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어학연수기
호주 어학연수기
  • 신주희 / 무학과1
  • 승인 2002.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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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주희 / 무학과1
5주 동안의 호주 어학 연수라니 정말 좋겠다. 그것도 학교에서 보내주고 ‘공짜’라니…. 주변 사람들의 많은 부러움을 샀던 나는 포항공대 수시전형에 합격한 40명의 고등학교 조기졸업생 중 한 명으로 입학에 따른 특전인 이번 어학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다. 1월 6일 20명은 멜버른으로, 나를 포함한 20명은 시드니로 각각 출발했다.

시드니는 후덥지근했다. 우리 일행은 모두 피곤했지만 곧바로 어학 연수원인 University of New South Wales에 도착해 필기 시험과 인터뷰를 가졌다. 시험지가 눈앞에서 빙빙 돌았지만 정신은 비교적 맑아서 다행이었다.

UNSW Institute of Languages에는 6종류의 어학 코스가 있는데 우리 일행은 모두 일반영어 과정을 듣기로 계획했었지만 나는 ‘Business English’ 를 들어보기로 했다. 폭 넓게 어휘력을 넓히고, 뉴스나 잡지도 많이 접해 볼 겸 FCBC(First Certificate in Business Communication)을 택했다.

첫 수업을 듣는 날, 아담한 교실에 들어와 앉아보니, 20명 가량의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이라고는 하지만 UNSW의 예비 대학생들부터 30대까지 꽤나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있었다. 일본 사람이 7명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 사람은 3명이었다. 그 밖에 태국, 중국, 아르헨티나, 콜럼비아 사람들도 있었다. 수업은 주당 5일 25시간이었는데 그 중 4시간은 자율학습실(ILC; Independent Learning Class)에서, 1시간은 어학실에서, 1시간은 컴퓨터실에서, 나머지는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 교재로 전화걸기, 회의하기, 정보 주고받기 등 여러 상황에서의 표현, 어휘를 공부했다. 일주일에 2시간은 공적인 편지를 쓰는 수업이었다.

영어 편지는 우리 나라 편지와 많이 달랐다. 미국식 편지와 영국식 편지가 서로 달랐고, 전체적인 레이아웃에도 여러 가지 규칙이 있으며, 또 공식적인 편지에 쓰는 정중한 표현들도 따로 있었다. 사실, 영어하면 미국이라는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나라가 떠올랐는데, 알고 보니 영어에는 사용 규칙도 많을 뿐 아니라, 표현들도 매우 정중했다. 미디어 스터디 시간에는 뉴스를 듣고 신문 또는 잡지 기사를 정독했다. 수업 시간 틈틈이 문법과 숙어, 단어를 배웠다. 매일 역할극을 해가며 실제적으로 말하며 표현을 익히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 시간에는 파트너끼리 미팅도 해보고, 전화도 해보는 시간이었는데, 재미도 있었고 서로 친해지기도 한 유익한 시간이었다.

주당 1시간씩 어학실에서 발음 공부를 할 때는 마이크가 달린 헤드폰을 꽂고 자신의 발음을 직접 들을 수도 녹음할 수도 있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틈틈이 선생님께서 학생들의 발음을 지도해 주었다. 내가 확신하고 있었던 아주 쉬운 발음들이 여태까지 잘못 발음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매주 월요일에는 프리젠테이션이 있었는데 출신 나라를 소개하거나 잘 알고 있는 회사를 여러 가지 자료를 곁들여 가며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2002 월드컵 개최지인 우리 나라를 소개했는데 한국 자랑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 같아 매우 아쉬웠다.

수업이 끝나면 다른 포스텍 친구들과 함께 관광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길도 모르고 버스 노선에도 익숙하지 않아 늦게 까지 걸어서 다녀야 했지만 재빨리 시드니 지리를 익혀갔다. AMP Tower를 비롯한 높은 빌딩들을 한 편에 두고 앵무새들이 날아다니는 Royal Botanic Gardens의 한 편에 서면 하버 브리지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하우스를 적당한 발치에서 함께 볼 수 있는데, 특히 해질녘에 보면 정말 멋지다. 바로 이 광경을 볼 수 있는 자리에서 1,2월에는 야외 영화관이 열리는데 특히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야외 영화인만큼 정식으로 돈을 내고 들어가지 않아도 자리만 잘 잡으면 영화를 꽤 잘 볼 수 있었다. 나도 매진으로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이란 영화를 봤다. 오페라를 보고 싶었지만 최소 80달러를 내야 했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만족하기로 했다.

거리에 즐비한 HYUNDAI 자동차와 LG 가전제품, 내가 머물렀던 홈스테이의 SAMSUNG 비디오 플레이어를 보면서 가슴 뿌듯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인 기업인들은 한 제품이라도 더 팔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세계에서 몇 되지 않는 오래된 역사를 가졌고,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많은 세계 최초의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상한 사실은 지금까지 나도 그렇고 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한국을 관광지로서는 은근히 자신없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 포스텍 일행은 시드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는 Blue Mountains에 다녀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설악산이 더 멋있다는데 동의했다.

호주에서 머무르면서 또 한 가지 큰 경험이 되었던 것은 홈스테이였다. 나에게 타월을 적셨다고 화를 내시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몹시 서운함을 느끼면서 유학생들이 겪는 외로움과 향수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문득문득 서러움을 느끼면서 고등학교 때 유학 가고 싶다고 했던 때를 떠올리자 내가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특히 외국인으로서 와 있을 때에는 먼저 이해하고 한 발 물러서야 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배웠다.

대학 입학 전에 이렇게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준 포항공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5주라는 시간동안 영어라는 지식 뿐만이 아닌,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폭넓은 배움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자칫하면 무기력하게 보낼 수 있는 대학 입학 전의 마지막 겨울방학이었는데 참으로 멋진 경험이었다. 현지인들의 문화를 이해해가며 생활한 덕택에 더욱 효과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 어학 연수를 통해 한국의 포스테키안 뿐만 아니라 세계속의 포스테키안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고 리처드 바크가 말했듯이 좀 더 넓은 시야와 높은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는 대학생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도 어학연수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