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방식의 변화를 제안하며
R&D 방식의 변화를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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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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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은 개교 이래로 연구중심 대학을 추구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탁월한 연구개발(R&D)을 통하여 선진일류 국가의 건설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로 국내 최고의 이공계대학으로 자리매김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유수한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시장에서 보이는 R&D 방식의 변화 방향을 고려할 때, 우리대학의 연구 정책이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하겠다.

현재 세계 시장은 개방형 혁신의 대표적인 구현 도구인 C&D(Connect & Develop)가 출현하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R&D가 조직 내부의 역량 활용만을 강조하였다면, C&D는 기술 개발의 단계에 따라 외부의 우수한 기술을 활용하고 내부의 사용하지 않는 기술은 외부로 판매하는 활동을 강조한다. 즉, 특정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글로벌 기술 시장에서 최고의 기술을 구매하여 사용하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C&D 모델은 글로벌 기업인 P&G, IBM,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채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출현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 수명주기가 지속적으로 단축되는 상황이다. 현재 세계의 과학기술계에서는 간혹 파괴적 기술혁신이 탄생하여 제품 가격을 반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가 애플의 iPod에 맥을 못 추는 것도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신속하게 개발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에 있어서 외부의 기술을 활용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C&D가 부상하는 둘째 이유는, 필요한 기술을 외부에서 찾거나 창고에 보관된 내부의 기술을 판매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터넷의 역할이 커진 데서 찾아진다. 신문을 보거나 이메일을 활용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인터넷이 기술이나 상품을 거래하는 비즈니스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IBM 회장 팔미사노는 인터넷이 전세계를 구석구석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기술, 인력, 기업 등의 글로벌화를 가속시킨다고 예상하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퇴근 전에 인도의 전문가들에게 인터넷으로 문제를 전달하고 다음날 출근 시에 그 해결책을 전달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기업문화가 생기고 있다.

R&D 방식에서 C&D 방식으로의 변화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로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 측면에서는 우선, 오늘날의 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기술만을 선호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연구 개발하는 기술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가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또 한 가지 측면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찾는 영역이 국내가 아닌 전세계로 확장된 지 오래기 때문에, 국내 유수 이공계 대학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우리의 실질적 경쟁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회도 있다. 첫째, 세계적으로 톱 수준에 도달했거나 도달할 수 있는 기술 아이템을 발굴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C&D 시대에는 큰 규모의 조직보다 핵심 가치를 개발하는 소규모의 신속한 연구 집단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대규모의 연구단위를 조성하는 한편 우리만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데도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둘째, 기술을 먼저 보지 말고 우리의 핵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주제나 문화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미래 은행, 스마트 도시 등과 같은 새로운 개념의 세계를 창조하려고 하는 MIT의 미디어 랩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주제나 문화를 정의한 후 그에 필요한 기술을 정하여 개발하거나 개발하기가 힘들면 기술시장에서 구매하면 된다. 예를 들어서,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조직을 만듦과 동시에 ‘클린도시’라는 주제를 표방하여 연구개발의 초점을 명확히 해나갈 필요가 있다.

셋째,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사고를 배양하는 교육 시스템을 하루라도 빨리 구축해야 한다. 세계 톱의 과학자나 기술자는 과학과 기술의 개선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컨대 플랭클린 올린 공대의 실험적인 교육 시스템을 벤치마킹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연구개발 정책이 R&D에서 C&D로 옮겨가는 세계 시장의 추이에 맞추어 변화 발전하게 된다면, 포스텍이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의 위상을 차지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그만큼 단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