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사회] 동거에도 좋은 점이 있다구요?
[책과사회] 동거에도 좋은 점이 있다구요?
  • 문재석 기자
  • 승인 2002.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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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거할까요?> (도서출판 코드, 함인희 외)

동거인구 약 80만쌍, 인터넷 동거 사이트 15개의 가입회원 수 10만명. 이것은 먼 유럽이나 미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방예의지국, 남녀칠세 부동석의 나라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불륜을 저지르거나 혹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식으로 바라보기 일쑤이고, 어떤 언론에서는 일부 선정적인 취재원의 말만을 인용해 "~카더라"하는 식의 기사를 내 보냄으로 해서 사람들이 동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데 일조해왔다.

하지만 요즘 동거하는 이들의 모습은 사회에서 보여지는 그런 모습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한쪽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지는 구속력에 거부하기 위해 혹은 조금 더 신중하게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동거를 선택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결혼은 크게 생각하지 않은 채 살아가거나 연애를 하는 데에 있어서 그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혹은 혼자 방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거를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동거하는 사람들에게 '동거=성(性)'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동거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동거의 작은 부분일 뿐이지 성관계를 위한 동거는 그 비율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동거가 과연 부도덕하고 문제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동거가 소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동거가 그런 문제점을 가진 만큼 결혼이라는 법적인 구속력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차이라면 결혼은 제도권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이고, 동거는 아직 제도권에서 통제하지 못하는 문제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동거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OECD 가입국 중 3위, 아시아 1위라는 높은 이혼율이다. 이로 인해 결혼의 개념이, 가족이라는 개념이 무너졌고, 사회적으로 구속받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택하기 보다는 편하게 동거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어 가면서 '살아보고 결혼하자'는 분위기로 바뀌어 갔고 예비 결혼을 하는 생각으로 동거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여권 신장 또한 큰 이유로 작용을 했다. 한국사회에서의 결혼은 많은 경우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정조 혹은 순결을 요구하고 있고, 또 남성에게 유리하게끔 법률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차라리 스스로 계약을 하고 동거를 선택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도 무시할 수 없다. 경제적, 심리적인 문제로 동거를 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을 묶어 준 것이 바로 이 인터넷이었다. 아이러브동거, 비다노블레, 동거닷컴 등 국내에는 수많은 동거 사이트들이 성업 중이며, 주 사이트의 회원수는 무려 10여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 동거할까요?>는 이러한 한국 문화에 올바른 동거를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본 동거, 사회학자로서 본 동거, 당사자로서 본 동거 등 동거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올바른 동거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 심리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하며, 법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 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사실 그 동안 동거라는 개념이 음성적으로만 존재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법적인 안전장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혼의 전단계로서의 동거의 경우는 사실혼의 관계로 어느 정도의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이것도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구제 수준이지, 충분한 보호를 받는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또 사회적인 인식에는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이며, 외국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동거를 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동거 그 자체에 대한 '옳다', '그르다'의 가치판단보다는, 올바른 동거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조금 더 무게 중심을 실어주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마라톤은 하루 아침에 누구나 잘 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몇 개월 혹은 몇 년 동안 꾸준한 훈련을 쌓고 마라톤에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한 후에야 좋은 경기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동거도 그러한 준비단계의 하나로 봐 줄 수 있을 만큼, 이 사회가 성숙한 것일까 아니면 타락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