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가] 영화 ‘집으로...’ (이정향 감독, 2002)
[나도 평론가] 영화 ‘집으로...’ (이정향 감독, 2002)
  • 이재윤 / 생명 93
  • 승인 200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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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리움 저편의 척박한 현실적 삶에 대한 외면
가장 좋은 기쁨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 오라기,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이성부,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 고 있나니’ 중)

외할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다. ‘집으로...’를 보러 극장을 찾은 중장년의 관객은 이 영화의 외할머니(김을분 분)로부터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릴테고, 젊은 관객도 마치 ‘어머니’의 원형을 어딘가에 모셔두고 먼길을 떠나 온 듯한 그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외할머니 뿐만 아니다. 특별하진 않지만 어딘지 눈에 익은 풍광과 시간을 거스른 듯한 시골마을 사람들의 순박함은, 있지도 않은 고향마을에 대한 향수와 함께 잃어버린 소중한 어떤 것에 대한 애틋함을 자아낸다. 이 모든 것들의 한 이름인 ‘외할머니 혹은 어머니’는, 그래서 생래적인 그리움의 이름이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여자다. 어머니와 감독 자신이 여자인 것처럼. 남성인 이성부는 ‘어머니가 된 여자는 어머니(의 마음)를 갖추고 있다’는 기묘한 동어반복으로 어머니가 된 아내의 변화에 그저 감동만 받으면 될 뿐이다. 하지만 동북아의 이 작은 나라에서 어머니의 삶을 살았거나 혹은 그 삶을 지켜본 여성(감독 자신을 포함해서)이라면, ‘어머니’라는 이름이 갖는 깊은 울림에 대해 회한의 감정뿐만 아니라 어떤 ‘분노’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영화에서는 예사로이 생략되었지만 평탄하지 않았음에 분명하고, 무엇보다 한 집안과 자식을 위해 ‘김을분’이라는 자신의 존재감을 ‘걸레처럼 뭉크러’버렸을 (최영미) 한 여성으로서의 일생을 생각해 본다면, ‘집으로...’가 ‘여성’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영화로서는 지나치게 편협하고 안이하게만 보인다. 더욱이 그 작은 나라에서 손에 꼽을 만큼 희귀한 ‘여성’상업감독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자신의 외할머니에게 바치는 영화임에랴! 이건 마치 농촌현실의 비참함은 외면한 채 그 여유로움과 인간적인 일상만을 묘사하는 ‘전원일기’의 치사함이나, 우정의 덫에 갇혀 연고주의에 대한 반윤리적 찬가를 불러대는 ‘친구’의 무책임을 보는 듯하다.

물론 한 여성의 개인사와 관련된 애틋한 기억까지 페미니즘의 전장에 볼모로 나서야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그러기에 적절한 계제가 아니다. 가정의 달이 가까워오는 시점에서 ‘집으로...’가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제스쳐는 분명해 보인다. 모든 연령층이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가장 보편적인 정서를 자극할 것. 외할머니 혹은 어머니가 연상시키는 무한정하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 번잡하고 고달픈 일상의 도시인들이 언제든 다시 돌아가 위안받을 수 있는 자연과 같은 관대함을 보여줄 것. 결국 ‘외할머니 혹은 어머니’라는 이름의 낙원을 만들 것. 이 목표를 위해 감독은 이 영화의 제작의도(‘외할머니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의 순수성과 어울리지 않는 계산된 작위성과 진부함을 늘어놓는다.

요컨대 이 영화의 컨셉만으로도 이 영화에 나올만한 에피소드들과 결말이 그려지고 실제로 그런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김을분’은 도대체 누구의 외할머니란 말인가? 우리들 중 누구의 외할머니가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예외적으로’ 외진 산골마을에 살고 계시며 헤진 고무신을 기워신을 만큼 ‘예외적으로’ 빈궁한 삶을 살아 자손들을 애처럽게 만드시는가? ‘집으로...’의 외할머니는 우리 모두의 외할머니인 동시에 누구의 외할머니도 아니며, ‘외할머니 혹은 어머니’라는 기표 아래 관객의 퇴행과 자기연민의 욕망이 꿈틀대는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살인광과 깡패, 흡혈귀와 전쟁광이 휘젓고 다니는 예의 그 영화판에서 ‘집으로...’같이 소박하고 차분한 영화가 주는 감동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런 맥락에서 관객들이 보기 원하는 순한 영화를 입맛에 맞게 만들어내는 감독의 감각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할테다. 단, 감독 임순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독 이정향을 평가하는 데 있어 그녀가 여성임을 지나치게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또 감독의 두 편의 영화가 보이는 순수한 감성에 지나친 호의를 갖는 것도 위험하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 올해의 가장 좋은 여성영화로 뽑힌 98년, 임상수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최악의 여성영화 중 한 편으로 뽑혔다. 사랑에 목맨 공상녀의 사랑찾기라는 ‘동화’가, 동시대 여성의 섹스관을 노골적으로 다룬 ‘르뽀’보다 더 좋은 영화라고 뽑는 그 나이브(naive)함을 조심하자는 말이다.

가족 나들이로 이 영화를 본 어느 꼬마가, 일생의 고단 때문에 다소 거친 심성을 갖게 된 자신의 외할머니가 ‘집으로...’의 외할머니처럼 다감하지 못함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엄마에게도 자식에 대한 사랑말고도 엄마 자신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