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밝은 달과 좋은 친구
[노벨동산] 밝은 달과 좋은 친구
  • 홍승표 / 수학교수
  • 승인 200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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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서 흘러드는 밝은 달빛,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월광이 조용히 들려온다. 때로는 토끼처럼 콩콩 뛰는가 하면 활기차게 달리기도 하는 곡조에서 기분이 차분히 가라않으면서 마음이 펴-ㄴ아-ㄴ해진다. 한참을 듣다보니 잠이 들려고 한다. 아름다운 음악이란 이래서 좋은가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하루하루 살다보면 세상으로부터 나 자신을 짜증나고 화나게 만드는 많은 도전들을 접하게 된다. 이것으로 인해 마음은 초조해지고 정서는 불안해진다. 이러한 정서의 불안은 인생사에서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제는 이러한 정서불안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다.
좋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상당히 좋은 처방일 수 있으나, 음악을 듣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다가도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현실적인 고민도 다시 되살아나게 되는 것을 보면 근본적인 처방은 아닌 것 같다. 마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술이 깸과 동시에 괴로움도 되살아나듯이. 이러한 현상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잠시 도피하여 뒤돌아 서 있었던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방법으로 때로는 종교에 귀의하여 신의 도움으로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당면한 고민을 해결하는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고민을 털어 놓는 순간에 이미 고민의 반은 해결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상담의 대상이 많이 있을 수도 있으나, 제일 첫 대상은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일 것이다. 자고로 결혼을 신성시하고 가족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가치가 사회생활 이전에 가족 구성원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한 화목한 가정에 뿌리가 있는 까닭에, 상담의 첫 대상이 가족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식의 자립을 부모님들이 강조하고, 또 젊은이들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생을 가진 홀로 서기를 한 것을 자랑하지만, 많은 경우 인간은 독립하여 홀로 서는 순간부터 자유로운 인생의 대가로 공포와 불안에 떠는 외로움에 몸서리치게 된다. 그 결과 정서는 불안해지고,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홀로 외로움에 지쳐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즐거운 삶에서 최악의 강적은 외로움이고, 이것이 만사를 그르치게 한다는 것은, 원만한 가족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정서가 불안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갓난 아이 때부터 부모와 격리된 잠자리를 강조하는 서양의 풍습보다는 환갑이 되어서도 80~90세의 노부모와 같이 살 수 있는 가족관계가 더 강조되는 것이다.
대학생활에는 가족이 가까이 있지 않으니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조언자를 가까이서 찾는 것이 차선이다. 친한 친구도 좋지만 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 그보다도 더 좋은 대상은 지도교수, 아니면 나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좋아하는 어느 교수님이든지 나의 ‘친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포항공대가 좋은 것은 바로 이러한 조언자를 찾아 나의 ‘친구’로 만드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괜한 선입견에 교수와 친구가 되는 것을 어려워할 것이 아니라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로부터 나에게 맞는 학업설계도, 진로설계도 할 수 있으니 더욱 좋지 않겠는가? 인생의 묘미는 가족·친구간의 다정한 대화에서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학생과 교수를 막론하고 두루 친구를 만들 일이다. 길지 않은 월광이 교정의 조용한 달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