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평론가] 로드무비
[나도평론가] 로드무비
  • 문재석 / 화공 01
  • 승인 200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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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낯선 사랑이 낯설지 않기 위해서

동성애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 대중에게 다가서는 데에는 거부감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자고 말하면서도 막상 여자간의 혹은 남자간의 동성애는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다. 사랑을 해서 가지는 성관계라고 하더라도 남자끼리 서로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하는 성관계는 사랑이라고 인식되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성욕을 달래기 위해 “똥꼬 한번 내주는” 행위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혹은 신파극이 아닌, 남편 혹은 아내 몰래 다른 사람과 성행위를 다루는 영화라 하더라도 동원되는 관객의 수에서 동성애를 다룬 영화를 압도한다. 그나마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의 경우라도 동성애에 대한 심각한 고찰이나 정확한 이해가 깔려 있다기보다는 단지 하나의 포르노물을 연상케 하는 선정적인 화면으로 가득 차 있기 일쑤다.

동성애를, 그것도 남자끼리의 땀나는 사랑을 다룬 영화 <로드무비>가 개봉 일주일 만에 형수와의 사랑에 집착하는 영화 <중독>에 밀려 서울 및 대구, 부산 전역의 극장에서 일찍 막을 내렸다. 그것은 사람들 비단 극장 관계자 뿐만 아니라 그 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인식이 아직 동성애를 또 하나의 다른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았음을 잘 반영한다. 개봉 일주일을 하루 더 지난 시점에서 서울 시내 단 한 곳 종로 코아아트홀에서 겨우 이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로드무비>는 길을 따라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길에서 새로운 만남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로드무비”이다. 전직 산악인이었던 대식(황정민 분)은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의 내면을 더 이상 속일 수 없어 산도, 아내도, 가족도 버리고 서울역 거리로 나앉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어느날 주가 폭락으로 재산을 모두 잃고 아내로부터도 버림받아 거리에서 노숙자 신세가 된 전직 펀드 매니저 석원(정찬 분)을 만난다. 석원은 이런 생활이 잠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노숙자 생활이 지속되자 자살을 시도한다. 손목을 긋기도 하고 다리에 목을 매달아 뛰어 내리기도 하지만 그 어느것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채 대식의 도움을 받고 살아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식에게 의지하게 되는 석원은 대식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대식은 지루한 서울역 앞 노숙자 생활을 그만하고 여행을 가자고 권한다.

목적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가는 여행 길에서 대식은 커피 팔러 온 일주(서린 분)가 바닷물에 자살하려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녀를 구한다. 그녀는 자신을 구한 대식에게 마음을 사로 잡히고 이들의 여정을 악착같이 쫓아 나선다. 대식은 각자의 몸 챙기기도 힘들다며 일주를 내쫓지만 일주는 한 움큼의 약을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기어이 이들을 따라간다. 정상적인 삶으로의 복귀를 바라보는 석원, 석원을 바라보는 대식, 그리고 그 대식을 바라보는 일주. 서로가 각기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가운데, 이들의 여행길도 갈수록 팍팍해진다. 결국 대식과 석원은 다시 길을 떠난다.

동성애를 다룰 때 많은 영화는 이를 이성애에 비해 더 순수한 것으로 미화시켜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현재의 극단적 이성애 중심적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동성애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로드무비는 이러한 일반적인 동성애 영화와는 시각을 달리한다. 즉, 동성애와 이성애를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본다. 이 영화는 이성애 또는 동성애가 더 혹은 덜 순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 없으면 죽고 못사는 두 동성애자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현실로 복귀하고자 하는 이성애자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동성애자,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이성애자에 관한 영화이다. 석원은 자신은 이성애자지만 그 동안의 신세를 갚기 위해 얼마든지 자신의 “똥꼬”를 대줄 수 있다며 약에 취해 주정한다. 그는 결코 대식의 마음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대식은 “먹으려면 전에 먹었다”면서 이런 석원을 사정없이 걷어찬다. 일주는 이러한 대식에게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중요하지 않다면서 자신이 책임질 테니 자신과 함께 노력해보자고 제의한다. 동성애와 이성애, 이 영화에서는 그 어느 것도 불편하기 매 한가지다.

영화 시작부분에 있었던 남자간의 성교장면,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고 대식의 죽음으로 치닫는 우울한 결말. 이와 더불어 동성애를 이성애와 ‘같이’ 놓아두고 인물간의 미묘한 감정을 설정, 묘사한점. 이 영화의 이색적인 설정이 관객들을 끌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비일반성 속에서 이 영화는 관객에게 사뭇 진지하게 말을 건넨다. 동성애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것을 배타적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커밍아웃을 선언한 동성애자나 그들을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일반인들 마저도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일반인들은 그들의 입장이 아니기에 그들 본연의 문제나 현실에 대해 그들만큼 접근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선 이해하는 것, 동일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은은한 맛의 요리는 먹으면 먹을수록 그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듯, 그들을 낯설지 않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 낯선 영화, <로드무비>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진정한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