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거는 기대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거는 기대
  • 고인수 / 물리학과 교수
  • 승인 2008.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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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를 향한 과학자들의 욕망 - LHC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우주는 약 137억년 전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대폭발(Big Bang)로부터 시작하였다. 책상만한 크기의 공간에서 일어난 대폭발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속하게 팽창하였고, 온도 역시 빠르게 내려갔다. 대폭발 후 1조분의 1초가 지났을 때까지는 우주의 가장 기초적인 원소인 쿼크(quark)와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글루온(gluon), 그리고 전자와 중성미자(neutrino)들로 뒤섞인 상태였다. 여기서 언급한 소립자들은 표준모형이라는 이론에 근거한 원소들로, 20세기 물리학이 이룬 성과 중의 하나이다.

이후 10만분의 1초까지의 시간 동안 우주는 더욱 급격하게 식게 된다. 그래도 이때의 온도는 1조℃이니 폭발 순간의 온도는 얼마나 높았을까? (1조×1조×1억[1032]℃라고 짐작한다.) 이렇게 식은(?) 쿼크들은 서로 3개씩 짝을 이루면서 양성자와 중성자로 변한다. 이들은 다시 서로 결합하여 원자핵을 이룬다. 이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대략 3분이다. 유명한 물리학자인 와인버그가 쓴 책의 제목인 <최초의 3분(The first three minutes)>은 바로 이를 의미한다.

이렇게 형성된 원자핵은 다시 주위의 전자와 결합하여 원자가 되는데, 이때 만들어진 원자는 거의 대부분 수소와 헬륨이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약 38만년이 걸렸으며, 수소와 헬륨은 지금도 우주 내에서 가장 흔한 원소이다. 다시 약 2억년에 걸쳐 중력에 의해 이들 수소와 헬륨이 뭉쳐지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별들이 탄생한다. 태양보다 훨씬 크게 태어난 별은 수명이 매우 짧아(?) 수천만년 정도이다. 늙은 별의 내부는 무거운 원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폭발로 최후를 마치게 된다. 초신성이 바로 이런 종류이다. 이렇게 흩어진 잔해들로부터 다시 별이 태어나는 윤회가 반복된다. 그 중에서 일부가 미처 별에 흡수되지 않은 채 굳어지면 바로 행성이 된다. 그 중에 지구도 있었다.

과학자들의 욕망 중의 하나는 우주가 태어난 최초의 순간을 지구상에서 재현해 보려는 것이다. 이런 욕망을 해결해 주는 장치가 바로 가속기이다. 1932년 미국의 로렌스가 어른 손 한 뼘 크기의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이래 가속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유럽은 두 번의 전쟁을 자기 땅에서 치른 이후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유럽을 통일시키고자 하는 원대한 희망 하에 1954년 스위스 제네바에 CERN을 설립하였다. 이후 이곳은 가속기와 입자물리학 분야의 메카가 된다.

앞에서 언급한 표준모형이 예측한 소립자인 W/Z입자를 500GeV의 Super Proton Synchrotron(이하 SPS)라는 가속기로 1983년에 발견하였다. 이와 동시에 1980년대 스위스와 프랑스의 두 나라에 걸치는 규모인 둘레 27km의 200GeV급 Large Electron Positron Collider(이하 LEP)라는 가속기를 지하 100m에 건설하였다.

2000년까지 11년 동안 가동된 LEP는 성능의 한계에 다다르게 되고, 다시 CERN은 LHC라는 새로운 가속기를 LEP를 철거한 터널에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상온에서 작동되는 LEP와는 다르게 LHC는 초전도체 전자석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같은 터널에서 보다 높은 에너지의 입자를 가속시키기 위해서 요구되는 자기장의 크기가 LEP보다 8배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새 가속기를 헌 집에 지은 이유는 새로 터널을 건설할 때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었다.

LHC는 둘레 26.6km에 이르는 원형 가속기이며, 여기서 가속되는 입자는 양성자이다. 충돌형 가속기이므로 두 개의 양성자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속되다가 정해진 순간 서로를 향해 돌진하여 충돌한다. 충돌은 검출기(detector)라는 장치 내에서 일어난다. 전자 대신 양성자를 LHC에서 가속하는 이유는 바로 방사광 때문이다. 전하를 가진 입자가 자기장에 의해 방향을 바꿀 때 진행 방향으로 강한 방사광을 방출한다.

