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우리들의 천국’을 위해서
[독자투고] ‘우리들의 천국’을 위해서
  • 김주영 / 물리 04
  • 승인 2008.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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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청준 씨가 지난 7월 31일 작고했다. 이청준 씨는 후배들에게 문학은 고독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 이전에도 당신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있었다며 위로를 건네는 것이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에 부임한 원장과 그곳 환자들이 겪었던 갈등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세하게 묘사했던 그 작품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화두가 되며 희망을 전달해 주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양 측에 있는 사람들이, 리더와 이를 따라야 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함께 낙토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당신들의 천국’은 권력의 주체인 원장이 만들고자 하는 섬의 모습을 빗댄 말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섬에는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실제 인물 조창원 원장(작중 조백헌 원장)이 부임했던 적이 있었다. 소설에서 조 원장은 환자들이 섬 탈출을 시도하는 등 생활에 만족스러워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가 좋은 동기에서 일을 시작했음에도 그 과정에서, 원장이 자신의 명예를 위해 환자들을 이용하는 게 아니냐며 경계하는 이상욱 과장, 황희백 노인과 갈등하게 되며, 결국 원장으로서는 섬을 떠나게 된다.

리더의 결정에 이를 따라야 하는 사람들이 반발을 하는 예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여름을 뜨겁게 했던 광우병 파동,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를 타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의 한 단계로 미국산 쇠고기를 당시 기준보다 현저히 완화된 조건으로 수입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식품에 대한 수입을 결정하여, 국민의 입장을 돌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쇠고기에 대해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고 한우를 홍보하여, 비싼 한우를 먹을 수 있는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괴리를 강화했다. 다시 말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은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국민들을 위한 천국’이 아닌 ‘대통령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오해를 심어줄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당신들의 천국’에는 섬에서 여러 원장들을 겪었고 그들을 불신했던 이상욱 과장과 황희백 장로, 새로 부임해 온 조백헌 원장, 그리고 이정태 기자가 어떻게 하면 섬을 낙토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소록도는 이미 아름다운 풍광, 잘 정비된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조 원장은 환자들이 정상인을 질투한다는 것, 섬 내부에 정상인들과 환자들 간의 격리가 지나치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등 문제점을 발견한다. 조 원장은 이를 개선키 위해 노력하고, 그 외에도 여러 사업을 벌인다.
그러나 이 과장은 조 원장이 처한 입장이 섬과 운명을 함께 하는 자신과 환자들의 입장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조 원장은 환자들의 삶과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선한 의지만으로 일을 추진했다. 그리고 결국은 섬사람들이 자신을 불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섬을 떠났다. 황 장로는 이런 조 원장에게 마음을 열었고, 조 원장 또한, 환자이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욕구를 가지고 있어 한과 고통이 많았던 섬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환자들과 조 원장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음에도 왜 조백헌 원장은 떠나야 했으며, 5년 후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일까. 이 과장은 편지에서 조 원장이 섬사람들과 공동운명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병원 원장의 자리는 섬사람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참여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섬사람들은 원장을 선택하고 또 물러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원장의 생각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변화를 준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언젠가 섬을 떠날 원장이 아니라 나환자들이었기 때문에 섬사람들은 원장을 타자로서 여기게 되고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한 후 조백헌은 민간인의 입장으로 섬과 운명을 함께하기 위해 돌아온다. 그러나 그에게는 섬을 변화시킬 실천적 힘이 없었다. “운명을 같이하려는 작정이 있는 다음에는 내게 그 원장의 권능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그 허심탄회한 힘의 질서 속에서 섬의 자유와 사랑이 행해져 나가야만 했었어요. 하지만 난 이미 이 섬 병원의 원장이 아니었어요.”

조백헌 원장은 소록도를 낙토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것은 계속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정상인 서미연과 음성보균자 윤해원의 결혼이, 문둥이들의 천국이 아닌 정상인들의 사회와 섬을 구분 짓지 않는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어가려는 섬사람들의 자발적 의지를 돋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후세를 사는 사람들은 낙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보았던 조창원 원장이 계시고, 그의 경험을 자세히 기록·각색하셨던 이청준 소설가가 있어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사회에 행복감을 느끼는지, 아니면 그냥 주어진 자유대로 만족스럽지 못하면 못한 대로 그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청준 씨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가라고 화두를 던진다. 끝으로 소설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확신이 없는 필자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 우찬제 교수(서강대)의 <당신들의 천국> 해설 <힘의 정치학과 타자의 윤리학>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