으로 그 논리적 구조를 세밀히 점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1983년 심리학자 에반스·바르스톤과 폴라드에 의해 실험적으로 밝혀진 것으로, 이들은 이러한 경향을 ‘선택적 훑어보기’라고 명명하였다. 일명 ‘스피노자 절차’이다.
또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이 믿는 바, 바라는 바, 조금 알고 있는 바를 지지하는 정보는 진위에 관계없이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믿으며 그것을 지지하는 정보와 증거를 더 찾는 반면, 그에 배치되는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을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념편향과 확증편향 등의 인지 오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괴담에 휩싸이기 쉽다. 괴담이란 ‘근거가 불확실하며, 광범위하게 유포되며, 이를 많은 사람들이 수용하는 일종의 보도·설명·신념·의견’이다. 괴담은 보통 특정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가 퍼뜨린 것인데, 괴담에 휩싸이는 사람들이 보통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게 됨으로써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에 따르면, 괴담은 뉴스가 전혀 없거나 불완전하고 신빙성이 없을 때 또는 뉴스의 공표된 사실이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긴장을 불러일으켜 그것을 믿기 어렵거나 믿고 싶지 않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확증편향적으로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더 믿고 지지하게 되면서, 객관적 검증 없이 소문을 믿고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믿음을 얻은 ‘썰’은 신념편향적으로 논리적 타당성과 진위 여부 등의 검토 이전에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어떤 대상·사건에 대한 이러한 인지적 부조화는 결국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끌려가도록 만든다. 사람들은 인지적으로 사보타주(sabotage)를 당하고,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상태가 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를 오도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더 믿게 되는 일종의 부적응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2) 생각의 혼란들

(주제 1) 언론의 힘,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이거나?
여배우 K 양은 국민 공주라 불리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녀는 드라마에서는 천사였고, CF에서는 귀여운 오드리 헵번이었고, 리얼리티 쇼에서는 털털한 옆집 누나였다. 국민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열광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 - “잠깐, 그녀는 진정 누구일까?”
대중은 K를 만나 본 적도 없다. 단지 브라운관의 영상이나 인터넷 기사를 보고 K를 판단할 뿐이다. 실제로 K가 천사인지 털털한 옆집 누나인지는 모른다. 대중은 K의 실체와 무관할 수도 있는 매체 속 K양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J.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것은 시뮬라크르, 즉 실체 아닌 기호들의 세계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실체가 A이고 미디어의 기호(표현되는 것)가 B라 하면 우리는 B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고, A는 사라져버린다. 5·18 광주민주화 항쟁을‘총을 든 난동자들에 의한 광주의 무정부상태’로 보도한 일간신문들의 주장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는 고백은 매체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맹목적이지 않아야 함을 역설한다. 굳이 역사적 사실을 꺼내놓지 않더라도 진실처럼 보도된 거짓으로 사회는 들썩거린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설에 주가는 요동친다. 촛불시위 여대생의 사망설은 한여름 밤을 뜨겁게 달궜다. ‘카더라 통신’과 ‘썰’이 판을 친다.
매체 정보에 대한 비판적 수용의 필요성은 매체의 의제 설정 과정에 주목해도 알 수 있다. 언론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 중에서 몇몇 중요하다 싶은 이슈를 선별해 다루고, 나머지는 알리지 않는다. 미국의 M. 맥콤스와 D. 쇼는 1972년 언론의 의제 설정에 관한 이론에서 사람들은 언론에서 제기한 이슈를 중심으로 세상을 인식한다고 한다. 언론의 의제설정은 사람들의 생각 자체를 형성하는 소재가 된다.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한 이슈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사람들의 생각에서 배제될 뿐더러 존재가 없어진다.
이런 언론의 의제 설정은 정보제공자의 선별과 편집에 따라 정해진다. 그리고 결과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달라진다. 정보수집의 부족으로 인해 중요한 가치를 띠는 이슈를 보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겠고, 기관에서 제공한 표면적인 정보를 수동적으로 보도할 수도 있다. 또한 모든 과정에 있어 기자의 가치 판단은 필연적으로 개입된다.
손석춘 중앙대(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신문 읽기의 혁명>에서 광고주·재단의 압력, 신문사의 사익(私益) 추구 등에 의해 신문마다 바라보는 이슈가 달리 나타남을 설명했다. 이런 요인은 때로 진실을 축소하거나 왜곡·은폐함으로써 사회의 공공선과 배치될 수 있는 정보를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디어의 상업 논리 속에 연예계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선정적 기사는 루머의 진원지로 비판받고 있다.
(주제 2) 인터넷에 떠도는 생각의 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직 언론에 의한 일방적 의제 설정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정보전달은 일방통행성에서 쌍방향성을 획득하게 된다. 누리꾼들은 UCC나 블로깅, 댓글을 통해 인터넷 세계에 뛰어들었다.
포털의 댓글은 여론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곤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상품평을 보고 살지 말지를 결정한다. 또한 뉴스가 속 시원히 잡아주지 못한 사실을 댓글을 통해 속 시원히 꼬집기도 한다. 어떤 여론에 있어 인터넷 대중의 가장 보편적인 인식을 단적으로 알고자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은 베스트 리플을 보면 된다. 또는 블로깅을 통해 기사의 시선이 잡아내지 못한 문제를 이슈화시킬 수 있다.
이런 참여를 통해 우리는 의사결정과 여론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누리꾼의 참여에 의한 여론 형성과 상호간 토론이 항상 바람직하게 작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쉬이 긍정의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사이버 민주주의의 성숙이라 평가되었던 지난여름의 촛불정국이 반드시 시민의식의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제9회 정보문화포럼’에서 조화순 연세대(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촛불시위 기간 동안 다음의 아고라와 카페의 ‘쇠고기, 광우병, 촛불시위’ 관련 게시글을 분석해서 누리꾼들이 주로 인터넷 정보와 개인적 경험에 근거해 주장을 펼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주장보다 거짓된 이미지와 정보가 쉽게 확산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조 교수는 촛불시위 관련 아고라 게시글에서 대다수의 게시글에 대한 댓글의 찬성률이 80% 이상이었고, 반대글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보이며 공정한 토론절차를 지킨 경우는 별로 없었다고 평가하며, 인터넷 공간은 다른 의견이 교차되고 교류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기 확신을 굳히는 성격이 강한 공간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가장 간단하게 의견을 표출하는 있는 인터넷 댓글도 충분히 포괄적이지는 않다. 몇몇 설문조사에 의하면 인터넷 댓글은 다는 사람만 단다는 것. 중앙일보가 지난 2006년에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한 달 동안 댓글을 한번이라도 남긴 누리꾼은 전체의 0.83%뿐이라 한다. 즉 평균적으로 기사를 보는 사람이 100명이라고 하면, 그 중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1명에 불과하다는 통계이다. 인터넷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는 하지만 댓글을 달고 활발히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몇몇이다. 소수의 댓글족에 의해 댓글이 달리지만, ‘침묵의 나선 효과’가 합쳐지면서 그런 댓글이 사회 전체의 여론을 주도하는 횡포를 부릴 개연성이 충분한 것이다.
(※침묵의 나선 효과 : 주변에서 고립되는 걸 두려워하는 인간 심리에 의해 자기 의견이 다수라고 느낄 때는 더 의견을 개진하고, 소수 의견이라 느낄 때는 침묵하는 효과. 실제로 소수의 의견이 꽤 있을지라도 결국 매체에 표현되는 다수의 목소리만 남게 된다.)

