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 2. 국토 대행진 참가기
2002년 여름 - 2. 국토 대행진 참가기
  • 주원철 / 화공 00
  • 승인 200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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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에 물집이, 또 한걸음에 인내가, 그리고 마지막엔 아름다운 추억이

8월5일, 작년의 설렘은 없었다. 그저 길이 있을 테니 걸으면 될 테고, 남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내 마음 한구석을 조금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나의 10일간의 특별한 여행은 시작되었다.

나에게 ‘국토대행진’은 두번째이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후미에서 뒤처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혹은 힘들어하는 사람의 가방을 들어주고, 뒷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 하지만 뒤처짐의 두려움으로 포기를 하게 되는걸 막는 것이 내가 맡은 일이었다.

8월 5일 아침 9시, 평소라면 분명 이른 시간이었을 것이다. 조금은 힘겹게 눈을 떠 조금은 무거운 가방을 매고 하나둘 부푼 기대감으로 모여들었다. 모두들 힘에 넘치고 즐거운 표정들. 그것이 우리 행군의 시작이었다.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서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연못을 돌아 학교정문을 나갈 때, 그리고 고가도로를 내려가 도로 위를 걷기 시작했을 때,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1년 전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내가 다시 이걸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조금의 두려움이 그 정체인 듯 하다.

첫 날,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두들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나 따가운 햇볕은 모두의 피부를 검게 태워버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햇빛이 그렇게 그리워질 것을…….

다음날,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는 소식을 모두 들은 터라, 우비를 준비한 채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점심시간까지는 해도 안 지치고, 비도 별로 오지 않아 모두들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식지에 도착하자마자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날 오후는 익숙지 않은 비와 싸우느라 모두들 힘들어 보였다. 결국 숙영지에 거의 도착해서 한명의 포기자가 발생했다. 뒤에서 묵묵히 가던 그 사람은 결국 숙영지를 1km정도 앞두고선 차에 올라야 했다.

그 후로도 계속 비는 왔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비로 인해 걷는 동안 대부분의 숙영지는 학교 교실이었다. 여름임에도 비가 오는 탓에 기온은 낮았고, 그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모든 아이디어가 동원되었다. 우의 입고 자기, 돗자리 말고 자기, 곤히 자는 친구 옆 등에 붙어 자기 등등. 특히 모 선배의의 우의 입고 웅크려 자는 모습은 새벽 5시,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난 우리에게 그동안의 고생을 순간 잊게 만들었다. 또한 비 오는 날 모두가 초록색의 우의를 입고서 대구의 중심가를 통과하기도 했고, 행군대장의 판단착오로 2km 정도를 돌아서 가기도 했다. 계명대에서는 한꺼번에 생긴 수박 15통을 처리하기 위해, 게임으로 수박을 먹이는 사치스러운 짓도 해보았다. 그리고 결국 수박은 남아버렸다. 롤링페이퍼에서 서로에게 쓰인 말들에 폭소를 터트리기도 했다.

우리의 일정 중 대부분인 9일을 비를 맞으면서 도착한 대전, 그곳은 참으로 편안해 보였다. 드디어 우리의 일정이 끝난다는 사실에 더욱더 힘이 나는 듯, 힘차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카이스트, 푸른 건물들 앞에서 모두들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우리의 조금은 특별한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밤이 되어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날, 모두들 조금은 달라보였다. 힘들 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던 사람들에겐 힘든 여정을 이겨낸 사람들에겐 자신감, 그리고 서로를 위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행군한 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쓰자면 하룻밤은 족히 되리라. 하지만 젖은 신발과 축축한 양말, 비와 땀에 절은 옷으로 걷는 힘겨움 속에서도 찡그림 없이 웃으며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 발에는 전부 물집이 잡혀 있고, 걸음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관절의 통증으로 절뚝거리면서, 그래서 밤마다 바늘과 실, 약통을 들고 자기 발을 치료하던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경이롭고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힘든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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