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평론가] 연극 '서툰 사람들'
[나도평론가] 연극 '서툰 사람들'
  • 이진평 / 기계 4
  • 승인 200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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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서툰 사람들'의 한 장면
지난 11월 29일 무료문화프로그램으로 공연한 연극 <서툰 사람들>(장진 원작, 이윤주 연출)공연은 개인적으로 간만에 만나는 연극이었다. 특히 내가 속한 연극동아리 애드립이 아닌 다른 극단의 연극을 보기는...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은 나누어준 팜플렛 속에서 이 연극이 희극이란 것을 알아서일까, 모두 들뜬 마음으로 막이 오르길 기다린다.

이윽고 극은 시작되고 주인공 화이가 등장하고, 잠시후 또 다른 주인공 덕배가 등장한다. 교사인 화이와 그녀의 집을 털러온 도둑 덕배. 그들의 어쩌면 무섭고 삭막할 수 있는 상황을 너무나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나가며 극은 진행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자살을 꽤하는 중년아저씨와 화이의 사진 한 장에 반해버린 자동차 세일즈맨 등 여러 단역들이 이런 상황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주며 연극은 그렇게 재미있게 끝이 난다.

이 연극은 우리 애드립에서 97년 2학기 정기공연 작품으로 공연을 했었던 작품이다. 그때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웃어주었고, 연극을 하는 우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재미있게 작품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 속에서 나는 왜 우리가 이런 희극을 보고 또 이런 희극을 공연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써보고자 한다.

이 극을 쓴 장진씨는 이 작품을 임진강에서 썼다. ‘대한 남아’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군입대 후 작품을 쓴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전선의 최전방의 끝에 그는 서있었고, 그는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희극 작품들을 쓰기 시작한다. <허탕>, <서툰사람들>, <천호동 구사거리>, <오해> 이런 작품들을 그는 서부전선에서의 3년 동안 집필을 했고, 그것들을 묶어 희곡집 <덕배랑 달수랑>을 출판한다.

그는 이렇듯 인생에 있어 암울한 시기에 이런 재미있고, 유쾌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오히려 음침하고 암울한 비극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에 이런 것을 썼을까? 그건 인간이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어떤 보상 심리가 있어서, 또한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상상속에서라도 다른 것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해서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 아닌가 한다.

그럼 반대로 그런 희극을 보면서 재미를 얻는 우리의 모습은 조금은 다른 모습일까? 모두 항상 즐거운 듯이 살고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가지 아니 그 이상의 고민은 있기 마련이다. 또, 그것이 절대 벗어날 수 없고 지금 당장 해결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우리가 <서툰 사람들>과 같은 희극을 보며 웃으며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 과연 이 극을 쓴 장진의 상황과 다른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희곡 대본이 있어도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가 연기를 못 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제대로 전달 될 리 없다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의 동기와 선배들이 한 차례 공연한 적이 잇는 이 연극을 시작하기 전 나는 이를 처음보는 다른 관객들과는 사뭇 다른 기대감으로 극을 감상하였다. 연극이 진행되면서 다음 장면이 무엇인지 아는 나에게도 참 재미있는 모습들이 연출 되었고, 그러한 장면들 속에서 내가 보아온 우리 연극부의 공연 모습이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 순간에 어떻게 했는데, 저 배우는 이렇게 하네, 저 장면은 우리쪽이 낫지 않았나, 저런 장면들은 정말 기발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보는 가운데 연희극단과 우리의 모습이 자연스레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로에 대한 나의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 아니면 우리 배우들의 모습에 익숙해서일까 어색한 배우들의 모습 그리고 매끄럽지 못한 진행들이 처음에는 조금 나의 눈에 거슬렸다. 그러나, 처음의 부자연스런 모습 뒤로 나오는 그들은 다시금 나에게 프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온몸으로 연기를 펼치는 조연들과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의 애드립들, 특히나 나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클라이막스 부분에서의 관객의 시선을 한번에 집중시키는 모습이었다. 특히 마지막 화이와 덕배의 이별장면에서 보여준 연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애틋한 마음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실로 프로다운 모습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길 바란다. 자기 사신이 속한 분야에선 자신이 바로 프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본이 정해지면 대사를 외우고 어느 정도 액션이 잡히면 바로 공연에 들어간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 발성이나 액션의 기본은 모두 배운 상태에서) 즉, 그들은 항상 자신이 익힌 것을 자신의 무대에서 갈고 닦고 그것을 더욱 키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모습인가. 내가 가진 것을 내가 알고있는 지식들을 나의 무대에서 펼치려 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지 시험 때문에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면서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희곡이 담겨있는 희곡집 <덕배랑 달수랑>의 작가의 말 중 마지막 말을 인용하며 끝을 맺을까 한다.

“임진강의 해빙으로 육지가 강이 되는 것을 처음으로 다 보다. 해일이 올 것 같은 하늘 밑, 바다가 멀다란 걸 안 후로 우리의 걱정도 사라지곤 하다. 진달래가 한창이던 산허리 사내마을, 순수와 오욕 속에서 착한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며 서러워 엉엉 울다. 울다 지쳐 꺽꺽대던 어느 한 날, 처음으로 무색의 종이 위에 이야기를 그리다.”