3) 세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우리의 생각은 필연적으로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외부에 의한 사고의 발현이 부정적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정보의 습득으로 인해 개인은 사상과 가치관을 넓힐 수 있게 되며,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의 치우친 소리로 편협한 의견을 가질 수 있으며, 만들어진 진실을 믿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정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지만, 정보제공자는 언제나 그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서 정보에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때문에 타인의 가치가 부여된 정보에서 본질을 파악해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을 중요하다.
비약적으로 증대되는 정보가 책이나 디지털 영역, 미디어 영역에서 쏟아지고 대중의 소통성이 증대된 현실 사회에서 올바른 정보를 얻어 가치 있는 판단을 내리는 일은 중요하다. 비록 엄청나게 혼란스런 세상에서 미약할지도 모르겠으나 ‘낚임 방어 법’으로서의 ‘비판적 사고’의 기준을 제시해 볼 수 있겠다. 이 기준들이 절대적인 해답은 아니지만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는 할 것이다.

? 주장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기준

① 관련 분야의 경험자나 전문가의 의견인가?
② 해당 분야에서도 경험이 많고 지식이 많은 전문가의 의견인가?
③ 충분히 이유를 제시하는가?

? 뉴스를 받아들일 때 유의할 점

① 정보의 근거가 믿을만한가?
② 치우친 언어, 주관적인 어조, 부적절한 권위를 사용했는가?
③ 정보의 출처가 믿을만한가?
④ 필수적 사실이 누락되지 않았는가?
⑤ 지나치게 강조된 점이 없는지.
⑥ 대안적인, 반대되는 뉴스 또한 읽기.

☞ 출처 : <비판적 사고> 박은진·김희정 저

▶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도. 관련 기사에 걸쳐 일관되게 ‘폭도’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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