포항방사광가속기(PLS)는 이런 방사광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에게 제공하여 물질의 특성을 연구하거나 단백질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소립자를 연구하는 경우 방사광의 발생은 가속된 입자의 에너지 손실을 초래하고, 방출된 방사광이 진공 용기를 가열시키므로 이를 냉각시켜야 하는 문제점을 야기한다.

방사광의 발생은 가속되는 입자의 질량의 4승에 반비례하므로, 전자 대신 약 2천배나 무거운 양성자를 이용하면 방사광 발생을 거의 1조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소립자 물리학을 연구하는 대규모 원형 가속기는 모두 양성자를 가속시킨다. 다만 전자의 경우 내부 구조가 없으므로 충돌의 결과를 해석하기가 쉬우나, 양성자의 경우 실제로 3개의 쿼크와 다른 3개의 쿼크가 동시에 충돌하게 되므로 실험 결과의 해석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LHC에서 최대 가속 시 양성자의 에너지는 7TeV이다. PLS의 전자가 2.5GeV이므로 LHC 양성자는 포항의 경우보다 약 3,000배 정도 에너지가 더 크다. 모기 한 마리가 날아다닐 때의 운동에너지가 대략 1TeV이므로, LHC 양성자는 모기보다도 큰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문제의 핵심은 양성자의 크기이다. 두 양성자가 서로 충돌하는 순간 엄청나게 작은 공간은 순식간에 태양 중심보다 십만 배나 뜨겁게 된다. 이는 대폭발 후 1조분의 1초에 해당하는 순간이다. 이때 양성자 내부의 쿼크들이 순간적으로 자유롭게 되어 우주 탄생의 순간을 지구상에서 재현하게 된다.

실제로 LHC 내부에서는 매초 6억번의 양성자 충돌이 일어난다. CMS, ALICE, ATLAS, LHCb라는 4개의 거대한 검출기에서 발생하는 실험 데이터의 양은 매년 DVD 10만장 분량이다. 이런 엄청난 양의 정보 처리는 GRID라는 체계 하에서 전 세계의 수천명의 과학자들의 몫이다. CERN은 이미 www로 시작되는 사이버 공간을 창조한 바 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새로운 것이 창조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도 과학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힉스 입자의 발견일 것이다. 표준모형이 제안되었을 때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힘을 매개하는 입자의 질량이 0이라는 점이다. 물론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입자인 빛은 질량이 없지만,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입자인 W/Z는 질량이 있다. 그것도 매우 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국 에딘버러 대학의 힉스(Higgs) 교수와 그 동료들은 힉스 장(field)과 힉스 중간자(boson)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에 따르면 우주가 처음 태어난 순간 모든 입자는 질량이 없다가 우주가 어느 정도 식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 힉스 장이 생기고, 어떤 입자든지 힉스 장과 닿으면 힉스 중간자가 이 입자에 질량을 주게 된다. 입자의 질량이 크고 작은 차이는 힉스 장과 얼마만큼 상호작용을 하였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힉스 장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입자는 당연히 질량이 없다.

표준모형의 문제점은 해결하였으나, 이 이론의 결정적인 약점은 아직 힉스 중간자를 찾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심지어 힉스 중간자의 질량이 얼마인지 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LEP 또는 다른 가속기 실험 결과와 이런저런 가설이 예측하는 바가 LHC 에너지에서 힉스가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줄 뿐이다.

LHC가 힉스 입자를 찾으면 표준모형은 더욱 그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15년 정도 LHC를 가동해도 힉스를 찾지 못하였다면 LHC는 엄청난 자금과 자원만 낭비한 것일까? 결코 아니다. 이런 경우가 만일 온다면 이론물리학자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 될 것이다. 물질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이 탄생할 기회가 활짝 열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반전을 기대하는 물리학자들도 있다는 점이 물리학에 한층 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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