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
  • 이규철 기자
  • 승인 2008.10.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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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은 이번 세기의 과업”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가 제8회 항오강좌 연사로 초청되어 지난 2일 우리대학을 방문했다. 대중에게 과학을 전파하기 위해 저술겙??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최재천 교수는 최근 <지식의 통섭>이라는 책을 통해 과학겴菅??예술 등 여러 학문들의 만남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최재천 교수를 만나 통섭을 비롯한 여러 주제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통섭’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방식인지?

내가 생각하는 ‘통섭’이란 한마디로 다른 학문 분야가 각각의 이론체계를 꺼내놓고 범학문적인 접근을 통해 새로운 설명체계를 만든다는 거창한 개념이다.
지난 세월동안 과학은 과학대로 환원주의적인 방법을 통해 굉장한 발전을 이루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환원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과학도 스스로 좀 더 포괄적이고 넓은 시야가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인문사회학은 그 나름대로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방법론에 한계를 느껴 자연과학을 기웃거렸다. 서로 너무 달라서 합쳐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지만, 한계에 부딪힌 지금 새로운 방법을 찾을 때가 왔다.
일례를 들어, 내 연구실에 ‘의생학 연구센터’라는 곳이 있다. ‘의생학’이란 자연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자연계의 섭리까지 우리 인간에게 적용시켜보자는 취지의 학문이다. 실제로 현재 세 개의 기업들과 개미의 집단사회의 특성을 기업사회에 적용시키는 연구를 하는 단계에 있다. 이것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통섭’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 ‘과학의 대중화’ 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한다면?

과학은 분명 어려운 것임에도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모든 과학적 설명을 쉽게 풀어서 하다 보니 과학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를 주장한 것이다. ‘대중의 과학화’는 이 나라를 과학입국으로 만들고 이 나라를 과학적 사고, 합리적 사고에 입각한 합리적인 사회로 만드는 방법이다. 전 국민이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으면 이 나라가 얼마나 합리적이겠는가. 이 때 ‘과학의 대중화’는 ‘대중의 과학화’란 최종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 ‘과학적인 사고’란 측면에서 우리 국민들의 수준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 쯤 된다고 보는지?

100점 만점에 40점 쯤 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과학에 대한 지식은 많이 늘었다. 황우석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전 세계에서 우리 국민보다 줄기세포에 대해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 있을까? 이번 광우병 파동 때도 마찬가지였다. 진통을 겪으면서 국민들이 많이 공부하고 “이놈의 과학 왜 이리 말썽이냐”, “과학을 떠나선 살 수 없구나”라는 것까지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사고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과학적인 면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미국소 반대 촛불집회 때,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나가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할 자신이 없었다. 잘못 말하면 바로 공격을 당하니까. 그 곳은 합리적인 이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감성만 남은 장소 같았다. 우리 국민들이 좀 더 과학적으로, 좀 더 합리적으로 사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인문학과 과학은 어떤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이번 세기동안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진정한 만남을 이루어야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적어도 양쪽 분야의 사람들이 이제 서로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 시대가 왔다. 21세기는 하나의 학문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일례로 단순한 토목공사인 줄 알았던 대운하의 경우 생물학자와 환경학자가 생태계와 자연환경 파괴 문제로 반대했고, 경제학자가 경제적인 문제로 반대했고, 심지어는 미학자가 국토의 미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인문학적인 소양을 충분히 갖춘 과학도와 지금처럼 오로지 과학만을 공부해 온 과학도 중에서 누가 더 잘할지 장담은 못하지만, 21세기엔 아마도 문제를 좀 더 포괄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대부분의 경우에 더 탁월한 성과를 내지 않을까?


- 한국과학의 미래를 책임질 포스테키안들이 가져야할 인문학에 대한 자세는?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이과로 나누어 한쪽 분야만 가르치는 현행 교육체제부터 바꾸어야 한다. 고등학교 때 그런 교육을 받다가 지금 나 같은 사람이 나타나 “인문학도 같이 배워야 한다”라고 주장하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대학시절에는 최대한 많이 방황해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여기저기 기웃거려 봐야한다. 물론 그 시간이 아까울 순 있지만, 남의 학문을 기웃거리다보면 어느 순간 내 학문이 보인다. 나도 경험한 바이고, 주변의 분들도 많이 동의해주신 부분이다. 다른 학문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다른 각도로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학문의 깊이가 더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길게 내다보자. “아! 지금 이거하기도 바쁜데”하고 내 것만 하기보단 여기저기 곁눈질을 하는 것이 나중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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