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달리기와 나’
[독자투고] ‘달리기와 나’
  • 이민규 / 화공 96
  • 승인 2002.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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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경주 벚꽃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필자와 화공과 학생들
‘ 달리는 사람만이 누리는 흠뻑 흘린 땀방울이 주는 기쁨’

달린다는 것은 매우 단순한 동작이다. 화려한 장식도 필요 없고 단지 가벼운 복장과 운동화 한 켤레이면 충분하며, 팔을 앞뒤로 흔들고 발을 지속적으로 내딛기만 하면 된다. 속도는 아주 빠를 필요가 없고, 옆 사람과 대화할 정도이면 된다. 사람들은 달리는 행위를 30분, 1시간, 심지어 4시간씩 반복적으로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 심심해서 어떻게 달리기를 하니? 별로 재밌지도 않는 걸! " 틀린말은 아니다. 달리기, 특히 마라톤은 매우 심심한 운동이다.

하지만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은 심심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즐기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와의 명상이다. 1시간 가까이 뛰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처음에 얼마 동안은 주위의 경치에 눈이 집중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것은 보이지 않으며 단지 뛰고 있는 자기 자신만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에 대한 반성이 이어지며, 거친 숨소리와 함께 즐기는 자기와의 대화 속에 파묻히게 된다.

마라톤은 요령이 필요없으며, 단지 꾸준하게 연습한 양에 비례해서 실력이 향상되는 운동이다. 평소 연습을 하나도 하지 않다가 경기 당일 풀코스를 완주하기는 쉽지가 않으며, 다만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마라톤을 시작한 사람들이 꿈꾸는 제일의 목표는 풀코스 완주이다. 나의 경우, 지난 2001년 10월 21일 55회 춘천 마라톤 풀코스 도전은 내 인생에 큰 의미였다. 37Km를 지났을 때, 온 몸에 힘이 다 소진되고 너무 괴로워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 경험은 ' 내가 이것 밖에 안되었나? 바보같은녀석 ' 이라는 자각을 심어 주었다. 그 날 결국, 4시간 11분의 기록으로 완주하기는 했지만 개인적 목표인 sub4(4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를 실패했기에 재도전에 대한 의욕은 들끓었다.

지난 3월 17일, 서울 동아 마라톤 풀코스에 재도전했다. (1만 2천 여명과 함께 서울 도심을 달리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이번 도전은 막연했던 첫 도전과는 달리, 즐거운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으며 특히 하프 지점을 통과한 후 잠실대교를 지나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35Km 지점 이후 온 몸의 글리코겐 고갈로 체력이 바닥나기는 했지만, 좋은 기분이 계속 이어져서 버틸 수 있었다. 마지막 잠실 주경기장을 통과했고, 결국 3시간 52분 12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인 sub4를 달성해서 너무나 기뻤고, 나의 잠재력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날 나는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이 정상인과 끈으로 연결된 채 풀코스를 도전해서 4시간 10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리고 70세가 넘은 듯한 할아버지가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미소를 지으면서 끝까지 달렸다. 결국, 달리는 주자 모두는 자기만의 사연을 가슴에 품은 채 도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완주 후 그는 자신의 도전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행복해한다. 비록,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짜릿한 완주의 매력을 맛보기 위해서 그 어려운 도전을 하는 것이다.

4월 6일, 제 11회 경주 벚꽃 마라톤이 열린 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당일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화공과 재학생 22명(풀코스 2명, 하프코스 6명, 10Km 2명, 5Km 12명)이 무사히 모두 완주했다. 몇 번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과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단체로 신청을 했으며 과 차원에서 버스도 지원받아서 편하게 경주에 갈 수 있었다. 그 날, 강한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참가한 화공과 사람들은 달리기를 위해 경주로 찾아온 남녀노소 주자들과 함께 자신의 코스를 달리면서 많은 걸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마라톤은 결코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운동이다. " 파이팅! 힘내세요! " 라며 달리는 주자를 위해서 격려를 할 수 있지만, 자신이 대신해서 달릴 수는 없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비유하는데, 그것은 딱 맞는 말이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없으며 주위에서 많은 조언, 충고를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일 뿐이다.

건강을 위한 달리기의 무대인 마라톤은 시합이 아니라 오히려 신나는 축제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허약한’ 포항공대인의 이미지가 나는 너무 싫다. 자기 자신의 건강을 소중히 여기며 가꾸는 계기도 되는 달리기의 매력을 다른 사람들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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