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2001년 문화 축제 결산
[문화비평] 2001년 문화 축제 결산
  • 문화부
  • 승인 200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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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적 팽창보다 속 꽉찬 내용 마련이 중요
문화와 관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많은 자체 행사들을 작년에 치루어냈다. 전국 232개의 지방자치 단체가 치루어 낸 축제만도 600여 개. 대부분의 경우 못해도 3일에서 4일은 축제기간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하루 평균 5개에서 6개 정도는 열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부산바다축제’, ‘장성홍길동축제’ 등 수많은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연이어 열렸고, 이를 토대로 문화 발전과 지역 주민간의 유대감이라는 어느 정도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과연 작년 한해 동안 있었던 행사들이 그 쏟아부은 막대한 돈에 비해 얻을 게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많은 경우 만들어진지 한 두 해 되지 않는 역사성이 없는 지역축제에, 그 양적인 팽창을 하기 위해서 전문성이 채 인증되지 않은 공연만 남발했다는 비판 또한 거세다. 그 본래의 취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이름만 거창하고 공연 하나하나의 질을 따지기 보다는 몇 개의 공연을 하는지, 몇 개국을 상대로 하는 축제인지 등의 ‘크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국제 수준의 예술제를 만들어 보겠다는 거창한 의미로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있었던 “서울공연 예술제”를 한 예로 보자. 이는 기존에 있던 서울 연극제와 서울 무용제를 하나로 통합한 행사로, 그 과정에서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었다. 하지만 통합과정에 있어서 노하우의 부족과 전체적인 예산의 감소, 협회와 축제 준비 조직의 독립성 부족, 홍보 부족 등으로 인해 결국 통합은 개선이 아닌 개악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것은 애초에 연극과 무용이라는 엄연히 다른 장르의 예술을 억지로 통합을 하여, 무리하게 큰 행사를 만들려고 한 데에 그 가장 근복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큰 국제적 행사를 치루고자 하는 욕심은 비단 서울시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남시가 주최한 “세계전통민속 예술제” 또한 이와 같은 의욕만 넘친 또 다른 행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행사 비용으로 3억 5천만원 가량을 쏟아 부어 12개국의 전통예술단이 출연하여 각국의 전통문화를 선보인다는 취지하에 기획된 이 행사는, 홍보부족과 잘못된 기획으로 인해 결국 공연과 관객 동원 모두 실패하여 집안 잔치로 끝났다는 평가이다. 많은 국가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결국은 전문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공연단체의 초청으로 이어졌고 전문성이 없는 학생단체들의 공연장으로 전락하였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서울공연예술제에서도 명백히 드러난 문제로, 역대 수상작 11편의 무용을 한번에 무대에 올려야만 하는 상황을 처리하느라, 한 공연을 10분으로 제한하는 극약처방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공연 당사자들과 관객 모두의 강한 반발을 사는 웃지 못할 결과를 초래하였다.

사람이 중심에 있지 않고 그 외형에 초점이 맞추어진 축제, 행사들은 예산의 비효율적인 운영 이외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중 가장 심각하게 대두된 것이 바로 행사용 문화에의 편중이다. 즉, 큰 스케일에 대중성을 띄고 있는 작품 혹은 장르들은 많은 지원을 받고 다양한 행사에 초청되어 발전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소규모의 대중성보다는 예술성과 작품성을 생각한 작품 혹은 장르들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축제의 홍수에서 목말라 죽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설령 기획단계에서 선택되어 행사에 동원된다고 하더라도, 많은 경우 관객동원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자금력으로 인해 20,30명의 관객만을 놓고 공연을 해야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또 행사 비용으로 인해 문화 인프라 구축이 전혀되고 있지 않다는 것 또한 문제다. 경제적인 비용은 둘째 치더라도, 시간적, 인적 비용 또한 행사에 지나치게 투입이 되고 있다. 실제 많은 지자체에는 문화 행사를 담당하는 부서는 있지만 문화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는 없는 경우가 더 많이 있다. 즉 문화를 보는 시각 자체가 장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회성 행사용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속적인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확고한 문화 정책이 수립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 정책 또한 수립이 되어야 하는데, 문화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조차 제대로 있지 않은 상황이면 언제까지 행사를 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문화는 결국은 고갈되고 행사 또한 빈껍데기만 남게될 것이다.

지역 축제는 지역의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일종의 그릇이다. 그만큼 지역의 전통적 문화에 근거한 문화 요소의 발굴이나 보존이 중요하다. 비단 전통적인 문화 요소 뿐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와도 같은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기 위한 축제이어야지, 행사를 하기위해 억지로 이끌어 낸 문화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관광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내년부터 확대되는 지역 축제에 대한 예산을 단순한 수치적 계산에 의해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기획력이 우수하다던가, 지역의 문화를 잘 나타낸다던가, 민속적 보존가치가 높은 축제를 엄선해서 지원을 해 주어야 지자체측에서도 각 행사에 신경을 쓰고 양질의 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할 것이다.

과거 우리의 농경사회에서의 나름대로 발전했던 전통문화, 전통 축제만을 보더라도 사람이 모여 있고 문화가 발전하면 축제는 자연 발생적이었다. 또 그만큼 축제와 사람들의 삶 또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축제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작년과 같은 겉만 번지르르한 축제들 속에는 사람은 없고 돈과 숫자만 난무한다. 그것은 결국 사람들을 갉아먹고 우리 스스로를 문화 빈국으로 치닫게 한다.

올해는 문화관광부가 선전한 ‘지역문화의 해’이다. 그만큼 작년보다 더 많은 수의 축제가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지 선뜻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라 곳곳에 월드컵과 같은 큼직한 행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전국적으로 축제분위기가 나겠지만, 월드컵에 밀릴까 더 크고 화려하게, “삐까번쩍”하기만 한 행사를 치르고자 한다면 올해 또한 작년 못지않게 암울한 한 해가 될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