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인터넷 검열 반대 문화제 “아아아 대한민국”
[문화현장] 인터넷 검열 반대 문화제 “아아아 대한민국”
  • 문재석 기자
  • 승인 2002.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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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검열 반대 문화제 “아아아 대한민국”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 되는 나라를 만들 때까지’

이 생각은 지난해 9월 28일 있었던 “음란 페스티벌”에서도, 60일간 혹한 속에서 릴레이 단식 농성을 벌인 65명의 사람들에게서도 그리고 이날 12월 20일 명동 한빛은행 앞에 모인 사람들도 모두 같았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이름 아래에 인터넷 등급제를 시행하고 이를 빌미로 인터넷 컨텐츠의 등급을 매기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60일간의 릴레이 농성이 막을 내리며 그 의미를 중간점검하자는 의미에서 자리 잡은 이 행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표출의 장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예술가가 나와 자신의 심정을 담담하게 퍼포먼스로 나타내고, 군대와 검열에 쫓긴 한 가수는 명동거리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고 밝힌 한 여중생은 “결국은 나의 말도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고 친구들이 나의 말을 볼 수 없을 게 아니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들 모두 인터넷 등급제의 피해자였다. 자신의 사이트가 유해 판정을 받고 옮겨진 김인규 교사도 비디오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공연의 시작은 인디밴드 ‘이반’의 몫이었다. 리허셜을 하느라 조금은 썰렁해진 관객들을 상대로 이반은 등급제와 검열에 반대하는 그들의 자작곡을 들려주며 자신들의 생각을 덤덤히 풀어나갔다.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어 가자 윤도현 밴드의 ‘이 땅에 살기 위하여’를 편곡한 곡으로 분위기를 더욱 돋구며 무대를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한층 고조된 분위기 사이로 나온 이종회 진보네트워크 소장은 “60일간의 릴레이 단식 농성을 끝내며 마련한 자리이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보면서 앞으로도 계속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 다짐했다”고 밝히며, 많은 시민들도 이에 동참하여 줄 것을 촉구하였다. 이어 나온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는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인터넷 등급제를 도입하는 것은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육하려는 것”이라며 “이에 반대하기 위해 극단의 조치인 단식 농성을 영하의 날씨에도 강행하였고, 이러한 의지가 계속 뒷받침된다면 승리를 확신하다”라고 목소리 높여 이야기 하였다.

이날 공연 중에서 가장 “깬” 사람들은 ‘여고생 해방전선’이었다. 밴드인지 퍼포먼스 집단인지 구분이 모호한 이들은 “군대 반대”와 “검열 반대”를 외치며 온갖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하였는데, 형식이나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음악을 배경삼아 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또 연신 “학교 가기 싫어”를 외치며 코트 입은 여학생이 뛰어 다녔고 분위기가 차츰 무르익어 가자 보컬리스트는 진짜 음란함을 보여주겠다며 웃통을 벗어 제끼고 공중전화 부스위로 올라가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네바다 51’은 이날 공연에 있어서 조금은 흠집이 나는, 조금은 대중성을 고려하여 선정한 밴드였다. 핌프락을 주로 하는 이들은 인터넷 등급제나 검열, 자유 등에 관하여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단지 노래만 부르고 내려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상당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들은 퍼포먼스 밴드 ‘이발쇼 포르노씨’의 대체로 나온 듯 하였는데 오히려 이러한 모습은 관객들의 반감만 사는 아쉬움을 남겼다.

공연의 마지막은 퍼포먼스 “아아아 대한민국”이 장식을 하였다. 여자 속옷을 입은 남자 퍼포머가 비닐안으로 들어가 옷을 하나씩 벗었고, 다양한 색의 물감을 비닐에 뿌리며 자유롭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또 비닐을 뒤집어 쓴 채 길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퍼포먼스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날 공연에서는 이외에도 서울대 사회대 영상동아리 ‘불나비’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www.등급.no.kr”의 상영과 민중 가수 연영석 이혜규 등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많은 이들이 이날 인터넷 등급제 반대를 위한 공연을 하였지만,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의 효력을 발휘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항상 깨어 있는 정신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등급제 혹은 어떤 검열속에서도 자신의 본 모습을 잃지 않을 것임을 느낄 수 있던 공연장이었다. 비록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거나 어떤 거창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만큼은 이날의 추위보다도 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