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평론가] 정경화의 비발디 사계(Four Sesons)(EMI, 2001)
[나도평론가] 정경화의 비발디 사계(Four Sesons)(EMI, 2001)
  • 안지수 / 신소재 2
  • 승인 2002.02.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정경화의 비발디 사계(Four Sesons)(EMI, 2001)
정경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이며, 정 Trio 멤버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비발디의 ‘사계’를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연주되어 왔으며, 끊임없이 편곡되고 또 연주되는 곡이다. 혹시, 사계를 듣고, 이것이 어느 계절의 몇 악장인지까지는 모르더라도 평소에 자주 듣고 매우 친숙한 곡임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한 유명한 곡이 담긴 음반을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피상적인 친숙함 속에 숨어있는 참된 가치를 알고 느껴보자는데 있다.

나도 바이올린을 하며, 교내의 챔버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몸을 담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 보다는 클래식 음악에 관하여서는, 조금은 더 유식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막상 평소에 비발디의 ‘사계’를 듣고, 이것이 어떠한 방법으로 사계절을 묘사하고 있으며, 왜 그렇게 유명하고 가치가 있었는지는 몰랐었다. 단지 친숙한 멜로디였고, 자라오면서 음악시간에 배웠으니까 그렇게 선입관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정경화의 앨범을 접하면서 새로운 각도로 다시 비발디의 ‘사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정경화가 연주한 이 음반은 CD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장은 계절, 악장별 연주만 녹음이 되어 있고, 두번째 장은 계절별 악장에 따른 정경화의 해설이 덧붙여있다.

즉,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각 계절에서 떠올릴 수 있는 정경들을 비발디가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했는지 정경화의 해설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다. 보통의 좋은 선율이라고 무심코 들었던 것들이, 계절을 대표하는 정취나 정경을 하나하나 현악기만의 음색과 기교를 통해서 구현해 낸 결정체라는 것을 알고 다시 듣는다면, 전혀 다르게 들린다.

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추위를 몰아내는 봄바람과 한가로이 들리는 개짖는 소리. 여름에는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과 한바탕 지나가는 폭우와 거센 바람. 가을에는 추수를 하는 농부들의 모습과 사냥하는 모습, 그리고 풍요롭고 여유있는 사람들의 마음.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덜덜 떠는 사람들의 모습과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는 모습, 그리고 앙상한 나무들. 나는 이런 묘사들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들으니 심지어 흥미와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연주 자체도 두말할 나위없이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비발디가 작곡한 곡들만의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로 비발디가 작곡한 현악곡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현악기의 매우 기초적인 테크닉부터 시작해서 점차 응용해나가는 방식의 기교활용적 측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다. 또한 이것이 바이올린 교본에 비발디의 곡들이 많이 실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발디의 곡은 잘못하면 매우 재미없게 연주될 수도 있다. 그저 활을 긋고 단순히 한음한음 짚어 나가는 느낌의 연습곡 같은 분위기를 풍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음반을 낼 정도의 바이올리니스트면 절대 그런 분위기를 풍기며 연주할리는 없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이 앨범의 정경화의 연주처럼 ‘감칠맛’이 나게 연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확실한 보잉 테크닉이 받쳐주는 기본기 위에, 정경화만의 화려한 기교로서 마무리 되어가는 곡의 주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듣고 있자면, ‘연주가 귀에 붙는다’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이다.

또한 이번 앨범에서는 정경화 자신이 직접 곡 해설을 하는 등의 디렉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느낌이 드는데, 보다 비발디의 작곡 취지에 부합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비발디 자신이 당대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만큼 솔로 부분을 강조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큰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의 정경화가 오케스트라를 지배하던 카리스마를 여지없이 잘 보여줌으로써 이 앨범에도 솔로 파트 부분이 다른 연주자의 음반에 비해서 특출나게 들린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듯이, 비발디의 ‘사계’도 마찬가지다. 귀에는 익고 친숙하지만, 곡의 작곡 과정과 표현 기법 등을 알고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는 사계절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고, 이를 통해 음악속으로 동화되며, 나아가서는 작곡자의 의도와 곡 자체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경화의 이 앨범이 클래식 음악의 입문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클래식에 대한 소양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사계’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킴으로써 한층 더 음악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봄의 활기참에서 시작하여 여름의 폭풍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과 전율, 가을의 풍성함, 그리고 겨울의 고독과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려는 숨어있는 작은 희망. 비발디의 ‘사계’에는 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음악적 요소와 감성적 요소로 가득차 있다. 정경화의 비발디-사계는 곡에 대한 피상적인 가치 이해를 진정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한번 적접 연주해보고 싶다는 충동마저 일으키게 하는 좋은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