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포스테키안을 상상하는 즐거움
책 읽는 포스테키안을 상상하는 즐거움
  • 김민정 / 인문 교수
  • 승인 2008.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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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 신입생들에게 대학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다행히도’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는 대답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학한 지 한 학기도 되기 전에 그런 소박한 꿈을 쉽게 포기해 버린다. 요즘 대학생들의 독서량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대학 학생들의 독서량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독서량만이 아니다. 멀티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인 만큼 책이라는 매체 자체가 이미 그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린 듯하다. 책을 보면 몇 줄 읽기도 전에 잡념이 떠올라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는 학생들을 설득하여 다소 긴 글을 읽어 보게 하면 지레 겁을 먹곤 하니 말이다.

학생들이 책을 읽기 힘든 이유를 물론 모르는 건 아니다. ‘숙제중심대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니, 우리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양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바빠서 책을 읽을 새가 없다는 그들에게 넌지시 한마디 덧붙인다. “아무리 바빠도 배가 고프면 끼니를 거를 수 없듯이, 한창 지적 욕구가 충만할 때 책을 멀리하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된 단다.”

전공 지식만으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은 거의 없다. 미래의 과학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학문 연구에 필요한 지적 능력을 갖추어야 할 우리 학생들에게, 책을 읽는 일이 다른 어떤 일상사에 밀려 포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선 책읽기를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하루 중 자신의 시간을 쪼개거나 짬이 나는 얼마간의 시간을 활용해서라도 스스로 책으로부터 멀어지면 안 된다. 책 읽을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겠다는 생각은 사실상 책 읽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대학 캠퍼스 여기저기서 책을 읽는 학생들의 모습은 참 낯익은 풍경이었다. 도서관이나 기숙사에서뿐만 아니라, 건물 밖 벤치에 앉아서, 잔디밭에 누워서 학생들은 책을 읽었고, 캠퍼스를 거닐면서도 책 삼매경에 빠진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등하교 길에 꼭 한두 번씩 습관처럼 들르곤 했던 학교 앞 서점은 당시 대학생들에게 그저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약속 장소이자, 데이트 공간이자, 진지한 토론의 장이기도 했다.

누구도 읽으라고 강요한 적 없는 책을 그땐 왜 그리 열심히 읽었던 것일까? 돌이켜 보면, 책은 단순히 지식의 양을 늘려주는 수단이 아니었다. 가려진 세상의 진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의 그 가슴 벅찬 환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어두운 동굴에 갇혀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눈부신 햇빛을 봤을 때 느낄 법한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알았고, 그렇게 알게 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런 삶의 고단함마저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 것도 결국 책이었다.

시간이 나기를 기다려 하루 이틀 책 읽기를 미룰 때 결국 책을 읽지 않는 생활은 우리 학생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릴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도서관에 가서 자기가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이라도 대출하여 기숙사 책상의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꽂아 두는 것부터 우리 한번 시작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시간을 ‘만들어’ 책 읽기를 시도해 보자. 우리 학교 캠퍼스 여기저기서 책 읽는 학생들을 볼 수 있고, 또 그런 학생들이 서너 명씩 모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 그런 모습을 상상만 해도 참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