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 학칙의 정치활동 금지조항
기획취재 : 학칙의 정치활동 금지조항
  • 강민주 기자
  • 승인 2008.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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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맞추어 개정" 목소리 높아
▲ 최근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모습. 포스테키안이 이러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학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을까?
2008년 3월 1일 개정된 포항공과대학교 학칙 제73조를 보면 ‘학내에서의 정치적 활동’, ‘학외에서의 대학명의의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징계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 조항은 그동안 꾸준하게 수정 의견이 제시돼 왔지만 1회 신입생이 입학하던 해인 1987년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개교 당시 김호길 학장의 교육철학과 포부가 그대로 반영된 우리대학의 학생지도 기본방침에 따라 생기게 되었다. 학생지도 기본방침은 △연구중심대학 특유의 면학분위기 조성 △건전한 학생활동의 활성화 △우리대학 고유의 대학문화 창출 등이다. 그래서 개교 초부터 교내외에서의 정치적 집회 참여와 활동을 금지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계획된 수업의 차질 없는 진행과 학사제도의 엄격한 적용이 최우선으로 강조되었다. 지난해 발행된 <포항공과대학교 20년사>에 따르면 “당시에는 포항제철이 국내 정국의 급속한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교내 학생활동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정치활동 금지조항에 대해 우리대학 1회 졸업생인 강관형(기계) 교수는 “당시 학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총장을 비롯하여 많은 교수들이 여러 자리에서 정치활동을 하지 말라는 언급을 했다”며 “학교에서 정치활동을 강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대학이 개교하던 1986년경은 우리사회가 민주화에 대한 열의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대표적으로 1987년에는 호헌조치 철폐와 독재정권 타도 등을 요구하는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기에 우리대학의 학생들은 학생운동을 비롯한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와 큰 괴리감을 느꼈다.

강 교수는 “지금과 비교하면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의식이 다르긴 했다. 민중가요 동아리 등 이념적인 동아리도 등장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공부하기에 바빠 민주화에 대한 의식을 가질 기회와 시간이 부족했고, 선배 또한 없어서 타 대학 학생들에 비해서는 무지한 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록 타 대학 학생들에 비해 정치적 의식이 부족하고 정치활동에 대한 학교의 강경한 대응이 있었지만,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교내외에서 정치활동을 벌여 학사징계를 받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예로 한 금속회사의 노조결성 당시 우리대학의 풍물패가 참여하여 함께 시위했고, 그 결과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학칙에 의거하여 무더기로 정학을 당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우리대학 학생들의 학생운동은 위축되었고, 문민정부 이후인 1997년경부터는 전국적으로 학생운동이 줄어듦과 함께 우리대학의 교외 학생운동 또한 현저하게 감소했다.

그동안 정치활동 금지조항을 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2004년 3월, 18대 총학생회는 학칙에 존재하는 정치적 활동에 대한 금지조항이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학생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것을 문제 삼아 ‘정치적 활동’이란 말을 명시화하려했으며, 학생들을 상대로 서명운동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결국 학칙은 개정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학생지원팀 권인혁 씨는 “학칙은 기본적으로 헌법 아래에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의 기본법이 무시된다던가 하는 문제는 없다”며 “당시 학생생활위원회에서 아직은 존재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한 작년 5월에도 총학생회에서 학칙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개정 방안을 명확히 하지 않아 무산되었다.

이에 최미리(신소재 05) 총학생회장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우리대학 특유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존재했던 정치활동 금지조항이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조항이 현재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지만, 1년에 몇 번씩 총학생회에 ‘정치활동 금지조항이 있는데 이런 정치활동을 해도 되느냐’는 민원이 들어와 학칙개정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예전부터 개정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이 조항을 대체할만한 조항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개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총학생회 기획국에서 타 대학의 학칙 등을 참고하며 대체 조항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