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이 나아갈 방향
대학신문이 나아갈 방향
  • 송기형 대학신문 주간교수협회장
  • 승인 200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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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독자들의 뜨거운 사랑과 건설적인 비판 절실
포스텍은 역사는 길지 않지만 이미 대한민국 대학가에서 신화입니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올라서서 국내외의 과학기술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포스텍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대학인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는 포스텍 학생들이 만드는 <포항공대신문>의 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러나 축하를 받는 <포항공대신문> 기자들의 마음이 편하고 기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합니다. <포항공대신문>의 앞날이, 포스텍의 미래와는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종이신문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신문은 점점 더 구성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대학신문의 위기는 보편적이지만, 대학마다 사정이 너무나 다르므로, 그 해결책은 개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외부인이 <포항공대신문>에 조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지만,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으로서 몇 마디 하려고 합니다.
첫째, 독자에게 더욱 더 다가가야 합니다. 읽히지 않는 신문은 공해나 다름없습니다. 한 사람의 독자라도 더 확보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조중동’을 비난하지 않는 대학신문은 드뭅니다. 하지만 경품을 제공하면서까지 독자를 잡으려고 애쓰는 ‘조중동’에서 대학신문이 배울 점운 분명 있습니다. 아니 그런 자세는 배워야 합니다.
<포항공대신문> 기자들에게 묻습니다. 신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독자를 얼마나 생각합니까? 대학신문이 ‘기자들의, 기자들에 의한, 기자들을 위한’ 제작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구독료를 직접 받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대학신문을 보기 위해 일반 신문처럼 별도의 구독료를 내야 된다면, 거의 모든 대학신문이 파산하고 말 것입니다. 독자가 감소해도 파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학신문은 엄청난 특권을 누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독자들의, 독자들에 의한, 독자들을 위한’ 대학신문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신문 기자들이 여론수렴보다는 여론주도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신문이 여론주도에 의해 민주화에 적지 않게 기여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민주화가 상당 부분 이루어진 오늘날, 정치변혁 또는 사회변혁이 대학과 대학신문의 ‘주요’ 목표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또 여론주도에 의해 자기 대학의 문제점을 파헤쳐서 시정하는 것은 대학신문의 책임이고 의무이지만, 주간이나 격주간 발행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정치변혁이나 사회변혁 그리고 학내문제 개선이 중요하지 않다는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대학신문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여론주도 못지않게 여론수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여론주도는 독자들에게 따라오라고 소리치는 반면, 독자들에게 한 발이라도 더 다가가야 여론수렴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대학신문의 일차적인 독자는 학생·교수·직원·동문·학부모들입니다. 이 독자들이 원하는 신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포항공대신문>이 일반 언론이나 다른 대학신문과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광범위한 여론조사, 치밀한 기획, 심층취재에 의해 일차적인 독자들이 피부로 와 닿는다고 느끼는 기사가 오늘의 대학신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차적인 독자 양산에 의해 독자층의 외연을 확대해야 합니다. 거의 모든 대학이 지역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사를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대학신문이 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대학신문은 하루 빨리 지역사회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합니다. 포스텍 학생들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고 해도 지역사회와의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대학신문의 노력 덕에 대학과 지역사회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대학신문은 지역사회와의 교류 활성화에 기여함으로써 독자층의 폭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인터넷판 제작에 의해, 포스텍 학부와 대학원을 지망하는 수험생들을 새로운 독자들로 끌어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대학문화 창출에 의해 문화변혁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제 대학과 대학신문은 정치변혁이나 사회변혁보다는 문화변혁에 주력해야 한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다음 세대 육성이 대학의 존재이유라는 점에서 대학은 일반사회보다 진보적이어야 하는데, 민주화와 산업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 정치변혁이나 사회변혁의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 만큼 문화변혁에 힘쓰자는 말입니다. 문화적 선진화가 동반되지 않는 민주화와 산업화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며, 그 대표적인 실례가 오늘의 대한민국입니다.
선진화된 문화는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하며, 문화의 생명력 자체가 다양성에 있습니다. 우리 문화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단적인 증거는, 티브이 드라마와 연예인 대담이 대표하는 대중문화에 대학생들까지 넋을 잃는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대학문화는 대중문화와는 달라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대학에는 고유한 문화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학신문에서 문화 관련 기사의 비중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학생기자들이 부지런히 문화적 역량을 길러서 독자적인 대학문화에 의해 획일적인 문화를 변혁시켜야 합니다. 변혁을 통한 문화의 선진화 또는 다양화는 진정한 민주화와 산업화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직후에 일군의 창조적인 건축가들이 ‘도시가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구호에 의해 새로운 도시와 함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문화면이 바뀌면 대학신문이 바뀐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신문의 독자들, 특히 학생독자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대학신문은 학생기자들이 만듭니다. 당연히 학생독자들이 가장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대학신문의 존재이유가 학생이라고 말해도 됩니다. 대학신문을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우산이나 깔개 등의 엉뚱한 용도로만 사용하는 학생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대학신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따끔한 질책을 가해서 새롭게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학신문이 바뀌면 대학과 학생들이 함께 바뀔 것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학생들의 뜨거운 사랑과 건설적인 비판이 대학신문에는 절실합니다.
그러나 대학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포스텍의 학생들을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은 그 어떤 대학의 구성원들보다 더 자기 대학을 사랑한다고 들었습니다. 또 <포항공대신문>은 지난 20년 동안 포스텍의 언론매체로서 저널리즘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이공계 특성화 대학의 특성에 맞춰 아카데미즘을 꾸준히 추구하여 왔다고 합니다.
따라서 <포항공대신문>의 앞날이 포스텍의 미래와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제 말은 정정해야 합니다. 독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이공계 대학 건설에 기여할 <포항공대신문>의 미래 역시 찬란하게 빛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항공대신문>의 창간 20주년을 거듭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